2024년 2월,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AI 상담원이 도입 한 달 만에 고객 상담 230만 건을 처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 상담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문제 해결 시간은 평균 11분에서 2분으로 줄었고, 반복 문의도 25퍼센트 감소했습니다. 클라르나의 설명대로라면 상담 인력 700명분의 업무를 AI가 대신한 셈이었죠. 처리량과 속도만 보면 성공적인 도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클라르나는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세바스티안 시미아트코프스키 CEO는 AI를 비용 절감에 치우쳐 활용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후 AI 활용의 초점을 서비스와 제품 개선, 고객과 가맹점의 가치, 기업의 성장으로 옮기고 인력 채용도 재개했습니다.
클라르나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AI 활용의 실패가 아닙니다. 상담 비용과 처리 시간은 실제로 개선됐습니다. 문제는 개별 업무의 효율을 기업의 최종 성과와 같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데 있습니다. 상담이 빨라진 것과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비용이 줄어든 것과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야 하지만 같은 결과는 아닙니다.
많은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AI를 활용해 사흘 걸리던 보고서를 몇 시간 만에 작성하고, 더 많은 자료를 검토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개별 업무는 빨라졌지만 의사결정과 실행은 그만큼 빨라지지 않습니다. 고객가치와 매출,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에도 뚜렷한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죠.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2026년 10개국 지식근로자 2만 명을 조사한 결과, AI 활용 능력은 충분한데 조직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제 업무에 적용하지 못하는 인력이 10퍼센트에 달했습니다.
개별 업무의 수행력은 높아졌는데, 왜 조직 성과는 그만큼 좋아지지 않을까요?
AI는 사람의 지식과 기술을 보완해 업무 수행력을 높입니다. 그러나 조직 성과는 각자가 만들어낸 산출물의 합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구성원의 판단과 실행이 공동의 목표를 향하고, 앞선 업무의 결과가 다음 업무의 성과를 높일 때 비로소 집단 시너지를 통해 조직 성과가 만들어집니다. AI는 개별 업무를 빠르게 할 수 있지만, 각자의 일을 공동의 성과로 연결하는 것까지는 잘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연결되지 않은 수행력은 오히려 조직의 부담을 늘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료와 대안이 빠르게 만들어져도 다음 단계의 판단과 실행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검토와 조정이 더 늘어날 뿐입니다. 또 선택 기준과 결정 권한이 불분명하면 산출물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은 오히려 더 늦어질 수 있죠. 각자는 더 많은 일을 해냈지만 조직 성과는 더 나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하나로 좁혀집니다. “무엇을 향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일지”를 조직이 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AI 도입의 성패는 기술이 처리한 업무량보다 그 업무가 조직의 최종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조직이 달성해야 할 성과를 분명히 정하고, 구성원 각자의 판단과 실행을 연결하며, AI로 가능해진 새로운 목표와 방법을 시도하게 하고, 실행의 결과를 끝까지 추적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 집중, 정렬, 도전, 추적의 네 가지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리더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첫째, 중요한 성과에 ‘집중’하게 해야 합니다.
AI는 보고서와 자료, 아이디어와 대안을 만드는 비용을 낮춥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개선하기 위해 만드는가’입니다. 우선순위가 불분명하면 AI는 중요하지 않은 업무까지 빠르게 늘립니다. 리더는 AI를 어디에 쓸지 정하기 전에 고객가치, 매출, 품질과 같이 개선해야 할 성과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둘째, 각자의 판단과 실행을 ‘정렬’해야 합니다.
앞 단계의 업무가 빨라져도 다음 단계가 그 결과를 활용하지 못하면 조직 전체의 성과는 높아지지 않습니다. 한쪽에서 늘어난 산출물이 다른 쪽의 검토 업무만 키울 수도 있습니다. 리더는 각 업무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판단과 실행에 기여하도록 목표와 기준, 역할과 결정 권한, 일의 흐름을 맞춰야 합니다.
셋째, 더 높은 성과와 새로운 방법에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AI로 절약한 시간과 넓어진 탐색 범위를 기존 산출량을 늘리는 데만 쓰면 업무 효율은 높아져도 고객가치와 성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AI의 가치는 이전에는 어려웠던 목표와 방법을 시도할 때 커집니다. 리더는 도전의 범위와 판단 권한을 분명히 하고, 시행착오를 학습과 개선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넷째, 실행을 최종 성과까지 ‘추적’해야 합니다.
업무 시간 단축과 산출량 증가는 AI 활용의 중요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는 업무 과정의 개선이며, 조직의 최종 성과와 같지는 않습니다. 리더는 이러한 변화가 고객가치와 매출,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AI의 성능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문제 설정과 성과 기준, 사람과 AI의 역할, 실행 방식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AI는 앞으로 더 많은 업무를 맡고 일부 직무를 대신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지 정하고, AI가 만든 결과의 가치를 판단하며, 실행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과 조직의 몫입니다. 비용을 줄이고 속도를 높였더라도 고객가치와 기업의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성공적인 도입이라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AI가 보편화될수록 기술을 보유한 것만으로는 성과의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기업 간 격차는 AI가 높인 개별 업무의 수행력을 공동의 목표와 연결하고, 더 큰 조직 성과로 전환하는 능력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AX 시대의 리더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 구성원은 AI를 얼마나 잘 쓰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AI로 향상된 업무 수행력을 조직 성과로 연결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