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환경·경험과 함께 변하는 뇌를 가진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뇌는 몸과 환경의 상태를 예측하고 생존에 필요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데 관여합니다. 몸의 상태와 감정, 주변 조건은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는 그 영향을 모두 자각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려면 의식적으로 떠올린 이유뿐 아니라 그 판단이 만들어지는 조건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경계는 경험에 따라 변하며, 기억도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기록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억은 경험을 구별하고 공통점을 묶으며 새로운 정보에 따라 달라지고,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상상에 쓰입니다. 현재의 자극에 몸·감정·기억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가 경험하는 지금은 다릅니다.
그 순간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경험과 반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타인을 보는 방식에도 자신의 경험이 들어 있으며, 하나의 기준만으로 다양한 개인의 정상과 우열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상대 역시 스스로 느끼고 나를 판단하는 주체임을 알아차리는 데서, 더 대등한 관계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강연 목차
뇌는 몸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감정은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그 영향을 모두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한 영향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생존에 유리하게 움직이려면 먹이와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예측해야 합니다. 뇌는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환경 정보를 얻고, 몸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 작동합니다. 갈증을 느끼는 쥐와 그렇지 않은 쥐의 뇌 활동을 비교한 실험에서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여러 뇌 영역의 활동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몸 상태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여합니다.
감정도 판단에서 떼어 놓기 어렵습니다. 감정과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뇌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이오와 도박과제에서 사람들은 카드의 유불리를 분명히 알기 전부터 서로 다른 피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반면 관련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은 카드의 유불리를 알아도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정보뿐 아니라 감정도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향의 원인을 늘 아는 것은 아닙니다. 흔들다리 효과는 무서워서 생긴 두근거림을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빛이 생활 리듬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면 환경을 활용할 여지도 생깁니다. 몸과 환경의 영향을 이해하는 일은 그 조건을 활용할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떠올린 선택의 이유만으로 그 판단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각하지 못한 몸의 상태와 주변 환경도 판단의 조건으로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뇌와 기억은 경험 속에서 변합니다. 기억이 선택에 도움이 되는 유연성을 가진다는 것은, 회상이 과거의 완전한 복사본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려면 신경계도 변해야 합니다. 환경과 경험, 신체 상태에 따라 신경계의 구조와 성질이 변하는 특성을 가소성이라고 합니다. 신경세포가 신호를 받는 수상돌기의 작은 돌출부인 스파인의 크기와 모양이 변하는 영상은 그 변화를 보여 줍니다. 사람에 대한 조사에서도 과거의 큰 변화는 인정하면서 앞으로의 변화는 작게 예상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앞으로의 나도 지금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억은 그 변화 속에서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상상에 쓰입니다. 떠올릴 수 없는 정보는 선택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미래를 상상할 때도 관련된 경험과 정보를 모아 이야기를 만듭니다. 기억이 유용하려면 비슷한 경험을 구별하는 동시에 공통점을 묶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연관된 단어를 외운 뒤 제시되지 않은 ‘달콤한’도 있었다고 여기는 것처럼, 일반화는 착각을 낳기도 합니다.
기억은 이후에 접한 정보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자동차 사고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질문의 표현을 달리했더니, 나중에 실제로 없었던 깨진 유리를 보았다는 응답 비율이 달랐습니다. 기억의 업데이트는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성질이지만 회상의 오류 가능성도 함께 보여 줍니다. 기억의 한계는 기록과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선명하다는 느낌과 실제로 정확하다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의 기억이 엇갈릴 때, 확신의 크기 외에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경험에는 몸·감정·기억과 방금 겪은 일이 함께 작용합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디에 주의를 두느냐에 따라 경험과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뇌는 영역별로 구분되면서도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고무줄로 연결한 구슬은 서로 독립된 구슬과 달리 특정한 배치로 향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네트워크에도 이처럼 연결에서 생기는 경향성이 있으며,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끌개입니다. 기억에서도 일부 정보가 활성화되면 연결된 정보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개를 기른 경험이 쌓이면 개와 관련된 기억의 연결도 달라집니다. 뇌 부위 사이의 기능적 연결도 수행하는 과제와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에는 눈앞의 자극뿐 아니라 몸과 감정의 상태, 과거의 경험, 방금 겪은 일이 함께 들어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각자가 경험하는 순간은 다릅니다. 그 순간 떠오르는 마음도 하나만은 아닙니다. 동료의 하소연을 들어 주다 일이 밀린 상황에는 짜증과 부담뿐 아니라, 동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바람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짜증에 집중하면 관련된 생각들이 연달아 떠오를 수 있고,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 준 자신에게 초점을 두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짜증 난 마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면서 무엇을 원하기에 부담스럽고 불편한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험은 여러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며,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짜증과 동료를 위하는 마음은 같은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의 밑에 놓인 바람을 보면, 그 상황에서 주목할 다른 면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타인을 보는 표상에는 나의 경험도 들어 있습니다. 개인의 다양한 조건과 상대의 주체성을 함께 보면, 하나의 기준에 따른 평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단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와 관련된 모습, 감정, 기억 등 정보의 총체를 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에게 물린 사람과 개를 키운 사람의 표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타인도 그동안 형성한 표상에 비추어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사람의 모습에는 나의 경험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내 표상에 상대를 맞추는 것과 실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을 하나의 점수로 보면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 우월과 열등을 나누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러 요소가 연결된 존재입니다. 신경망 모형에서는 막과 시냅스의 전도도가 크게 달라도 비슷한 출력이 나타났습니다. 요소들이 서로 보완하고 상쇄하면, 서로 다른 구성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같은 행동의 유불리도 환경과 나이, 신체·지적 자원에 따라 달라지므로 개인을 한 지표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차이를 분류하는 데서 나아가 공통점을 넓히고, 갈등이 있다면 어떻게 함께 지낼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도 그 사람이 살아온 조건에서 만들어진 경로였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판단하듯 상대도 스스로 느끼고 나를 평가합니다. 상대를 내 기준에 따른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경험과 판단을 인정할 때, 더 대등한 관계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판단하는 동안 상대도 자신만의 경험 속에서 나를 보고 있습니다. 관계를 이해하려면 내가 보는 상대의 모습과 상대가 경험하는 나를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