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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작성자: 자인연구소 | Nov 13, 2021, 8:00:00 AM
김상욱 교수 - 생각산책 현장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인 인간은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만들며,
자연의 사실과 사람들 사이의 합의를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할까요?”

 

밝은 낮과 생명으로 가득한 지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우주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태양은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이고, 별 사이에는 거대한 빈 공간이 있습니다. 우주의 기준에서 보면 당연하게 여겼던 빛과 생명도 새롭게 보입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인간의 일상적 경험이 곧 자연의 기준이라는 생각을 돌아보는 데 있습니다.

 

물리학은 점과 좌표, 함수로 물체의 운동을 표현하고, 관측으로 찾은 규칙을 수학적 법칙으로 기술합니다. 달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질문을 계속 떨어지는 달이 왜 땅에 닿지 않는가로 바꾸면, 사과와 달의 운동을 함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질문을 바꾸는 창의성에는 기존 가능성을 충분히 탐색한 확신과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인간 역시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원자의 운동만으로 돈과 사랑, 정의의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함께 믿는 상상으로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고 사회를 만듭니다. 그 합의를 자연의 법칙으로 고정하지 않고 삶과 행복에 비추어 검토하려면, 자연의 사실을 이해하는 과학과 인간의 의미를 다루는 인문학을 조화롭게 알아야 합니다.

 

강연 목차

01 우주의 기준에서 상식을 다시 보다
  • 태양과 별, 우주의 규모에서 다시 보는 인간의 위치
  • 어둠과 빈 공간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빛과 생명
  • 지금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점을 되짚는 시선
02 점과 수식으로 우주를 읽다
  • 점·좌표·함수로 표현하는 물체의 위치와 운동
  • 수학적 증명과 관측에서 찾는 자연법칙의 구별
  • 힘과 가속도, 현재에서 다음 순간을 예측하는 방법
03 질문을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 달의 낙하가 바꾸는 질문과 천상·지상의 구별
  • 문제 밖으로 나가기 위한 확신과 용기
  • 반복 탐색과 재미가 뒷받침하는 지속적인 창의성
04 의미를 만드는 인간, 두 세계를 함께 살다
  • 원자의 운동과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의 차이
  • 공유된 상상이 가능하게 하는 협력과 사회
  • 자연의 사실과 바꿀 수 있는 합의, 과학·인문학의 조화

 

 

1. 우주의 기준에서 상식을 다시 보다

지구에서 익숙한 빛과 생명은 우주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식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가 새롭게 보입니다.

빛은 어둠의 부재라는 문장은 익숙한 설명을 뒤집습니다. 낮이 밝은 것은 태양이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도 별이며, 밤하늘의 별은 멀리 있어 점처럼 보입니다. 우리 은하의 수많은 별 가운데 태양은 하나이고, 지구는 그 곁의 작은 행성입니다.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도 우주의 규모에서 보면 전혀 다른 위치를 차지합니다.

 

태양을 사과 하나, 지구를 작은 먼지로 축소한다면, 다음 별을 만나려면 타이완까지 가야 한다고 비유할 만큼 별 사이의 거리는 멉니다. 약 4광년 떨어진 별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면 인사 한마디의 답을 듣는 데 약 8년이 걸립니다. 밤하늘에서 보는 빛도 과거에 출발한 것입니다. 우리는 별의 현재 모습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우주는 대체로 어둡고 물질 사이의 공간은 광대합니다. 밝음과 물질, 생명으로 가득한 일상은 특별한 조건 속의 경험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살아 있는 존재를 만나는 일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출발점을 돌아보는 시선도 필요합니다. 우주의 현재를 빅뱅의 시작 상태에서 묻듯, 조직의 갈등에서도 처음 함께 정한 약속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내게 익숙한 환경이 세계 전체의 기준일까요? 당연하다고 여긴 조건을 멀리서 다시 보면, 평범했던 일상과 만남의 특별함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점과 수식으로 우주를 읽다

점과 좌표는 운동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실제 움직임의 규칙은 관측으로 찾아야 합니다. 물리학은 수학적 표현과 경험적 법칙을 결합해 자연을 이해합니다.

유클리드는 점을 부분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고, 참이라고 가정한 공리에서 다른 명제를 증명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좌표는 점의 위치를 숫자로 나타내 기하학과 대수학을 연결했습니다. 도형의 문제를 수식으로 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체의 위치를 시간의 함수로 나타내면, 물체가 움직이는 모습도 숫자와 수식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유닛에 좌표를 주고 그 숫자를 바꾸면 화면에서 유닛이 움직입니다. 실제 세계의 물리량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아는 일도 이러한 기술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표를 붙였다고 다음 움직임까지 아는 것은 아닙니다. 물병이 거듭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하고 규칙을 찾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관측에서 얻은 법칙은 수학적 증명처럼 반드시 참이라고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뉴턴 역학은 등속 운동을 기본 상태로 놓고 속도가 변하는 원인을 힘으로 설명합니다. F=ma는 힘과 가속도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미분으로 쓰인 운동의 관계에서 적분을 통해 위치 변화를 구하고, 현재의 위치와 속도로 다음 순간을 예측합니다. 계단 한 칸을 오르는 규칙을 반복하는 로봇처럼, 운동을 단계적으로 갱신하는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리학은 서로 달라 보이는 현상에서 공통의 규칙을 찾습니다. 점과 좌표로 운동을 표현하고 관측으로 법칙을 확인하면서, 복잡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만듭니다.

3. 질문을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질문을 바꾸면 풀리지 않던 현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벗어날 확신과 용기는 안의 가능성을 충분히 탐색한 과정에서 생깁니다.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요? 천상과 지상에 서로 다른 질서를 적용하면 달은 하늘의 물체라는 답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관찰한 달은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진 천체였습니다. 뉴턴은 달도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질문을 왜 땅에 닿지 않는가로 바꿉니다. 직진하려는 달의 진로는 중력 때문에 휘지만 지구의 표면도 둥글게 휘어 있어 땅에 닿지 않습니다. 달과 사과의 운동은 같은 법칙으로 설명됩니다.

 

이 그림을 그리려면 땅에서 달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위치 밖을 상상해야 합니다. 점 아홉 개를 직선 네 개로 잇는 문제도 점들이 만드는 영역 밖으로 나가야 풀립니다. 다만 무작정 틀을 깨는 행동이 창의성은 아닙니다. 열쇠가 방 밖에 있는 방탈출에서 처음부터 문을 부수는 것과, 내부를 샅샅이 찾아 없다는 확신을 얻은 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릅니다.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사람은 선택한 길에서 장애물을 만나도 다른 길이 정답일지 모른다는 의심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안에 답이 없다는 확신과 밖으로 나갈 용기는 반복적인 탐색에서 나옵니다. 지속되는 창의성은 순간의 번뜩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일을 재미있어하며 가능성을 거듭 확인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새로운 관점을 지탱합니다.

 

새로운 관점은 기존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펴본 과정에서 나옵니다. 오래 탐색한 끝에 얻은 확신이 문제 밖으로 나갈 용기를 주며, 반복적인 작업이 창의성을 뒷받침합니다.

4. 의미를 만드는 인간, 두 세계를 함께 살다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물질이면서 공유된 의미로 협력하는 존재입니다. 자연의 사실과 인간의 합의를 구별하고 두 이해를 조화시켜야 합니다.

인간과 나무, 돌과 책상은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를 레고 블록에 비유하면 다양한 물질은 그 블록의 조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사도 원자의 움직임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사로 이해하는 의미는 인간이 부여합니다. 원자들의 운동 자체에는 인간이 말하는 목적과 의도가 없습니다. 자연을 기술하는 설명과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의미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침팬지에게 바나나 대신 지폐를 주어도 교환 가치를 알아주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종이에 공동의 가치를 부여하고, 은행 화면의 숫자를 재산으로 받아들입니다. 돈과 법, 국가처럼 함께 믿는 상상의 체계는 낯선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상상이라는 말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의미를 공유하기 때문에 인간은 큰 사회를 이루고 역할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나 여성의 일을 제한하는 규범을 자연의 섭리로 내세우면, 바꿀 수 있는 합의를 고정하게 됩니다. 사회의 체계는 삶에 도움이 되고 행복을 주는지 따져 함께 바꿀 수 있지만, 지구의 운동은 투표로 바뀌지 않습니다. 자연의 사실을 이해하면서 인간이 만든 의미도 배우고 다듬어야 합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조화는 이 두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는 길입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스스로 만든 의미 속에서 행복을 누립니다. 물질로서의 인간과 의미를 만드는 인간을 함께 바라볼 때,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한 이유가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