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움직임과 감각, 기억과 판단을 뇌과학으로 이해하면
인간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우리가 손을 움직이고 감정을 느끼며 판단하는 일에는 뇌가 관여합니다. 수명이 늘면서 뇌졸중과 치매를 마주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뇌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변화를 뇌의 구조와 기능에 비추어 살핍니다.
뇌의 어느 부위가 손상됐는지에 따라 마비와 언어 장애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가을의 전설」과 「잠수종과 나비」는 움직임과 소통의 상실을 보여 줍니다. 통증은 위험을 피하게 하고, 감정과 기억은 경험을 다음 행동에 연결합니다. 「메멘토」에서 쌓이지 않는 기억을 거쳐 전두엽의 판단과 치매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으로 논의가 이어집니다.
뇌의 작동을 알면 평소 당연하게 여긴 능력의 의미와 손상 뒤에도 남는 삶을 다시 보게 됩니다. 강연은 생존에 필요한 기능에서 사랑과 노화, 죽음에 관한 질문으로 넓어집니다. 마지막 「마지막 4중주」는 겉으로 조화롭게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타인을 한 장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보는 시선이 남습니다.
강연 목차
뇌의 여러 영역은 움직임과 감각, 언어에 관여합니다. 손상된 위치와 나타난 증상을 함께 보면 평소 드러나지 않던 뇌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손을 움직이는 근육에 이르는 신호는 뇌에서 시작합니다. 중심고랑을 기준으로 앞쪽의 운동 영역과 뒤쪽의 감각 영역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언어 기능에도 관련 영역이 있습니다. 왼쪽 뇌의 운동 경로가 손상되면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거나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실어증도 손상된 부위와 관계됩니다.
MRI는 뇌의 구조를, MRA는 혈관을 살피는 데 쓰입니다. 혈관이 막힌 곳과 영향을 받은 뇌 영역을 함께 보면 증상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능적 MRI는 과제를 수행할 때 달라지는 뇌 활동을 관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핀 연구도 소개됩니다. 다만 영상에 활성 부위가 나타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순간 무엇을 느끼는지 정확히 읽어 낼 수는 없습니다.
「가을의 전설」에서 러드로 대령은 뇌졸중 뒤 팔다리가 마비되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앞서 살핀 운동 경로와 언어 기능을 영화 속 증상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교수는 배우의 얼굴 움직임이 실제 마비의 양상과 맞지 않는 부분도 지적합니다. 영화는 손상과 증상의 관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만, 화면 속 연기를 그대로 임상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말과 움직임이 달라졌을 때,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하기 전에 어떤 기능이 어려워졌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움직임은 위험을 피하고 필요한 것을 향해 가게 합니다. 통증은 해로운 자극을 알아차리게 하며, 이 기능의 상실은 삶의 조건을 크게 바꿉니다.
뜨겁거나 차가운 곳을 피하고 먹이를 향해 움직이려면 자극을 감지하고 몸을 조절해야 합니다. 운동 경로가 좁게 모이는 뇌간이 손상되면 양쪽 팔다리가 심하게 마비될 수 있습니다. 「잠수종과 나비」의 인물은 몸을 거의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지만 한쪽 눈으로 글자를 골라 책을 씁니다. 교수는 이를 잠금증후군과 연결하며, 남아 있는 의사소통 능력과 평범한 움직임의 의미를 함께 묻습니다.
「씨 인사이드」에서는 뇌간이 아니라 척추 쪽의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인물이 죽음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겉으로 비슷한 마비처럼 보여도 손상 부위와 남아 있는 기능은 다릅니다. 여기서 논의는 신경 손상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마비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 당사자의 선택과 돌봄을 어떻게 바라볼지 묻게 됩니다. 교수는 이를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둘러싼 문제로 이어 갑니다.
움직임만큼 감각도 중요합니다. 아픔을 느껴야 뜨거운 곳에서 물러나거나 다친 부위를 돌볼 수 있습니다. 「페인리스」에서 아이들은 불을 몸에 대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다쳐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 결과 몸에 상처가 남습니다. 교수는 감각신경의 유전적 문제일 가능성을 말하지만 영화 속 아이들의 정확한 진단명으로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통증은 불편한 느낌인 동시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움직이거나 아픔을 느끼는 일은 너무 익숙해 의식하기 어렵습니다. 그 능력이 줄어든 사람에게 무엇이 남아 있고 필요한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위험을 피하고 필요한 것을 다시 찾으려면 감정과 기억이 작동해야 합니다. 쌓인 경험과 적절한 망각은 이후의 행동에도 영향을 줍니다.
위험한 상대를 만났을 때의 두려움을 기억하면 다음에는 피할 수 있습니다. 교수는 사자를 만난 사슴의 예로 감정과 기억이 생존에 함께 쓰인다고 설명합니다. 뇌 안쪽의 편도체와 해마를 그 설명에 연결하지만, 기억은 오래 간직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충격적인 경험이 계속 떠올라 일상을 해칠 수도 있어 적절한 기억과 망각이 필요합니다.
「메멘토」의 인물은 새로운 일을 오래 기억하지 못해 사진과 메모에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남깁니다. 기록을 보고 다시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순간의 감정과 경험이 쌓여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비유가 됩니다. 같은 강연을 듣고도 사람마다 다른 인상을 갖는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겪느냐에 따라 이후의 생각과 행동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쁨을 주는 경험에 관한 설명에서 논의는 보상과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음식과 사랑처럼 생존·관계에 닿는 경험뿐 아니라 술과 도박도 쾌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주말」의 인물은 술을 얻으려고 물건을 처분하고, 술을 끊었을 때 환각까지 겪습니다. 교수는 여러 경험에서 뇌의 비슷한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 서로 다른 경험과 질환이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선택 뒤에는 어떤 경험이 남아 있을까요? 오래 붙잡는 기억뿐 아니라 일상을 위해 놓아야 할 기억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두엽은 감정과 경험을 취합해 행동을 판단하는 데 관여합니다. 그 기능이 달라질 때 사람의 행동과 관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핀 감정과 기억이 쌓인 뒤 무엇을 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전두엽은 들어온 정보와 감정을 취합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데 관여합니다. 「케빈에 대하여」를 본 교수는 케빈의 폭력을 양육 환경만으로 설명하는 영화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두엽 문제의 가능성을 말합니다. 영화 인물에게 실제 뇌 손상이 확인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고 전두엽을 절제하는 수술까지 시행됐습니다. 교수는 감정과 사회적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셔터 아일랜드」의 마지막 선택을 함께 언급합니다. 수술을 둘러싼 역사적 설명과 영화 속 대사의 의미에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이 보여 주는 것은 행동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의 다른 기능까지 잃게 할 수 있다는 문제입니다.
「스틸 앨리스」에서는 교수였던 인물이 기억과 말, 일상의 기능이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이야기합니다. 익숙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지는 사람을 그 변화 하나로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 교수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돌아보며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뇌의 지평을 넓히자고 말합니다. 질환의 증상 설명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제안은 서로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았을 때 곧바로 사람 전체를 단정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설명이 필요한 기능과 그 사람의 삶을 함께 볼 여지가 있습니다.
사랑과 오래 사는 일은 생존의 기능만으로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남깁니다. 각자의 사정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강연의 마지막에 놓입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는 여성이 젊은 의사보다 나이 든 남자를 선택합니다. 교수는 이 선택을 통해 사랑을 번식에 유리한 상대를 찾는 일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앞서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감정의 역할을 살폈다면, 여기서는 인간의 관계가 그 설명만으로 다 담기는지 생각합니다. 특정 뇌 부위가 누구를 사랑할지 결정한다는 실험 결과로 영화를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의 두 여성은 죽지 않는 삶을 얻지만, 한 남성은 그 약을 거절하고 가족의 추도 속에 생을 마칩니다. 교수는 늙어 가면서 오래 사는 것이 언제나 좋은지 묻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논의는 임사체험으로도 이어지지만, 죽음 뒤의 세계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선을 긋습니다. 체험을 설명할 수 있는 뇌의 작동에 관해서도 자신의 추측으로 말합니다.
「마지막 4중주」에서 파킨슨병을 앓는 연주자를 비롯한 단원들은 각자의 갈등을 안고 무대에 섭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연주만 들리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같은 연주가 달리 보입니다. 교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에 사람마다 여러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넓게 생각하자는 말을 남깁니다. 서로의 속사정을 다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강연의 마지막 시선을 보여 줍니다.
겉으로 조화롭게 보이는 관계에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눈앞의 한 장면 뒤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생각할 여지를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