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데이터를 계산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맥락을 이해하고 감정을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의 어떤 조건을 발견하게 될까요?”
인공지능은 하나의 기술을 넘어 인간이 정보를 얻고 선택하는 방식을 바꾸는 시대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권위, 인터넷 다수의 집단지성, 소셜미디어의 관계망을 거쳐 이제는 이 모든 정보를 학습한 AI가 인간의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합니다. 오늘날 AI의 성능은 방대한 데이터와 GPU의 빠른 연산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자연스러운 언어와 지식 수행으로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빅데이터 AI가 커질수록 수익성, 에너지 소비, 프라이버시의 부담도 함께 커집니다. 인간에게 당연한 상식과 암묵지, 상황의 맥락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더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방식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뇌가 적은 에너지와 제한된 경험만으로 판단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누적된 문화와 경험, 휴리스틱과 감정을 활용해 불완전하지만 빠르고 효율적으로 판단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로봇의 몸을 얻어 현실 세계에서 행동하게 되면, 자신의 몸과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는 항상성과 감정에 가까운 행동 체계도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 AI와 뇌의 원리를 닮은 저전력 인공지능이 함께 발전할 때, 인공지능의 새로운 가능성과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강연 목차
인공지능은 정보를 처리하는 하나의 기술을 넘어,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선택할지를 바꾸는 새로운 의사결정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 플랫폼이 바뀔 때마다 정보를 신뢰하고 선택하는 방식도 바꾸어 왔습니다. 인터넷 이전에는 전문가의 권위가 중요한 기준이었고, 인터넷이 확산된 뒤에는 위키피디아와 평점처럼 다수가 만든 정보가 힘을 얻었습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전하는 정보가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ChatGPT와 제미나이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은 전문가의 지식과 다수의 데이터, 사용자와의 대화 관계를 함께 학습합니다. 이제 AI는 정보를 찾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소비와 판단에 직접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 세계의 현상이 데이터로 축적되고, 그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IoT 센서는 오프라인의 사건을 온라인에 기록하고, 머신러닝은 방대한 자료에서 인간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관계를 찾아냅니다. 딥러닝과 트랜스포머, 대규모 언어모델도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인공신경망 연구 위에서 발전했지만, 공개 데이터의 증가와 GPU의 병렬 연산이 결합되면서 사람 수준의 성능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AI의 힘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라기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ChatGPT의 등장은 계산 능력이 인간 지능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어떤 과정으로 답을 만들었는지보다,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대화를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지능을 평가합니다. 인간은 대화가 자연스러운 대상에게 쉽게 인격을 부여하지만, 자연스러운 언어가 곧 정확한 이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환각과 오류를 보이면서도 인간처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계산 능력과 인간다운 이해가 같은 것인지 다시 묻게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는 기계가 더 많은 답을 내놓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AI가 인간의 선택에 관여할수록, 무엇을 믿고 판단할 것인지 정하는 인간의 역할도 함께 달라집니다.
빅데이터와 계산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은 높은 성능을 만들었지만, 수익성·에너지·프라이버시와 인간의 맥락을 이해하는 문제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AI와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고용과 노동소득을 같은 속도로 늘리지는 않습니다. 인간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도록 가르쳐 온 교육도 기계가 그 일을 더 잘하게 되면서 새로운 질문에 놓였습니다. 산업계는 2000년대 모바일 시장이 성장한 것처럼 다음 시장을 찾으며 3D TV, VR·AR,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등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약속이 언제나 생활과 산업의 변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근 거의 모든 분야가 AI와 결합하는 흐름도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는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현재의 빅데이터 AI에는 세 가지 부담이 있습니다. 첫째, 막대한 투자와 컴퓨팅 비용을 감당할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 필요합니다. 둘째, 대규모 모델과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적은 에너지로 복잡한 판단을 수행하지만, 빅데이터 AI는 성능을 높일수록 더 많은 연산 자원을 요구합니다. 셋째, 개인의 의료·금융·생활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깁니다. 개인 기기 안에서 적은 데이터로 작동하는 온디바이스 AI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인간에게 당연한 상식과 암묵지를 AI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카워시 테스트’는 사람이 상황을 보면 쉽게 판단하는 세차장 문제에서도 AI 에이전트가 맥락을 놓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몸으로 생활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을 쌓지만, AI는 주어진 데이터와 목표에 의존합니다. 강화학습 시스템에 목표를 잘못 설정하면 인간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극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기대한 대로 행동하는 AI를 만들려면 지식의 양뿐 아니라 상황과 의도를 이해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판단은 방대한 계산의 결과만이 아닙니다. 상황 속에서 얻은 경험과 암묵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AI는 정답을 계산하면서도 인간의 의도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모든 정보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제한된 정보와 경험, 누적된 문화, 휴리스틱과 감정을 활용해 불완전하지만 빠르고 효율적으로 판단합니다.
컴퓨터와 인간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부터 다릅니다. 컴퓨터에서는 연산 장치와 메모리,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로가 분리되어 있지만, 뇌에서는 뉴런과 시냅스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며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을 함께 수행합니다. 신경계는 디지털 신호와 아날로그적 연산을 오가며, 작은 크기와 낮은 전력으로도 복잡한 판단을 해냅니다. 구조와 기능이 분리되지 않은 뇌의 작동 방식은 현재 AI의 에너지 소비와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인간은 평생 경험한 데이터만으로 세상을 배우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이전 세대의 지적 성취를 물려받고, 교육을 통해 누적된 문화를 빠르게 습득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을 따라가는 밴드왜건 효과, 성공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경향, 사회 규범을 어긴 사람을 비판하는 행동도 문화를 전수하고 유지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인간의 지능은 한 개인의 뇌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학습하는 능력 위에서 형성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빠르게 일반화합니다. 허버트 사이먼의 휴리스틱과 대니얼 카너먼의 시스템 1·시스템 2는 인간이 가용한 정보와 경험적 규칙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필요할 때 천천히 숙고하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이 과정은 편향과 오류를 만들지만 부족한 정보 속에서 행동하게 하는 효율적인 체계이기도 합니다. 감정 역시 상황이 기쁜지, 슬픈지, 위험한지를 빠르게 판단하고 후속 행동을 조직합니다. 다만 감정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과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말한 ‘느낌’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여전히 다른 문제로 남습니다.
인간의 판단은 완전한 계산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에서 살아가기 위해 형성된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일이 오히려 인간을 닮은 AI를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인공지능이 몸을 가지고 현실에서 행동하기 시작하면 지능은 몸과 환경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이 변화는 자의식과 감정의 기원을 탐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됩니다.
과거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걷고 뛰며 균형을 유지하는 기계적 능력에 집중했지만, 최근의 로봇은 센서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피지컬 AI는 중력 아래에서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고, 임바디드 AI는 이러한 지능을 하나의 몸에 탑재합니다. 정해진 공간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과 달리, 앞으로의 소셜 로봇과 서비스 로봇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안전하게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가정용 로봇은 세탁과 설거지, 청소, 조리처럼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고 사람과 여러 언어로 대화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움직임이 느리고 비용도 높지만, 사람이 집을 비운 시간에 작업하고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면 하나의 생활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과 명상, 반려동물 돌봄을 돕는 기능이 더해지고 대화와 정서적 교류까지 가능해지면, 로봇은 가전제품을 넘어 동반자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생활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와 가족의 모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몸을 가진 AI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네트워크에 분산된 AI와 달리 로봇은 특정한 몸 안에 존재하므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구분해야 합니다. 배터리 수준을 유지하려는 목표는 생명체의 항상성과 비슷한 기능을 하며, 충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불안과 유사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위험을 미리 피하게 하는 불안 프로그램이나 낯선 사람을 경계하게 하는 공포 반응은 로봇의 생존과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때 로봇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같은지 다시 묻게 됩니다. 빅데이터 AI와 뇌에서 배운 저전력·고효율 인공지능은 서로를 대체하기보다 함께 발전하며 이 질문을 구체적인 연구와 산업의 문제로 만들 것입니다.
몸을 가진 AI는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기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몸과 항상성, 감정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게 하며 인간이 느끼고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