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푸는 경영, HR(인사), 사람, 인생 전문 칼럼

왜 나는 늘 같은 지점에서 넘어질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Jul 13, 2026 12:11:17 AM

북중미 월드컵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따 놓은 당상이라던 32강 진출에 실패했고, 팬들은 화가 나 있습니다. 국민 스포츠인 축구에서의 열패감은 그 무엇보다 헤어나기 힘들겠지요. 그런데 우리보다 더한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이탈리아 사람들일 겁니다. 이번 대회 대진표에서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비단결 같던 이탈리아의 자존심은 처참히 구겨졌습니다. 월드컵 통산 4회 우승국이 최근 3개 대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니 말입니다. 축구를 국기처럼 여기는 나라에서 이건 단순한 성적 부진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자부심이 클수록 반복되는 실패의 상처는 커지는 법, 세대 전체의 집단적 트라우마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나쁜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지난 3월 이탈리아 베르가모 밸런스 아레나 스타디움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을 치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이탈리아 사람들은 월드컵에서의 부재라는 현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기억을 거쳐 현재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네 차례나 정상에 올랐던 영광이 있었기에 이번 실패는 탈락이 아니라 추락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기억은 찬란했습니다.

 

현재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 세상과 과거의 기억이 맺는 관계입니다. 가령 리더가 “잠깐 얘기 좀 할까?”라고 말하면 구성원은 곧이곧대로 듣는 게 아닙니다. 그 순간 리더와 나 사이에 쌓였던 수많은 기억을 함께 꺼내어 읽습니다. 늘 좋은 소식을 전하던 리더라면 웃으며 따라가고, 매번 꾸중이 기다리던 경우라면 같은 말에도 가슴이 먼저 철렁 내려앉을 겁니다. 현재의 자극에 과거의 기억으로 반응하는 셈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기억으로 살아갑니다. 기억은 우리를 살게 만들고요. 길을 찾게 하고, 사람을 알아보게 하고, 오래전에 배운 자전거도 다시 탈 수 있게 합니다. 위험했던 경험은 피하게 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의식도 결국 기억 위에서 만들어지고요. 기억이 희미해지면 세상은 매번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낯설어지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억에는 늘 함정이 도사립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비슷한 지점에서 다시 넘어지는 겁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갈등을 겪고, 비슷한 선택 앞에서 또 망설입니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닮게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나는 왜 항상 이럴까.’ 물론 관성에 젖어 이런 질문조차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그 이유를 현재에서 찾습니다. 의지가 부족해서, 성격이 원래 그래서,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잘못된 반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서 시작됩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과거의 해석이 오늘을 움직이는 것이지요.

 

우리 뇌는 과거를 저장하는 창고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입니다. 그래서 매번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새롭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한번 크게 실망한 사람은 다음에도 실망을 먼저 예상합니다. 한번 무시당한 사람은 중립적인 말에서도 비난의 기색을 읽어냅니다. 한번 실패한 사람은 새로운 기회 앞에서도 가능성보다 실패의 그림자를 먼저 바라보고요.

 

과거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사건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닙니다.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이 되지요. 기억이 현재의 의미를 먼저 결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늘 같은 지점에서 걸려 넘어지는 이유이지요. 비슷한 신호 앞에 선 뇌가 비슷한 해석 경로를 먼저 열기 때문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우리는 기억의 인질로 살아간다고 할까요!

 

동물의 행동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학대당하다 구조된 개가 새 주인을 만나도 손만 들면 몸을 움츠리거나 구석으로 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새 주인은 때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쓰다듬으려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세상은 이미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개에게 사람은 여전히 위험한 존재입니다. 현재의 손을 과거의 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런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도 오래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방식을 바꿔 지금의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어야 합니다.

 

과거를 잊으라는 말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잊는 것이 상책이 아닙니다.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 대신 기억을 새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넘어진 경험은 실패가 아니라 균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거절당한 경험은 나의 가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맞지 않는 관계를 만난 일이었다고, 늦은 성공은 뒤처진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였다고 다시 읽는 겁니다.

 

과거의 사건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에 붙이는 제목은 바꿀 수 있습니다. 기억이 올라오는 순간, 그 기억이 붙인 제목과 의미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것이지요. ‘실패’였던 기억을 ‘연습’으로, ‘상처’였던 기억을 ‘성장’으로,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을 ‘시작’으로 다시 해석하는 순간, 과거는 더 이상 발목을 붙잡지 않습니다.

 

이때 떠올려야 하는 것이 ‘시행착오’입니다.

 

시행착오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가진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정답을 찾기 전까지 겪는 불필요한 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길을 잃는 과정이 아니라 길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맞닥뜨리는 세상에서 눈과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처음부터 잘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러니 시행착오는 가장 인간적인 인생인 셈입니다.

 

 

아이는 걷는 법을 배우며 수백 번 넘어집니다. 넘어질 때마다 뇌가 ‘이렇게 하면 넘어지는구나’를 배우는 것이지요. 한 번의 성공보다 수많은 작은 실패가 더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줍니다. 시행착오를 ‘Trial and Error’가 아니라 ‘Error and Trial’로 바꿔 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상호작용이 미래의 나를 바꿉니다.

 

시행착오는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해석하여 현재와 상호작용하는 힘입니다. 실패를 실패로만 남겨 두면 같은 기억은 같은 행동을 만들지만, 실패를 정보로 받아들이면 같은 기억이 새로운 행동을 만듭니다. 어쩌면 생존의 원리, 아니 생명의 원리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아닙니다.
오래된 기억을 새롭게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같은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과거를 족쇄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은 디딤돌로 사용합니다. 과거는 같지만 의미가 다르니 미래도 달라집니다.

 

인생은 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집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으로 형성되었지만, 앞으로의 나는 오늘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시 만들어집니다. 나를 바꾸는 일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상호작용을 더 좋은 방향으로 조정해 나를 다르게 기억하게 만드는 경험을 쌓는 일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개막식 무대에서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르며 전 세계 축제의 시작을 알렸지요.

 

안드레아 보첼리

 

보첼리는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탈락을 아쉬워하면서도, 실패를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받아들여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좌절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출발선에 설 용기를 보여주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마침 그가 부른 월드컵 주제곡에는 “넘어져도 난 다시 일어나”라는 가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 노랫말 안에 보첼리의 인생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같은 기억, 다른 해석이 담겨 있기도 하고요. 그는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나 희미한 빛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축구공에 머리를 맞는 사고로 남은 시력마저 잃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네 일은 네가 해라. 변명하지 마라”며 아들을 강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보첼리도 “축구가 아니라, 그저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라며 어머니의 가르침에 호응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눈을 앗아간 축구는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입니다. 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기억을 쌓는 일이 미래인 것이지요.

 

우리가 같은 지점에서 반복해서 넘어지는 이유는 실패를 너무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오래전 내린 기억의 해석을 한 번도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알아차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기억을 완성작이 아닌, 습작으로 알아차린다면 편안함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은 과거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기억을 오늘 어떻게 해석하고, 지금 만난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느냐가 내일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실패를 반복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실패의 의미를 수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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