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교통질서를 지키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까? 적당히 교통신호를 어기거나 슬쩍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행위자에게 이익이 된다.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는 것은 범칙금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규범이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도 교통신호를 지킬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질서를 지키는 당신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사회규범은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아파트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놓는 것은 누군가 자전거를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와 믿음은 그 동안 자전거를 도둑맞은 주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자전거가 하나 둘 사라진다면, 주민들은 자전거를 집 안으로 들여놓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신뢰는 경험의 누적을 통해 축적되는 일종의 문화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아파트 주민들이 자전거를 다시 밖에 내놓으려면 긴 세월이 필요하듯이,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번 신뢰가 구축되고 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평가에 대한 신뢰
조직에서의 신뢰 역시 서로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 가능하다.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기대하고, 구성원들은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한다. 어느 쪽이든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조직에서 신뢰가 형성되려면, 먼저 평가와 보상이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의 입장이 늘 엇갈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떤 일의 결과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을 평가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결과에는 늘 ‘운’이라는 변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에서 시행하는 보상에는 운에 대한 보상이 포함되어 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구성원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 역시 일정 부분 불운에 대한 처벌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조직이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드는 것은, 그나마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상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표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때로 원치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만 보상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언제나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 자신의 능력을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보상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차별받는 것은 참을 수 있을지언정 공정하지 못한 것은 참지 못한다. ‘공정하다는 것(fairness)’은 ‘공평한 것(equity)’과 다르다. '공정'이 옳고 그름에 관한 도덕적 정의(justice)를 포함하고 있다면, ‘공평’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등의 개념에 가깝다. 인간 세상에서 완전한 평등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누군가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고자 시도하려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진 존재여야만 한다. 또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려면 그 체제를 유지할 권력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평등에 위배된다.
공정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사회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어느 정도 이를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공정성이 훼손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인간은 공정성을 추구하려는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여기는 기준보다 적은 몫을 받을 때 통증 및 역겨움과 관련이 연관되어 있는 뇌섬엽(insula cortex)이 활성화된다.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남성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진다. 불공정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느끼며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2000년에 진행된 실험에서 사람들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너스가 지급되자 상대방의 보너스를 삭감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공정함을 경험할 때 뇌는 도파민, 세토토닌,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공정한 세상에서는 연대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도 상승하는 것이다. 반면 불공정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호르몬이 증가한다. 공정하지 않는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은 정서적 불안정과 함께 건강도 나빠지는 것이다. 공정성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큰 동인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보상이 된다.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평균 이상의 보상을 기대하게 만든다. 만일 기대보다 적은 보상이 돌아오면 구성원들은 평가 기준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뿐 아니라 조직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평등한 것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똑 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성과를 낸 사람들은 뭔가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실력 있는 인재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한 것일까? 당신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해변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신다고 상상해보자. 맥주를 파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호텔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려면 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똑 같은 맥주를 5,000원에 판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이 상황은 1985년에 진행된 실험을 응용한 것이다. 두 곳에서 파는 맥주는 오직 파는 장소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작은 구멍가게가 호텔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함의 기준이 매우 정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거래비용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의 대가로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한다. 기대가 충족되면 맥주의 가격은 공정한 것이 되지만,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맥주 가격은 불공정하다. 따라서 공정하다는 의미는 기대한 만큼 보상을 지불하거나 받는 것이며, 불공정하다는 것은 기대한 가치 이상으로 보상을 지불하거나 받는 것이다.
공정성이 신뢰문화를 구축한다
우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도 정당한 가격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기대한다. 즉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공정성을 기대하는 마음이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동료가 적절한 보상을 받았을 때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이 기대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 이러한 기대와 충족의 즐거움이 조직의 신뢰를 구축한다.
신뢰는 성과에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형성될 수 없다. 조직에서의 신뢰는 그 자체가 문화로 정착될 때 큰 효과를 발휘한다. 문화도 기대를 바탕으로 정착된다. 청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기대가 가능할 때, 청바지 차림이 조직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조직문화는 공식적인 규칙이 없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에게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정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정신적 소프트웨어 역할을 한다.
조직은 문화에 의존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문화는 아침식사로 전략을 먹는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문화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전략이 뒤쫓아가기 버겁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략은 결코 문화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야말로 조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다. 모든 구성원이 성실히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조직에서는 무임승차가 발생하지 않는다.
조직문화가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까지 문화가 전승되기 때문이다. 신뢰문화가 정착된 조직은 어느 한 쪽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한, 다음 세대까지 계승된다. 또 공정성이 유지되는 한, 신뢰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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