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푸는 경영, HR(인사), 사람, 인생 전문 칼럼

미래 | 나는 내 인생의 예언자

Written by 자인플랫폼_곽민지 | Mar 6, 2024 5:57:04 AM

프로야구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점점 변화무쌍해지는 날씨 변수에 올해는 아예 일찍 시작하네요. 겨우내 기다리던 팬들의 마음도 일찌감치 설렙니다. 전문가들의 판세 예측 역시 난무하고요. 사실 매해 그렇듯 그 누구의 분석이나 전망도 족집게처럼 뾰족하진 않습니다. 이럴 때 늘 떠오르는 말이 있지요. “아, 야구 몰라요.” 어느 유명 야구 해설가의 너무나 유명한 말입니다. 덩달아 “아, 인생 몰라요”라는 말도 유행했지요. 야구 좀 해봤으면, 인생 좀 살아봤으면 고개를 절로 끄덕끄덕할 만합니다.

 

 

 

 

이 말은 주로 9회 말 투 아웃 상황에서 나오곤 했습니다. 패색이 짙은 팀을 응원하는 의미였지요. 팬들도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야구 명문의 우리식 버전인 겁니다. ‘모른다’는 말이 이처럼 희망적일 수 있다니! 야구도 인생도 참 재밌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린 한 치 앞의 미래도 몰라 희망할 수 있는 건지 모릅니다. 미래를 알면 노력 같은 걸 할까요, 자만이나 포기만 넘쳐나겠지요. 야구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처럼 예기치 않은 결과를 즐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상황을 질색하고요. 공정의 틀 안에서 의외의 결과도 나오는 법입니다. 

 

이처럼 ‘뜻밖’이란 게 존재하려면 일단 ‘예측’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에서 수비수는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공이 떨어질 방향을 예측하고 뛰어갑니다. 그렇다고 그 예측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또 아닙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예측을 수정해가며 뛰어가는 방향과 속도, 보폭을 조정하지요. 이 과정을 좀 더 나눠보면 ‘자극 → 예측 → 검증 → 수정 → 예측 → 검증 → 수정’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비수가 공을 잡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행동하는 전 과정에서 이런 메커니즘이 반복됩니다. 우린 매 순간 끊임없이 예측하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게 빗나가는 경우가 있어 애가 탈 뿐이지요. 

 

 

 

 

우리가 예측하고 판단하는 이유는 결국 원하는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입니다. 판단하려면 먼저 ‘예측’이 필요하겠지요.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현재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요. 또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판단하는 거지요. 기억은 바깥 세상을 내 속에 옮겨 놓은 겁니다. 기억은 뇌에 있고 뇌는 내 안에 있습니다. 그걸 좀 야들야들하게 ‘마음’이라 표현하지요. 뇌가 내 안에 있다는 건 내가 뇌 안에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 기억으로 보고 듣고 느끼니까요. 뇌는 외부 세상을 내부로 가져와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와 기억을 바탕으로 세상을 재구성하여 인식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건 기억이 만든 인지적 세상인 셈입니다. 결국 세상은 ‘가상(假象)’이라는 거지요. 야구 코치가 선수에게 실전처럼 연습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복잡한 문제나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해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의 오래된 꿈 중 하나가 인생을 미리 내다보는 겁니다. 사실 앞날을 예측하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있었지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와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해 운명을 해석하는 ‘사주’가 대표적입니다. 중세부터 유럽에서 사용된 그림 카드 ‘타로’도 여전히 점치는 데 사용되고 있고요. 믿거나 말거나 예전부터 지금까지 전통을 갖고 전해지고들 있는 겁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사주는 민간에서 유행하던 점술입니다. 사실 입증된 결과는 없지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요즘도 '사주·운세' 문구가 적힌 곳에 젊은이들이 줄을 섭니다. 전화 사주풀이와 온라인 사주 사이트, 운세 앱을 넘어 이제는 유튜브로도 운세를 보고요. 인생이 막막한 청년들이 가세하며 운세 산업이 소위 ‘대박’ 행진을 잇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요즘 세대가 사주를 보는 이유는 옛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운세를 보며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효과를 누리기도 하고요. 일종의 심리 상담인 셈이지요. 

 

최근 인생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데이터과학자 수네 레만을 비롯한 덴마크 연구진이 교육, 직업, 소득, 건강, 성격 등 인생의 중요한 요소들을 지표로 인생 진화의 예측 가능성을 조사했던 겁니다.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컴퓨터과학〉에 소개되었지요. 인생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인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인생 중간중간 맞춤형 개입도 가능하다는 전망이었습니다. 날씨 예보처럼 인생 예보도 나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지요. 아직 그 정확성을 장담할 수준은 아니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비롯한 제반 학문이 융합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예언자’입니다. 앞서 봤듯 우리 뇌가 ‘예측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뇌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연결의 패턴을 따라갑니다. 특히 생존에 최적화된 시나리오를 골라 미래를 그려 나가지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범주화’입니다. 새로운 자극이 입력되었을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 꾸러미에 의존하여 자극을 분류하는 겁니다.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의 기억을 바탕으로 발휘하는 기술이지요. 자극이 들어오면 뇌는 해당 자극과 관련된 기억을 인출하고 자극을 범주화하여 개념을 만듭니다. 우리 조상은 수풀 속에 숨은 호랑이의 꼬리만 보고도 호랑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호랑이의 전형적인 생김새가 기억 속에 범주화되어 있었던 겁니다. 동시에 호랑이는 위험한 ‘맹수’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어 있었고요. 그래서 수풀 사이로 드러난 호랑이의 꼬리만 보고도 잽싸게 나무 위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 역시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존속을 위한 ‘예측 체계’입니다. 생명 유지를 위한 항상성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적 과제이지요. 먹고 자는 이유도, 놀고 사랑하며 일하고 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체의 내분비계, 면역계, 기관계, 신경계 등 모든 시스템이 예측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체가 존속을 유지하려면 환경의 동적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요컨대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은 생명체의 존속을 위한 기본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예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경계는 늘 예측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매 순간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고 자극이 들어올 때마다 다시 개념을 수정하지요. 초기에는 대강의 개념으로 시작하지만, 예측과 수정이 반복되면서 예측의 정확성이 점점 높아집니다. 이 과정에는 무의식과 의식을 포함하여 모든 인지적 자원과 기능이 총동원되고요. 예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동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잠시도 예측을 멈추지 못하지요.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삼 그 기원이 된 이야기를 꺼내진 않겠습니다. 다만 일이 생길 때마다 노인이 보인 반응에 주목합니다. “누가 압니까?” 즉 ‘모른다’는 말이지요. 어쩌면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지혜’이겠지요. 최고의 ‘예측’이자 ‘예언’인 겁니다. 좋은 일을 만났다고 마냥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좋지 못한 일을 미리 대비하지요. 또 좋지 못한 일을 만나면 앞으로 다가올 좋은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어려움과 위기를 견디고요. 하지만 모두가 쉽게 이런 지혜를 가질 순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의 ‘예언자’이지만 인생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지요. 따라서 예측의 수준을 높여 바른 판단을 하는 게 인생의 질과 격을 상승시키는 길인 듯합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을 갖는 게 그 수준이요, 지혜 아닌가 싶고요. 

 

 

 

 

‘야구 모른다’고 했던 해설가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방황하던 십 대 시절부터 전쟁 참전, 교사 생활 그리고 야구 해설가, 방송인, 자영업자, 야구 행정가까지 참으로 다채로웠지요. 변신과 역경 속에 투병까지 하며 결국 9회 말 그의 야구는 끝이 났습니다. 생전에 그는 그답게 ‘실전형’ 해설가였습니다. 데이터 분석은 좀 부족했어도 풍부한 인생 체험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게 해설하는 백전노장이었지요. 그는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도 세상에 뛰어드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이 그에겐 자기 인생의 ‘예언’이자 ‘희망’이었을 겁니다. 사주에 ‘환혼동각(幻魂動覺)’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같은 사주인데 다른 인생을 사는 이유에 대한 답이지요. 조상이나 부모, 환경이 모두 다르고 특히 ‘각(覺)’이라고 하는 깨달음, 즉 지혜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인생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다름 아닌 ‘나’라는 가르침이지요. 하늘 역시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겁니다. 

 

현재와 미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입니다. 동시에 둘을 다 가질 수는 없지요. 꽃봉오리를 바라보면 기대와 설렘, 바람이 생깁니다. 이미 피어난 꽃과는 다른 심상이지요. 어찌 보면 ‘여명(黎明)’의 상태와 흡사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도 될 수도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인생에 완성이란 게 어디 있을까요! 그저 꽃봉오리로 남지요. 그러니 무엇이든 지금 일단 해보는 겁니다. 무엇이든 하고 있을 때 기회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좀 더 집중해볼까요? 이게 자기 인생의 예언자가 가져야 할 재능이자 자세 아닐까요? 

 

 

모든 콘텐츠는 제공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거 무단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