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회의에서는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발표를 맡기면 긴장했고, 의견을 물어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조용하고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 자신도 그렇게 믿었을 겁니다.
어느 날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객의 요구가 갑자기 바뀌었고, 준비하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당황한 사이 그 사람이 차분히 고객의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고,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할 일을 나누었으며, 진행 상황에 맞춰 계획도 계속 고쳤습니다.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에게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힘도,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힘도, 끝까지 실행을 조정하는 힘도 있었습니다. 그 힘이 발휘될 만한 목적과 관계를 만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으로 자신을 판단합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위축되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가진 역량을 언제나 전부 발휘하며 살지 않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움츠러들고, 어떤 기회에서는 자신도 몰랐던 힘을 꺼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정말 내 가능성의 전부일까요?
역량은 가치를 향해 움직이는 힘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에게 필요한 가치를 추구합니다. 식물은 햇빛과 자양분을 향해 뿌리와 줄기를 뻗고, 동물은 먹이와 안전한 환경을 찾아 움직입니다. 사람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배우고, 일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가 성과입니다. 성과가 쌓이면 성공경험이 되고, 성공경험은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할 힘을 줍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해낼 수 있는 일이 늘어날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이 과정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역량(competency)’입니다. 역량은 무엇을 가치 있게 볼지 판단하고, 그 가치를 얻기 위해 움직이며,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방법을 찾고 행동을 조정하게 합니다. 뇌가 경험을 통해 형성한 가치중심적 신경경향성으로서, 성과를 만드는 여러 기능을 작동시키는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과를 만드는 기능에 따라 역량을 살펴보면 일곱 가지 기반역량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상과 상황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긍정성, 그 가치를 향해 움직이는 적극성,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안정성이 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대인력, 원하는 결과에 이르는 길을 찾는 전략력, 실행 과정을 조정하는 제어력, 여러 정보와 관점을 종합해 판단하는 통합력도 필요합니다.
하나의 성과에도 여러 역량이 함께 작용합니다.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전하며, 사람들과 협력해 전략을 세우고, 실행 결과를 살펴 행동을 고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량을 발휘해 세상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고, 그 대가로 새로운 기회를 얻습니다. 그 기회가 더 큰 성과로 이어지면서 인생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경험은 역량의 바탕을 만든다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를 떠올려봅시다. 부모가 뒤에서 잡아주어도 몸이 조금만 기울면 겁이 납니다. 핸들과 페달을 동시에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다시 올라타면서 몸의 균형을 익히고, 장애물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며,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뒤에서 잡아주던 손이 사라졌는데도 혼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자세를 바꾸고, 다시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한 경험이 뇌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세상과 상호작용할 때마다 감각과 판단, 행동과 결과의 관계를 학습합니다. 경험이 반복되면 관련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과 신경망의 활성화 양상이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자주 사용한 반응은 점차 쉽게 일어나고, 오랫동안 축적된 반응 패턴은 비교적 안정된 ‘신경경향성’으로 자리 잡습니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경험이 되고, 경험이 기억으로 남아 역량 형성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성장기의 경험이 특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전두피질을 비롯해 가치 판단과 행동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망은 성장기 동안 환경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며 발달합니다. 개인과 인지 기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발달은 대체로 25세 전후에 거의 마무리됩니다. 한 사람이 보유한 기반역량도 이 시기에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됩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뇌는 계속 배우고 변화합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고, 경험을 통해 판단과 행동도 정교해집니다. 다만 성인의 성장에서는 보유역량 자체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가진 역량이 더 충분하고 바람직하게 발현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같은 사람도 누구와 함께하는지, 어떤 기회를 만나는지, 어떤 태도로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위축되었던 대인력이 살아나고, 만들어야 할 결과가 분명하면 전략력과 제어력이 집중됩니다. 자신의 판단을 차분히 돌아보면 감정과 관성에 가려졌던 통합력도 제 기능을 찾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역량이 있습니다. 보유한 역량과 현재 발현하고 있는 역량 사이에 남아 있는 가능성, 그것이 잠재력입니다.
가능성은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난다
역량은 혼자 있을 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행동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인력이 충분한 사람도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면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전략력이 뛰어난 사람도 목적이 불분명한 일에서는 어디에 힘을 집중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제어력과 통합력을 갖추고 있어도 감정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면 익숙한 반응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역량의 발현 수준은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동의 목적을 찾으면 대인력이 작동할 자리가 생깁니다. 만들어야 할 성과를 분명히 하고 결과를 추적하면 전략력과 제어력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여러 역량을 현재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작아지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역량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CSR은 역량 발현을 돕는 기술이다
CSR은 바로 이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강화해서 역량 발현을 도와줍니다. 소통기술(Communication)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전략기술(Strategy)은 성과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성찰기술(Reflection)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기술입니다.
소통할 때는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살피고, 이 대화를 통해 함께 이루려는 목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상대기반 목적중심 소통은 자신의 입장에 갇히지 않도록 하며, 대인력이 더 잘 발현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듭니다.
전략을 세울 때는 세상과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파악하고, 만들어야 할 성과에 맞춰 방법과 자원을 배치해야 합니다. 실행하는 동안에는 실제 결과를 추적하며 경로를 조정합니다. 가치기반 성과중심 전략은 전략력과 제어력이 성과를 향해 집중되도록 돕습니다.
성찰할 때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자신의 해석을 구분하고, 판단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객관기반 합리중심 성찰은 감정과 관성에 끌려 같은 반응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며, 제어력과 통합력이 현재의 사실에 맞게 작동하도록 돕습니다.
CSR은 타인, 성과, 자신과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계기술’입니다. 또한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해 보유한 역량의 발현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역량기술’입니다. 소통은 대인력이 발현될 관계를 만들고, 전략은 전략력과 제어력을 성과에 집중시키며, 성찰은 제어력과 통합력이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작동하게 합니다.
CSR을 익히고 생활 속에서 활용하면 지금까지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던 역량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대인력이, 원하는 결과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전략력이,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제어력과 통합력이 발현됩니다. 긍정적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자신이 가진 힘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더 잘 알게 됩니다.
역량이 지식과 기술을 만날 때
역량이 성과의 근본적인 힘이라 해도 실제 결과를 만들려면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과 능력 = 역량 × 지식 × 기술
역량은 가치를 추구하며 성과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기능이고, 지식은 판단과 실행에 사용하는 정보와 데이터입니다. 기술은 지식을 성과로 옮기는 절차와 방법입니다. 능력은 이 세 요소가 특정한 상황에서 결합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프로그래밍 지식이 풍부하고 코드를 구현하는 기술이 뛰어난 개발자를 생각해봅시다. 혼자 맡은 문제는 능숙하게 처리하지만 동료의 의견을 듣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결과보다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기능을 고집한다면 팀의 성과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충분한 지식과 기술이 대인력과 전략력을 통해 세상이 원하는 가치로 연결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반대로 사람들과 협력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목표를 향한 열정이 충분해도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면 원하는 결과를 완성하기 어렵습니다. 역량과 지식, 기술은 서로 곱해져 능력이 됩니다. 어느 한 요소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 능력도 제한됩니다.
CSR은 세 요소가 실제 상호작용 속에서 연결되도록 돕습니다. 소통을 통해 상대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전략을 통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성과에 맞게 사용하며, 성찰을 통해 판단과 실행을 계속 조정합니다. 그 과정에서 역량이 충분히 발현되고, 배운 지식과 숙련된 기술이 실제 성과로 이어집니다.
성공경험은 다음 가능성을 연다
역량을 충분히 발현해 성과를 만들면 눈에 보이는 결과와 함께 한 가지 중요한 경험을 얻습니다. ‘내가 한 행동으로 세상의 반응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입니다.
작은 성공이라도 직접 만들어본 사람은 다음 도전 앞에서 자신과 기회를 믿을 근거를 갖게 됩니다. 조금 더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며, 더 다양한 사람과 협력합니다.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역량은 성과를 만들고, 성과는 성공경험이 되며, 성공경험은 다음 도전을 이끕니다. 새로운 도전은 지식과 기술을 넓히고, 보유한 역량이 더 높은 수준으로 발현될 기회를 만듭니다. 성공과 성장은 이 선순환 속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역량을 언제나 충분히 발휘하며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위축되었고, 어떤 일에서는 목적을 잃었으며, 때로는 감정과 익숙한 판단에 끌려 같은 반응을 반복했습니다. 아직 사용해보지 못한 힘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CSR은 그 가능성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상호작용의 방식을 바꿉니다. 상대의 마음과 필요를 이해하고, 만들어야 할 성과에 집중하며,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돌아볼 때 보유한 역량이 더 충분히 발현됩니다. 그 역량이 지식과 기술을 만나면 능력이 되고, 능력으로 만든 성과는 성공경험으로 남아 다음 성장을 이끕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의 가능성은 혼자 품고 있을 때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우리는 아직 자신의 역량을 모두 사용해보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상호작용은 미처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성과로 드러냅니다. 현재의 부족함이 인생의 결론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모든 콘텐츠는 제공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