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이기와 이타, 무엇이 날 해방시킬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Oct 14, 2026, 12:08:26 AM

우리는 이기와 이타를 하나의 저울 양쪽에 올려놓습니다.

 

 

나를 위하는 마음과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나를 위하면 이기적이고, 나를 희생해 남을 위하면 이타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행동에서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으면 그 마음의 순수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기부를 하면서 세금 혜택을 받으면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면 역시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면서 좋은 평판을 얻으면 선행보다 홍보를 먼저 떠올리기도 하고요. 타인을 위해 한 일에서 내가 얻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행동은 이타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위한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자녀의 행복이 부모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친구의 고통이 나에게도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이고요. 낯선 사람을 도왔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그 사람이 나의 관심과 가치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행복이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하게 됩니다.

 

이기와 이타는 언제나 서로 반대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나는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인간은 본래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일까요. 아니면 선하고 이타적인 존재일까요.

 

가족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면서 경쟁자에게는 냉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누구보다 민감한 사람도 있고요. 친구의 어려움에는 발 벗고 나서면서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 나누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제 이런 오래된 논쟁에서도 조금은 해방될 필요가 있고요.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협력하고, 인정받으며 함께 살아가려는 욕망도 있고요. 삶의 의미와 더 넓은 공존을 추구할 수 있는 정신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기 혹은 이타의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싶은 존재일 뿐이지요.

 

타인을 돕는 일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도 보람과 기쁨을 줍니다. 누군가를 돕고 행복을 느낀다고 그 마음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위하면 이기적인 걸까

모든 이기를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릅니다. 자기 존중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나만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무시하는 마음은 없애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은 채 가족을 위해, 조직을 위해, 사회를 위해 계속 자신을 희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지치고 주변 사람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위급할 때 먼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이유도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출발 전 산소마스크 사용법을 안내합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산소마스크가 내려오지요. 어린 자녀와 함께 있다면 아이에게 먼저 씌워주고 싶겠지만, 안내는 다릅니다. 먼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뒤 어린이나 다른 승객을 도우라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숨을 쉬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순서를 뒤집으려고 합니다. 보호자는 아이에게 먼저 산소마스크를 씌우려고 하지요.

 

우리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러나 나를 돌보고 지키는 일은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쳐 쓰러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여유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힘도 남지 않습니다.

 

철면피한 이기가 아니라면 이기를 없앨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 나를 향하던 마음의 범위를 넓혀가면 됩니다. 나를 지키는 마음에서 시작해 가족과 친구, 동료와 사회로 그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이기와 이타의 마음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한 추앙, 너를 향한 환대

출처: JTBC 〈나의 해방일지〉 공식 홈페이지

 

여기서 《나의 해방일지》 이야기를 떠올려볼까요.

 

이 드라마는 반복되는 일상과 답답한 관계 속에서 삶의 해방을 꿈꾸는 세 남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말없이 술만 마시는 정체불명의 외지인 구씨가 나타나지요.

 

둘째 미정은 그런 구씨를 눈여겨보다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은 채 조금씩 마음을 나눕니다. 미정은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요. 그 과정에서 유명한 대사가 나옵니다. “날 추앙해요.”

 

사랑 때문에 상처받아온 미정이 어느 날 낮부터 취해 있는 구씨에게 건넨 말입니다. 이상하지요. 사랑도 아닌 추앙이라니요. 그것도 술 말고 할 일이라며 자기를 추앙하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미정은 왜 구씨에게 추앙을 원했을까요.

 

미정에게 추앙은 신처럼 높이 받들라는 뜻이 아닌 듯합니다.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 늘 남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아오며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했던 미정에게 필요했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정에게 추앙은 사랑보다 먼저, 한 사람으로 온전히 존중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보입니다. 오래 미뤄두었던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꺼낸 건강한 이기의 마음이지요.

 

삶의 바닥에 내려앉은 사람에게 충고의 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경험입니다. 구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미정이 먼저 구씨를 추앙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추앙하면서 구씨는 점차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다른 존재를 바라볼 여유까지 갖게 됩니다. 자신을 배신한 형에게 이런 말까지 하지요. “환대할게.”

 

이 말이 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추앙이 자신을 회복시키는 이기의 경험이었다면, 환대는 그 경험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환대는 단순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잘 대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나와 다르고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그가 존재할 자리를 내어주는 이타에 가깝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추앙과 환대는 이기와 이타가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기는 나만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요. 그리고 나의 삶을 존중하는 경험은 타인의 삶도 존중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줍니다.

 

이타 역시 나를 희생해 타인을 위해주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관계는 그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나는 주고, 너는 받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선한 행동이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경계가 남습니다.

 

이기에서 출발한 마음이 이타로 확장되고, 이타를 통해 다시 나의 삶이 넓어지는 것. 추앙과 환대는 나와 너의 삶을 함께 존중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타는 나를 없애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조금 자라면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고, 친구가 생기면 친구의 기쁨과 슬픔도 중요해지고요. 조직에 속하면 동료와 팀의 성과가 나의 일이 되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삶에도 마음을 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다음 세대와 미래까지 연결해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의 범위가 넓어진 것일 뿐입니다.

 

성숙한 이타는 나를 지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환대가 나를 내려놓고 너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나와 타인을 나누던 경계가 희미해지는 데 이타가 있습니다.

 

이 과정의 핵심이 ‘공감’과 ‘동일시’입니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고 느끼게 합니다. 동일시는 타인을 자신과 연결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고요. 동일시가 일어나면 타인의 행복은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외부의 가치가 아닙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체계의 일부가 되지요. 또 그 관계는 점차 확장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자녀를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타인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료의 성장을 돕는 것은 그의 성장이 함께 일하는 조직과 자신의 삶에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고요. 낯선 사람을 돕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그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 타인의 행복을 나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변화는 마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협력하면 손해를 보고, 정직하면 불리하고, 기여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는 이타를 오래 지키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서로 돕는 것이 신뢰로 이어지고, 기여한 만큼 성장할 기회가 생기고, 정직한 행동이 좋은 관계로 돌아오는 환경에서는 사람도 달라집니다.

 

이타는 결코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나의 행복이 닿는 곳을 넓혀가는 일이지요.

 

‘나’의 범위가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기와 이타를 충돌하는 것으로만 보면 우리는 계속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나를 먼저 위할 것인가, 남을 먼저 위할 것인가.

 

그 사이에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나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도 나의 삶과 연결된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미정은 구씨를 만나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추앙은 구씨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환대로 이어졌고요. 해방은 혼자 빠져나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가두던 얄팍한 경계에서 벗어나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나로 살아가는 일이었지요.

 

나의 이기를 온전히 존중받는 경험은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했느냐가 아닙니다. 서로의 이기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각자의 삶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내가 잘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일이 되고, 누군가의 성장이 다시 나의 기쁨이 됩니다. 이기는 그렇게 이타의 마음으로 넓어질 수 있습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를 위한 삶과 타인을 위한 삶을 굳이 나눌 필요도 없어집니다. ‘나’의 범위 안에 이미 ‘너’가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나를 존중하고 지키는 데서 시작하고, 이타는 그런 ‘나’의 범위를 넓혀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해방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세계를 넓히는 데 있고요.

 

나만을 위해 사는 것도, 나를 희생하며 사는 것도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먼저 나를 추앙하고, 그 힘으로 내가 타인을 환대하고, 그 환대 속에서 다시 더 넓어진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 우리의 해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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