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유능한 개인은 어떻게 강한 조직이 될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Oct 12, 2026, 3:02:13 AM

앨런 멀러리가 포드의 CEO로 부임했을 때, 보고서는 온통 초록색이었습니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표시였지요. 회사는 막대한 적자를 앞두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멀러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임원들은 문제를 공개하면 경력에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습니다. 해결책을 마련한 뒤에야 보고하는 관행도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게 했고요.

 

그러던 중 신차 출시 문제를 다룬 빨간색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멀러리는 박수를 치며 다른 임원들에게 도울 방법을 물었고, 기술 자료를 제공하고 엔지니어를 보내겠다는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몇 주 뒤 차량 출하가 재개됐고, 다른 보고서에도 빨간색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드러내자 비로소 동료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이전에도 임원들은 같은 회의에서 보고서를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어려움을 모르니 필요한 도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는 과제는 AI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맥킨지의 2026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80퍼센트가 AI가 자신의 생산성을 높였다고 답했지만, AI가 조직의 이익(EBIT)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답한 비율은 37퍼센트였습니다. 두 지표는 성격이 달라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개인의 효율이 조직의 성과로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합니다.

 

AI로 제안서 작성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더라도, 내부 승인에 일주일이 걸린다면 고객에게 제안하는 시점을 앞당기기 어렵습니다. 관련 부서가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고집한다면 실행은 더 늦어질 수 있고요. 개인의 능력이 조직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걸림돌이 있는 것이지요.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교육하며 더 나은 도구를 제공하는 일은 조직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 가능성을 성과로 연결하려면
각자의 능력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협력하는 것은 다르다

 

조직에서 소통을 돕는 도구는 넘쳐납니다. 메신저와 이메일로 수시로 연락하고, 문서를 함께 수정하고, 필요하면 바로 회의도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함께 해냈는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의견은 수없이 오갔지만 결정은 없고, 각자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혼자 풀고 있을 수 있지요.

 

업무용 소프트웨어에 보고서 기능을 추가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영업 담당자는 고객이 원하는 양식을 더 넣자 하고, 개발자는 출시일까지 모두 구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디자이너는 선택 항목이 많아지면 사용하기 복잡해질 것을 걱정하고요. 이렇게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개발 범위를 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여러 양식을 요구하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면 논의가 달라집니다. 기존 자료를 보고서에 반복해서 옮겨 적는 것이 문제라면 양식을 늘리는 대신 자료를 자동으로 불러오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발자는 기능을 제안하고, 디자이너는 필요한 항목만 선택하는 화면을 설계하고, 영업 담당자는 고객에게 시안을 보여주고 개선점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협력은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전문성이 공동의 판단과 실행에 쓰여야 하지요. 한 사람의 정보가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바꾸고, 그 판단이 새로운 해결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물론 협력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듭니다. 사람을 더한다고 반드시 효과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면 종이는 찢어질 수 있습니다. 협력하기 전에 함께 이루려는 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동의 목표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같은 목표 아래에서도 부서마다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신제품의 성공적인 출시가 목표라면 마케팅은 출시일을, 개발은 제품의 안정성을, 영업은 고객의 요구를 우선할 수 있습니다. 모두 필요한 일이기에 충돌이 생겼을 때 무엇을 먼저 선택할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공유할 때는 해결할 고객의 문제와 이번에 반드시 제공해야 할 가치를 구체적으로 합의해야 합니다. 일정과 품질, 기능에 관한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면 선택의 기준도 함께 정하고요. 그래야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기준으로 각자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앞선 예에서 목표를 ‘고객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정했다면 양식의 개수보다 자료를 정확하게 불러오는 기능을 우선할 근거가 생깁니다. 이후에는 고객이 실제로 절약한 시간을 확인하면 되고요.

 

공동의 목표가 있다고 모두 같은 의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개발자는 기술적 위험을, 영업 담당자는 고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기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검토하되, 최종적으로는 같은 목표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목표를 설명했다면 구성원의 업무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목표 때문에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미룰 것인지까지 달라져야 목표를 공유했다는 말에 실질적인 의미가 생기니까요.

 

능력과 함께 그 능력이 쓰이는 조건을 살핀다

목표가 분명해도 협력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부서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 부서는 더 맡을 여력이 없을 수 있지요. 책임은 주어졌는데 결정할 권한이 없거나, 동료를 돕느라 자신의 실적이 줄면 평가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고요.

 

조직에서는 사람과 제도, 정보와 자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사람과 제도를 따로 살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문제가 서로의 영향을 함께 보면 나타납니다. 관계의 관점에서 경영한다는 말은 이런 상호작용까지 다룬다는 뜻입니다.

 

공동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평가는 개인 실적만 본다면 구성원은 협력보다 자신의 목표를 우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임에 비해 권한과 자원이 부족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영업은 계약 건수로, 개발은 납기 준수율로 평가받는다고 해보겠습니다.

 

영업이 계약을 늘리려고 고객의 추가 요구를 받아들일수록 개발은 납기를 맞추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협력을 더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에게 약속할 수 있는 범위와 일정, 필요한 자원을 함께 조정하는 일입니다. 공동의 성과에 기여한 노력도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고요.

 

포드의 빨간색 보고서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알리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경험 많은 사람도 정보를 감출 수 있습니다. 반면에 문제를 공개했을 때 도움을 받고 해결되는 경험이 쌓이면 누구든 어려움을 더 일찍 알릴 수 있습니다.

 

HR이 역량 개발과 조직 운영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채용과 교육이 필요하지만, 이미 가진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업무 배분이나 권한, 평가 기준을 바꾸는 일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문제인지, 능력이 쓰이는 조건의 문제인지 구분해야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하나의 성과로 모으는 방법

 

미국의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한 명의 상임 지휘자 없이 단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조율하며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품마다 리더를 바꾸고, 각 파트의 리더가 연주 준비와 음악적 해석을 이끕니다. 논의한 내용을 전체 리허설에서 함께 확인하고, 필요하면 최종적으로 결정할 사람을 정하기도 하고요.

 

연주자가 악기를 내려놓고 객석으로 나가 전체 소리를 듣는 관행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자신의 파트를 연주할 때 중요하게 느꼈던 문제가 전체에서는 사소할 수 있고, 혼자서는 알아채지 못했던 불균형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를 충실히 연주하는 데서 나아가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듣고, 청중의 입장에서 음악을 판단하는 셈입니다.

 

업무에서도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획자는 기획서를 완성한 뒤 개발자와 요구사항을 검토하고, 구현에 필요한 설명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는 구현한 기능을 고객의 실제 업무에 적용해보며 사용상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고요. 자신의 결과물을 다음 사람이 활용하는 데 필요한 조건까지 갖춰야 각자의 일이 공동의 성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모든 일을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견을 들어야 할 사람과 최종적으로 결정할 사람을 구분하고, 결정의 근거를 공유하면 각자는 자신의 범위 안에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견을 제시할 기회와 맡은 일을 완결할 권한이 함께 있으면 협력이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함께 판단할 때와 각자 집중할 때를 구분한다

협력할 사람이 많아질수록 모든 과정에 모두를 참여시키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하지만 각자의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회의가 늘어나면 실행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메시지 하나를 확인하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끊긴 사고를 다시 이어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하루 종일 바빴는데 정작 중요한 일은 끝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의 성격과 단계에 맞춰 참여 범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을 때는 다양한 관점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방향이 정해진 뒤에는 담당자가 실행에 집중하되, 다른 사람의 일에 영향을 주는 변화가 생겼을 때 다시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요.

 

진행 상황은 문서로 공유하고, 우선순위가 충돌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함께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일정 지연이나 요구사항 변경처럼 다시 상의해야 하는 상황도 미리 정해두면 각자 일하는 동안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AI로 절약한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안서 작성이 빨라졌다면 확보한 시간을 고객의 요구를 더 살피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안이 승인 단계에서 계속 지연된다면 검토에 필요한 정보와 결정권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협력에는 동료에게 도움을 주는 일뿐 아니라 동료가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지켜주는 일도 포함됩니다.

 

리더는 시너지가 생기는 조건을 설계한다

리더가 처음부터 협력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결정 참여자를 줄였더니 필요한 정보가 빠질 수 있고, 정보 공유를 늘렸더니 실행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은 새로운 제도에 맞춰 행동을 바꾸고, 고객과 시장의 요구도 계속 달라집니다.

 

협력의 방식은 결과를 보며 고쳐가야 합니다. 회의와 메시지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협력이 좋아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판단의 오류와 재작업이 줄었는지, 결정이 빨라졌는지, 고객의 문제를 더 잘 해결했는지를 살펴야 하지요.

 

이런 조정을 거치면 조직에는 함께 일하는 관계의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공동의 목표를 기준으로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제때 결정하고, 서로 돕는 데 들인 노력과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 안에서 구성원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동료의 전문성도 활용할 수 있고요.

 

좋은 인재와 더 뛰어난 도구는 앞으로도 필요합니다. 특히 AI가 개인의 일을 더 많이 도울수록 조직은 개인의 높아진 생산성을 공동의 성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일하게 되었다고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주목할 것은 각자의 실력과 실적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동료의 판단을 돕고, 그 판단이 실행을 앞당겨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로 이어지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유능한 사람을 모으는 것만으로 강한 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능력이 서로의 성과가 되도록 연결하고, 그 연결이 제대로 작동하는 조건을 계속 설계하는 것. 그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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