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는 내가 좋고
연인이 마주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부딪치며 다정히 저녁을 먹습니다. 발그스레한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평범한 한 끼는 어느새 특별한 순간이 됩니다. 그런데 식사 끝무렵, 서로의 자리가 바뀌자 분위기가 묘해집니다.
그녀는 그녀가 좋고
나는 내가 좋다
이우환의 시 <사랑>이 보여주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관계와 여백 화가로 유명한 그는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 본 듯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끝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를 통해 바라본 나인 것을 말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마음이라고 시인은 짚어냅니다.
흔히들 나를 중심으로 돌던 마음의 방향을 상대에게로 돌려놓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상대의 마음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워져도 상대의 마음은 여전히 나의 이해와 지배가 닿지 않는 곳에 남지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심지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상대의 표정과 말, 행동을 통해 그 마음을 짐작하고 해석할 뿐이지요. 그 해석마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기억과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 시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녀' 역시 실제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고, 내가 기대하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해석된 그녀이지요. 사랑은 그렇게 내가 만든 의미 위에 상대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마음을 덧입히는 일입니다.
사랑의 위대함은 어쩌면 그 불완전함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를 완전히 알 수 없지만, 또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다가가고, 묻고, 기다리고,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해석한 상대와 실제의 상대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진짜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랑의 진실은 거짓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완전히 아는 일이 아니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랑은 상대를 완벽하게 아는 일이 아닙니다. 모른 채 만나 내 삶에 상대의 낯섦을 받아들이는 일이지요. 사랑은 나를 비우면서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우환의 시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욕망과 기억이 꿈틀댑니다. 그녀를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요. 결국 그녀는 그녀를, 나는 나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와 너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차이를 발견하고, 그 간격 그대로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지요. 따라서 사랑은 상대를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또 알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마음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진짜 사랑은 시작됩니다. 법정의 말처럼 사랑이 "찬란한 오해"임을 깨달아야 그 사랑이 온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오래 함께한 사이라면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이 말에는 사랑과 이해가 비례한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면 사랑이 부족하거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지요. 내가 그 사람을 잘 안다는 확신으로 그의 행동에 의미를 미리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변하고 상황도 변합니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다를 수 있고요. 어제 필요했던 사랑과 오늘 필요한 사랑도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표정과 말, 행동을 보고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 그 상황을 상상하고, 그에 따라 상대의 마음과 다음 행동을 예측할 뿐이지요. 상대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실제로는 내가 경험해온 세계로 상대를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인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커지고,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집니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애정의 단서를 더 민감하게 찾고, 버림받을까 두려운 사람은 작은 거리감에서도 배신의 징후를 읽어내고요.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나는 당신을 내가 아는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하려거든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듣겠다"는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할까요.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안전과 소속, 애착과 돌봄을 얻고, 서로의 가치를 나눠야 겨우 삽니다. 그러면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고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마음에는 자신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얻으며, 삶을 지속하려는 생존의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생존과 번식의 본능입니다. 몸과 뇌, 기억과 욕망, 관계의 경험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감정이지요. "나는 사랑한다"는 말은 곧 "뇌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뇌는 내가 무엇에서 기쁨을 느꼈고 무엇에서 상처받았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가며 관계를 이어가려 합니다.
나는 뇌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사랑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떤 행동에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배신으로 받아들이는지는 타고난 경향과 기억, 살아온 경험에 따라 달라지고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기억과 욕망까지도 사랑의 대상과 방식에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내가 필요한 가치를 발견하고, 내가 가진 가치를 나누기 위해 사랑합니다. 사랑은 상대의 객관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판단한 결과가 아닙니다.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감정, 충족되는 욕망, 함께 쌓은 기억과 앞으로 기대하는 미래가 뒤섞여 있는 상태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사랑은 착각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선택과 이상화, 기대와 투영이 들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주관으로 만들어진 사랑이라고 해서 완전히 거짓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실제로 상대를 돌보게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게 만듭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속에서 신뢰와 돌봄, 추억과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고요. 사랑의 출발에는 기울어진 해석이 있지만,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행동은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왜 변할까요.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나도 변합니다. 새로운 경험은 기억을 바꾸고, 달라진 환경과 역할은 욕망을 바꾸지요. 그에 따라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과 필요한 가치도 달라지고요.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온 두 사람과 그 관계의 조건이 변한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은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처음 감정 그대로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달라지는 서로를 다시 바라보고, 달라진 마음을 다시 묻고, 그때그때 필요한 사랑의 방식을 함께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 아닙니다. 변하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서로를 선택하고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서로의 변화와 조건에 맞춰 사랑의 방식을 바꾸어갈 때 비로소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서로를 잘 안다는 확신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진짜 무엇을 느꼈는지, 진짜 무엇을 원했는지. 내가 본 사실과 그 사실에 덧붙인 해석을 구분하고, 그 해석에 나의 기대와 두려움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받고 싶은 것인지,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은 것인지. 사랑하는 상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욕망과 기억, 삶의 방향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나의 욕망을 상대가 알아서 채워줘야 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좋은 사랑은 자신의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상대가 원하는 가치 또한 존중하는 것이지요. 한 사람의 결핍을 일방에서만 채워주는 관계는 결국 한쪽을 소진시키겠지요. 사랑은 두 사람이 가진 가치를 나누며, 함께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나는 그녀를 비우고
그녀는 나를 비운다
이우환의 시에서 연인의 저녁 식사는 이처럼 무아지경에 이릅니다. 사랑의 시간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위에서 시작되는 가장 현실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으로 상대를 해석합니다. 그 해석 속에서 사랑을 만들어가고요. 사랑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불완전한 이해, 아니 완전한 오해 위에서 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합니다.
내가 이해한 당신이 실제의 당신과 다를지라도, 그 틈을 견디며 다시 묻고, 바라보고, 손을 내밉니다. 사랑의 가치는 상대를 완벽하게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끝내 알 수 없는 한 사람에게 나의 곁을 내어주는 데 있지요.
사랑은 오해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그 오해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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