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왜 신뢰가 성과의 첫 번째 도미노일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Aug 24, 2026, 1:45:03 AM

2024년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 여섯 번째 대결이 끝났을 때 한국은 헝가리에 30대 29로 앞서고 있었습니다. 남은 대결은 세 번. 한 차례만 크게 흔들려도 승부가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었죠.

 

이때 원우영 코치는 구본길 선수 대신 도경동 선수를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경동 선수는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단체전 교체 선수였습니다. 파리올림픽에서 아직 한 번도 피스트에 오르지 않은 선수에게 결승전의 승부처를 맡긴 셈이었습니다.

 

피스트로 향하던 도경동 선수는 원 코치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습니다. 자신을 믿어달라는 신호였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러브 크리스티안 선수를 상대로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다섯 점을 연속으로 따냈습니다. 30대 29였던 점수는 35대 29로 벌어졌고, 한국은 45대 41로 승리해 올림픽 단체전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시상식 ⓒ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교체 투입된 도경동 선수가 승부를 바꾸는 다섯 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결승은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는 기회라는 믿음, 원우영 코치가 자신의 준비와 능력을 인정해 중요한 순간을 맡겼다는 믿음,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도경동 선수 스스로 내린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는 원 코치의 결정과 행동에서 비롯됐습니다. 원 코치가 승부처에 교체 투입한 결정은 도경동 선수에게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경기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더해주었습니다. 리더가 구성원의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판단의 방향이 긍정과 신뢰를 향하도록 할 근거는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뢰만으로 성과가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성과를 직접 만드는 것은 구성원이 갖춘 능력과 실행입니다. 하지만 신뢰 없이는 성과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뇌가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뇌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전에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부터 예상합니다. 주어진 기회가 가치 있는지, 자신이 해낼 수 있는지, 리더를 믿고 움직여도 되는지를 판단하지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능력을 성과에 투입하기보다 손실을 줄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반대로 주어진 기회가 가치 있고, 그 기회를 준 리더를 믿을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성과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면 열정을 발현합니다. 목표에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성과를 만들 더 나은 전략을 찾습니다. 실행한 뒤에는 예상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확인하고, 원인을 찾아 방법과 행동을 수정합니다. 이처럼 기회와 리더,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판단에서 시작해 열정발현과 전략모색, 제어실행을 거쳐 성과에 이르는 과정을 ‘성과 메커니즘’이라고 합니다.

 

능력과 실행이 성과를 만든다면, 신뢰는 그 능력과 실행이 성과를 향하도록 출발시키는 첫 번째 판단입니다. 신뢰가 성과의 첫 번째 도미노인 이유입니다.

 

 

성과가 막힌 지점과 문제가 시작된 지점은 다르다

 

조직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리더는 대개 전략과 실행부터 점검합니다. 목표가 구체적인지, 선택한 방법이 적절한지, 계획한 행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살핍니다. 결과가 나아지지 않으면 보고 주기를 줄이고 업무 진행을 더 세밀하게 확인하기도 합니다. 성과 부진이 전략의 오류나 실행의 부족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과가 막힌 지점과 문제가 시작된 지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전략과 실행은 구성원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야 작동합니다.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실행 결과를 확인하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원인을 찾아 행동을 수정해야 성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전략과 실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구성원이 왜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지, 자신의 능력을 왜 성과 창출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결과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가 있다고 곧바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합니다.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필요한 노력과 위험에 견주어 본 뒤, 행동할지 말지와 얼마나 노력할지를 결정합니다.

 

조직에서도 구성원은 같은 방식으로 판단합니다. 주어진 목표가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큼 가치 있는지, 자신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리더와 조직이 약속한 권한과 지원을 실제로 제공할지를 가늠합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면 목표를 ‘해볼 만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동기가 촉발되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며, 필요한 정보를 찾고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합니다. 실행한 뒤에는 예상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확인하고, 원인을 찾아 방법과 행동을 수정합니다.

 

반대로 세 가지 판단 가운데 하나라도 부정적이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이유가 약해집니다. 목표에 의미가 없다고 느끼면 맡은 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예상하면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기보다 지시를 기다립니다. 조직이 필요한 권한과 지원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기보다 승인받은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책임을 피할 근거를 남깁니다.

 

이때 구성원의 능력이 사라지거나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판단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을 성과 창출에 사용하는 것보다 승인받고 책임을 피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신뢰가 행동을 바꾼다는 말은 구성원의 능력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을 어떤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실행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실행을 낳은 판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구성원은 목표를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자신의 판단과 행동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예상하는가. 리더와 조직이 필요한 권한과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라면 전략을 보완하고 실행을 독려해도 구성원의 행동은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성과는 신뢰판단에서 시작해 노력의 투입, 전략의 모색, 실행과 수정으로 이어집니다. 겉으로는 전략이나 실행에서 문제가 드러났더라도 원인은 그보다 앞선 판단에 있을 수 있습니다. 성과가 막힌 지점만 재촉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시작된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성과 부진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실행보다 먼저 그 실행을 낳은 구성원의 판단부터 살펴야 합니다.

 

 

신뢰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면 조직과 구성원,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까요?

 

사람의 뇌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분석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학습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합니다. 구성원도 리더의 말과 행동이 일치했는지, 그 말을 믿고 행동했을 때 실제로 어떤 결과가 돌아왔는지를 기억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이 리더와 조직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근거가 됩니다. 신뢰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리더가 권한을 위임한다고 말하면서도 결정할 때마다 개입하면, 구성원은 자신의 판단이 언제든 번복될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다음 과제에서는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승인을 기다리게 됩니다. 문제를 일찍 알릴 때마다 원인을 설명할 기회도 없이 질책을 받으면, 문제를 드러내는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학습합니다. 이후에는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보고를 미룹니다. 도전적인 목표를 맡은 뒤 결과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험이 이어지면, 성과를 높일 기회보다 실패했을 때 입을 손실을 먼저 고려합니다. 결국 도전적인 과제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택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구성원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험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조정한 결과입니다. 어떤 행동이 인정받고 어떤 행동이 불이익으로 이어지는지를 학습한 뒤, 예상되는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리더가 주도적인 판단과 솔직한 보고를 요구하더라도, 의사결정 권한과 문제 보고에 대한 대응, 평가 기준이 그대로라면 구성원의 행동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신뢰를 높이는 경험도 같은 원리로 축적됩니다. 구성원이 맡은 범위 안에서 직접 판단할 권한을 보장받고, 문제를 일찍 알렸을 때 해결에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결과와 함께 판단의 근거와 실행 과정까지 공정하게 평가받으면 다음 과제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고, 어려움이 생겨도 조직이 약속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구성원은 문제를 먼저 드러내고,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하며,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투입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신뢰를 말로 요구하기보다 구성원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맡긴 권한을 실제로 보장하는지, 문제를 일찍 알린 사람에게 해결의 기회를 제공하는지, 도전의 결과와 과정을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구성원은 리더가 강조한 말을 듣지만, 다음 행동은 조직이 자신의 판단과 시도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근거로 결정합니다. 신뢰는 약속이 행동으로 지켜지는 경험이 쌓일 때 형성됩니다.

 

 

바이엘은 첫 번째 도미노를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제 신뢰가 어떻게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글로벌 생명과학기업 바이엘의 이탈리아 가르바냐테 생산공장에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의약품 생산이 끝난 뒤 출하 승인을 받기까지 2~3주가 걸렸습니다. 생산, 품질, 공급망의 업무가 차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검토와 협의가 지연됐지만, 어느 한 부서가 전체 과정을 바꾸기는 어려웠습니다. 바이엘은 출하 승인 시간을 10퍼센트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회사는 생산 현장과 품질, 공급망 등 관련 부서의 구성원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출하 승인 과정 전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부서의 경계를 넘는 협업 구조를 만들고, 개선에 필요한 결정을 현장에서 직접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팀은 90일 동안 개선안을 실행한 뒤 결과를 확인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의 원인을 찾아 다음 실행 방법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구성원들의 판단부터 바꾸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목표가 분명해지자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부서의 경험을 모으면 지연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현장에서 결정할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구성원들은 출하 승인 시간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며, 자신들의 경험으로 개선할 수 있고, 회사가 필요한 판단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의 가치와 자기 능력, 조직의 지원에 대한 긍정적 판단이 형성된 것이죠.

 

이 신뢰판단은 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의 크기를 바꾸었습니다. 팀은 기존 절차를 그대로 수행하는 대신 어느 단계에서 대기가 발생하는지, 부서 간 정보가 어디에서 끊기는지,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검토는 무엇인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확인된 원인에 따라 개선안을 마련하고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또 90일이 지나면 출하 승인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단축됐는지를 확인하고, 예상과 결과의 차이를 분석해 다음 방법을 수정했습니다.

 

이렇게 개선안을 실행하고 결과를 확인한 뒤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세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출하 승인 시간은 약 50퍼센트 줄었습니다. 최초 목표였던 10퍼센트를 다섯 배 웃도는 개선이었습니다. 승인 대기 시간이 짧아지면서 재고와 공정의 낭비가 줄었고 현금흐름도 좋아졌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구성원들의 능력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현장 구성원들은 어느 절차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부서 간 협의가 어디에서 막히는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전에는 여러 부서에 걸친 문제를 함께 분석하고, 자신의 판단을 개선안에 반영하며, 실행 결과에 따라 방법을 수정할 권한이 부족했습니다. 바이엘은 분명한 목표와 협업 구조, 현장의 결정권을 제공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축적해 온 지식과 경험을 실제 문제 해결에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바이엘의 사례는 신뢰판단이 성과로 이어지는 인과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목표의 가치와 자기 능력, 조직의 지원을 긍정적으로 판단하자 구성원들은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을 투입했습니다. 그 열정은 지연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안을 찾는 전략모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실행 결과를 확인하고 방법을 수정하는 제어실행이 반복되면서 성과가 개선됐습니다. 첫 번째 도미노인 신뢰판단이 움직이자 열정발현-전략모색-제어실행이 차례로 이어진 것입니다.

 

 

신뢰가 낮으면 능력은 어디에 사용되는가

 

신뢰의 수준은 구성원이 보유한 능력 자체보다 그 능력이 사용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장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성과를 바꾸기 어렵거나 조직이 그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구성원은 그 능력을 문제 해결보다 자신을 보호하는 데 사용합니다.

 

리더가 결정을 자주 번복하면 구성원은 더 나은 방법을 찾기보다 최종 지시를 기다립니다. 문제를 보고한 사람이 책임을 떠안는 일이 반복되면 원인을 밝히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근거부터 확보합니다. 협업을 요구하면서 개인 실적만 평가하면 동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자신의 기여를 기록하는 데 집중합니다. 조직의 성과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구성원에게는 예상되는 불이익을 줄이는 선택입니다.

 

리더가 이러한 행동을 실행력 부족으로 진단해 보고와 점검을 늘리면 자기방어는 더 강해집니다. 구성원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찾고 더 나은 전략을 세우는 데 능력을 쓰기보다, 지시받은 절차를 따랐음을 증명하고 책임을 피할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합니다. 실행 결과를 확인해 방법을 수정하는 행동도 줄어듭니다. 점검을 강화할수록 구성원이 성과에 기여하기 위해 직접 판단하고 시도할 여지는 오히려 좁아지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리더가 지시를 더 구체화하고 의사결정 권한까지 회수하면 중요한 결정은 리더에게 몰립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가장 먼저 발견한 구성원의 정보와 경험은 의사결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합니다. 결정의 정확도를 높이려던 통제가 조직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경험의 범위를 좁히고,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수정할 가능성까지 낮추게 됩니다.

 

신뢰가 낮은 조직의 핵심 문제는 조직이 이미 보유한 능력을 성과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구성원의 행동이 소극적으로 보인다면 능력이나 태도부터 의심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문제 해결보다 자기보호에 사용하는 편이 유리한 경험을 반복해서 제공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신뢰와 책임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신뢰를 구축하려면 구성원에게 믿으라고 요구하기보다 조직에 대한 판단을 바꿀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판단이 존중되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결과가 공정하게 평가되는 경험이 꾸준히 반복될 때 비로소 신뢰가 구축됩니다. 이때 신뢰는 책임의 면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판단할 권한과 그 판단이 만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함께 있어야 신뢰가 성과로 이어집니다.

 

먼저 리더는 구성원이 직접 판단할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달성해야 할 목표와 지켜야 할 기준, 허용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실행 방법을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책임을 맡기면서 방법에 관한 결정을 모두 리더가 내리면 구성원은 자신의 판단으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예상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실행한 뒤에는 예상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책임질 사람부터 찾으면 구성원은 다음부터 불리한 정보를 숨기게 됩니다. 리더는 처음에 어떤 결과를 예상했는지, 실제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판단과 변수가 그 차이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성원과 함께 살펴야 합니다. 확인한 원인을 다음 실행 방법에 반영하고, 수정한 방법이 결과를 개선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야 경험이 더 나은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실패를 다루는 기준도 명확해야 합니다. 달성하려는 목표와 검증할 가설을 정하고, 허용된 위험 범위 안에서 실행했으며, 이상 징후를 발견한 즉시 공유했다면 기대와 다른 결과도 다음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됩니다. 반면 확인된 위험을 무시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숨기고, 결과를 확인하지 않아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면 그 판단과 실행에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 것과, 합의한 기준과 확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행동에 책임을 묻는 것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신뢰와 책임은 이러한 구조 안에서 서로를 강화합니다. 구성원은 판단할 권한이 있어야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수 있고, 그 결정이 만든 결과를 확인해야 판단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모든 결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범위를 정하고, 실행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며, 결과를 함께 확인하고 다음 방법의 효과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구성원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수정해 결과를 개선하면, 노력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높아집니다. 조직이 약속한 권한과 지원을 실제로 제공한다는 신뢰도 강화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성공경험은 다음 과제를 ‘해볼 만한 일’로 판단하게 하고, 더 어려운 목표에도 시간과 노력, 판단력을 투입하게 합니다. 신뢰에서 시작된 성과가 다시 신뢰를 높이며 다음 성과의 출발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과를 바꾸려면 첫 판단부터 살펴야 한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많은 리더들이 실행부터 점검합니다. 계획대로 움직였는지 살피고, 보고 주기를 줄이며, 필요하면 직접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효과를 내려면 구성원이 목표를 달성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자신의 능력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으며, 조직이 필요한 권한과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점검과 지시가 늘어날수록 구성원은 문제 해결보다 지시를 따랐다는 기록을 남기고, 중요한 판단을 리더에게 넘기며, 실패했을 때 감당할 책임을 줄이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과가 낮을 때는 ‘무엇이 실행되지 않았는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왜 그런 행동을 선택했으며,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거나 피하려 했는지’까지 살펴야 합니다. 맡긴 권한을 리더가 다시 가져가지는 않았는지, 문제를 일찍 알린 사람이 지원보다 질책을 받지는 않았는지, 합의한 범위 안에서 시도했는데도 결과만으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구성원의 현재 행동에는 조직에서 반복해 경험한 행동과 결과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신뢰의 경영적 가치는 구성원의 능력이 사용되는 방향을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신뢰가 형성되면 현장의 지식과 경험은 문제의 원인을 찾고 더 나은 방법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신뢰가 낮으면 같은 능력이 승인을 얻고 책임을 피할 근거를 마련하는 데 쓰입니다. 구성원의 능력이 성과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능력의 부족만 진단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문제 해결보다 자기보호에 사용하는 편이 유리한 조직 환경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성과 부진은 실행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그 출발점은 구성원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는가에 있을 수 있습니다. 리더가 바꿔야 할 것은 마지막에 나타난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 경험과 예상입니다. 구성원이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보며, 조직의 약속을 얼마나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가 달라져야 노력의 크기와 전략, 실행도 달라집니다.

 

성과는 실행의 끝에서 확인되지만, 그 과정을 시작하는 첫 판단은 ‘신뢰’입니다.

모든 콘텐츠는 제공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거 무단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