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너머의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AI가 일하는 시대, 리더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Aug 10, 2026, 12:48:55 AM

2024년 2월,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가 AI 고객상담 서비스의 성적표를 공개했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230만 건의 상담을 처리했고, 평균 11분 걸리던 문제 해결 시간은 2분 이내로 줄었습니다. 반복 문의는 25퍼센트 감소했습니다. 클라르나는 이 업무량을 상담 인력 700명 분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2024년 한 해에만 4천만 달러의 수익 개선을 기대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는 AI 도입 사례였습니다.

 

그런데 클라르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방향을 되짚었습니다. AI 상담을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문의는 여전히 AI가 맡되, 맥락과 판단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에는 사람이 개입하도록 했고,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2025년 세바스티안 시미아트코프스키 CEO는 그동안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었다고 인정하며, 이제는 서비스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쪽으로 축을 옮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클라르나가 다시 물은 것은 “AI가 얼마나 잘 작동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였습니다. 처음에는 처리량과 응답 시간, 절감된 비용이 성과의 전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실제로 해결되었는지, 고객이 신뢰를 거두지는 않았는지, 서비스와 제품이 성장하고 있는지가 함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과의 기준이 달라지자 AI와 사람이 맡을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고객가치는 기업 성과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고객에게 선택받은 가치는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은 관리되어야 하며, 다음 성과를 만들어낼 사람과 조직의 역량도 함께 쌓여야 합니다. 이 셋 중 하나만 좋아졌다고 해서 기업 전체가 성과를 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AI를 도입하려는 리더가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AI를 어디까지 쓸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달성해야 할 성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입니다.

 

AI 도입의 첫 질문은 “AI를 어디까지 쓸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달성해야 할 성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성과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고 해서 조직이 곧바로 그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회사가 바로 이 지점에서 걸림돌을 만납니다.

 

 

개인 업무는 빨라졌는데 조직 성과는 그대로인 이유

 

많은 회사가 구성원에게 AI 도구를 제공하고 활용법도 교육합니다. 사흘 걸리던 보고서 초안이 몇 시간 만에 완성되고, 시장조사 자료와 회의에서 검토할 대안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개인의 작업 속도가 빨라진 만큼 조직의 결정과 실행이 빨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AI 활용이 조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AI가 늘린 산출물을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이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구성원에게는 AI를 활용해 업무 방식을 바꿀 권한과 평가 여건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업무 흐름의 병목입니다. AI를 활용해 제안서와 분석 자료를 더 많이 만들면 법무팀과 재무팀에 들어오는 검토 요청도 증가합니다. 선택 기준과 결정 권한이 분명하지 않으면 회의에서는 늘어난 대안을 두고 더 오래 논쟁하게 됩니다. 한 단계의 업무가 빨라져도 검토와 의사결정 방식이 그대로라면 지연은 다음 단계로 옮겨갑니다. 자료는 많아지지만 고객 대응 시간이나 계약률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구성원이 AI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6년 10개국의 AI 사용 지식근로자 2만 명을 조사했습니다. 이 가운데 AI 활용 능력은 높지만 조직의 지원이 부족해 실제 업무에 적용하지 못하는 10퍼센트를 ‘가로막힌 주도성(Blocked Agency)’ 집단으로 분류했습니다. 구성원은 준비되어 있지만 조직의 운영 방식이 이를 가로막는 경우입니다.

 

AI를 활용해 업무 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시도를 조직이 인정한다고 답한 사람도 13퍼센트에 그쳤습니다. AI 활용을 요구하면서 기존 목표와 업무량은 그대로 두고, 업무 방식을 바꿀 권한은 주지 않으며, 시행착오에는 평가상 불이익을 준다면 구성원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기 어렵습니다. 승인 절차와 평가 기준까지 바뀌지 않으면 AI 활용은 기존 업무를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나 더 늘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개인 업무는 빨라졌는데 조직 성과가 그대로인 이유는 구성원의 AI 활용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AI로 높아진 개인의 생산성이 조직 성과로 이어지도록 업무 흐름과 의사결정 방식, 권한과 평가 기준을 함께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 성과는 어떻게 조직의 성과가 되는가

 

그렇다면 이 병목과 권한의 문제를 실제로 풀어낸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요. 글로벌 뷰티 기업 에스티로더 컴퍼니즈의 사례가 하나의 답을 보여줍니다.

 

이 회사는 방대한 소비자 조사 자료와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생성형 AI를 활용했습니다. 향수사업팀은 이전까지 소비자 조사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몇 시간씩 써야 했습니다. 에스티로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ragrance Insights GPT’를 개발했습니다. 담당자가 자연어로 질문하면 AI가 대규모 조사 자료에서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 변화를 찾아줍니다.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수천 건의 임상시험 보고서에서 제품 효능에 관한 근거를 찾아주는 GPT를 만들었습니다. 몇 시간 걸리던 자료 탐색이 몇 분으로 줄었고, 연구개발과 마케팅 부문의 응답 시간은 90퍼센트 이상 단축됐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AI의 성능보다 이 회사가 AI를 조직의 업무에 연결한 방식입니다. 구성원들이 제안한 1,000건 이상의 아이디어 가운데 사업적 가치와 구현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먼저 골랐습니다. 현업 담당자는 해결할 문제와 사용 목적을 정하고, 분야 전문가는 AI가 참고할 자료와 결과의 판단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기술 담당자는 이를 GPT로 구현하고 정확성과 일관성을 검증했습니다. 배포한 뒤에는 현업의 사용 결과와 피드백을 반영해 계속 수정했습니다.

 

현업 담당자만 AI를 사용했다면 자료를 찾는 시간은 줄었을 것입니다. 에스티로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AI가 찾아낸 정보를 제품 기획과 마케팅 판단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된 역할과 업무를 연결했습니다. “무엇을 분석할지, 누가 결과를 검증할지, 어느 부서가 판단에 활용할지, 사용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를 어떻게 고칠지”까지 함께 정했습니다. 개인의 빠른 분석이 조직의 빠른 판단과 제품 출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 사례는 개인의 생산성과 조직의 생산성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생산성은 한 사람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조직의 생산성은 그 결과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고, 적절한 판단과 실행으로 이어지며, 실행 결과가 다시 다음 개선에 반영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 연결이 끊어지면 더 많은 자료와 선택지만 쌓일 뿐입니다.

 

 

AI 성과를 만드는 리더의 네 가지 결정

 

에스티로더의 사례가 보여주듯, AI의 분석과 제안이 구성원의 판단과 실행을 거쳐 조직 성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누군가 그 연결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 연결을 설계하는 것이 AI 시대 리더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앞서 살펴본 두 가지 문제인 의사결정 과정의 병목과 권한·평가 여건의 부재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좁혀집니다. 무엇을 향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조직이 미처 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역할과 권한을 다시 나누는 것(정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애초에 성과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으면(집중) 정렬할 기준 자체가 없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권한을 주더라도 그 시행착오를 어떻게 평가할지 정하지 않으면(도전) 구성원은 다시 익숙한 방법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실행한 뒤 그 결과가 애초의 성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하지 않으면(추적), 정렬과 도전이 옳은 방향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리더의 역할은 집중 · 정렬 · 도전 · 추적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조직에 중요한 성과와 문제에 집중하고, 사람과 AI의 역할과 실행을 정렬하며, 더 높은 성과를 낼 새로운 방법에 도전하고, 실행 결과를 추적해 전략과 업무 방식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1. 집중: 어떤 성과를 개선할 것인가

 

“AI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부터 물으면 AI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기 쉽습니다. 먼저 “AI를 활용해 어떤 성과를 개선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고객센터라면 비용과 응답 시간, 문제해결률, 재문의율과 고객이탈률 가운데 무엇을 개선할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반복 문의는 AI가 처리하고, 결제 분쟁이나 사기 피해처럼 맥락과 예외를 판단해야 하는 문제는 사람이 맡을 수 있습니다. 비용과 서비스 품질을 함께 관리하려면 AI가 상담을 사람에게 넘길 조건도 정해야 합니다.

 

AI 사용률이나 생성된 문서 수는 활용 정도를 보여주는 활동 지표입니다. 성과는 AI 활용 후 문제해결률과 불량률, 제안채택률과 수주율, 비용과 매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로 판단해야 합니다.

 

2. 정렬: 역할과 권한,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AI가 초안을 빨리 만들어도 검토자와 품질 기준이 없으면 관리자의 일이 늘어납니다. 사람마다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고, 결정권자가 분명하지 않으면 회의와 보고도 줄지 않습니다.

 

AI가 무엇을 맡고 사람이 무엇을 판단할지, 누가 결과를 검토하고 결정하며 최종 책임을 질지 정해야 합니다. AI는 자료를 찾고 비교하며 반복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유리합니다. 사람은 해결할 문제를 정하고, 맥락과 예외를 판단하며, 선택한 결과에 책임져야 합니다.

 

역할을 바꾸었다면 권한과 책임도 함께 조정해야 합니다. 구성원이 더 나은 방법을 찾아도 선택하거나 실행할 권한이 없다면 업무는 이전 절차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 도전: 새로운 시도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AI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에는 시행착오가 따릅니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낮게 평가하면 구성원은 익숙한 방식을 선택합니다.

 

모든 실패를 허용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해결할 문제가 분명했는지, 예상되는 위험을 검토했는지, 합의한 범위 안에서 시도했는지,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실행을 수정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리더와 HR은 AI 활용을 권하면서 기존 직무와 목표, 평가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새로운 업무를 맡겼다면 기존 업무를 조정하고 필요한 협업 절차도 마련해야 합니다. 구성원은 조직이 권장하는 행동보다 실제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4. 추적: 어디까지 확인해야 성과로 인정할 것인가

 

제안서 작성 기간이 5일에서 2일로 줄었더라도 고객의 수정 요구가 늘고 수주율이 낮아졌다면 조직의 성과가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성 시간과 함께 수정 횟수, 제안채택률과 수주율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대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AI 모델만 바꿀 것이 아니라 문제 설정, 입력 자료, 품질 기준, 역할 분담과 승인 절차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추적의 목적은 어느 단계의 판단과 실행을 고쳐야 최종 결과가 개선되는지 찾는 데 있습니다.

 

구성원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방법을 수정하고 결과를 개선해본 성공경험을 얻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AI를 활용해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높아집니다.

 

목표 정렬이나 역할 분담,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은 리더십에서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온 원칙입니다. 그러나 AI가 개인의 산출물을 순식간에 늘리는 지금, 이 네 가지를 얼마나 분명히 실행하는가에 따라 조직 간 성과 격차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벌어질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리더의 질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AI는 정보 검색과 분석, 문서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물이 빨리 만들어진다고 조직의 성과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1분 만에 보고서를 작성해도 의사결정에 한 달이 걸린다면 실행 속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각자가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도 목표와 우선순위가 다르면 검토할 문서만 늘어납니다.

AI가 일하는 시대에는 리더의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구성원이 AI를 얼마나 자주 능숙하게 사용하는지”보다 “AI 활용이 최종 성과로 이어지도록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개선할 성과가 분명한지, AI와 사람이 맡을 역할은 적절한지, 구성원에게 업무 방식을 바꿀 권한이 있는지, 새로운 시도에 맞게 평가 기준을 조정했는지, 실행 이후의 결과까지 확인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AI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져도 조직 성과의 주체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무엇을 중요한 성과로 볼지 정하고, AI의 분석과 제안이 타당한지 판단하며, 여러 이해관계와 위험을 고려해 실행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사람의 정보처리 능력과 문제해결 범위를 넓혀주지만, 그 능력이 어떤 목표를 향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는 조직 구성원의 판단과 실행에 달려 있습니다.

 

AI 시대의 사람중심 경영은 사람의 일을 AI로 대체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AI로 높아진 사람의 능력이 조직 성과로 이어지도록 사람과 AI, 사람과 사람의 역할과 업무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공통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판단과 실행의 권한을 조정하며,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고, 실행 결과를 다음 개선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조직의 성과 격차는 “누가 더 좋은 AI를 보유했는가”보다 “AI로 높아진 사람의 능력을 하나의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가”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리더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우리 구성원은 AI를 잘 쓰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사람과 AI의 능력을 더 나은 조직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 목표와 업무, 권한과 평가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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