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를 떠나는 고등학생이 늘고 있습니다. 2026년 6월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일반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약 1만8천 명이었고, 그중 56퍼센트가 고1 학생이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학교생활의 부적응, 학업 부담, 건강 문제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퇴를 부적응이나 위기의 결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학생들에게 자퇴가 대학 진학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내신 경쟁을 피하고 검정고시와 수능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경우들 말입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 진학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더 잘 이루기 위해 학교 밖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 선택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에 남는 것보다 학교 밖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편이 자신의 목표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왜 학교보다 학교 밖의 길이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는지 묻는 일입니다.
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돕는 데 그친다면, 더 효율적인 입시 방법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굳이 붙잡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존재 이유를 정해진 경쟁의 틀 안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대학에 보내는 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학교는 그 필요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을 지식과 기술, 사회의 규칙과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로 이해해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도 교육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인간은 앞선 세대가 축적한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지식의 전달로만 이해하면, 같은 내용을 배우고도 아이마다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아이는 질문하고 도전하지만, 어떤 아이는 틀릴까 두려워 입을 닫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없으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진행된 ‘부쿠레슈티 조기개입 프로젝트(Bucharest Early Intervention Project, BEIP)’는 인간의 성장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시설에서 생활하던 영유아 일부가 가정 기반의 위탁양육 환경에서 자라도록 지원하고, 시설보호를 받은 아이들과 발달 과정을 장기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위탁양육을 경험한 아이들은 인지와 신체 발달, 애착과 일부 정신건강 지표 등 여러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더 어린 시기에 위탁가정으로 옮겨진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의 결과를 초중등 교육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 연구는 학교 교육의 효과를 직접 검증한 연구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발달은 개별적인 자극의 양뿐 아니라, 그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의 안정성과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 교사와 또래를 만나며 생활하는 학교도 이러한 성장 조건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아이는 저마다 다른 기질과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감정을 조절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능력까지 완성된 상태로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는 법, 다른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법은 사람과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배워갑니다.
아이가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표현했을 때 양육자가 일관되게 반응하면, 아이는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형성합니다. 불안이 가라앉으면 주변을 살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여유가 생기고, 놀이와 탐색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워갑니다.
반대로 아이의 신호가 반복해서 외면받거나 주변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다면 긴장과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변을 탐색하고 관계를 넓히는 일보다 당장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상호작용은 아이가 타인과 세상을 안전한 대상으로 받아들일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일지에 영향을 주고, 그 차이는 이후의 학습과 관계 형성에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오랜 시간 머물며 교사와 또래를 만나는 중요한 성장 환경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뿐 아니라, 학생이 어떤 관계 속에서 그 지식을 배우고 사용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같은 실패라도 조롱과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교실에서는 숨겨야 할 경험이 되고, 다시 시도할 기회가 주어지는 교실에서는 배움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반복해서 겪는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신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의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학생이 자신과 타인, 세상을 대하는 방식의 형성에 관여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이 가르치고, 더 정확하게 답하게 하며, 더 높은 점수를 받게 하는 교육에 익숙합니다. 글을 읽고 문제를 푸는 능력은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시험 점수와 등수는 학생의 성취를 숫자로 나타내 줍니다.
문제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측정하기 쉬운 결과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학교 교육도 지식 전달과 성취도 평가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성장은 성적표에 모두 나타나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힘, 실패를 견디는 힘, 자신의 판단을 믿는 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힘은 단기간에 점수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교육을 바꾸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어른들 역시 자신이 받아온 교육의 경험으로 현재의 교육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식을 자녀에게 권하고, 교사는 자신이 익숙하게 배워온 방식으로 학생을 가르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 시대에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다른 조건에서 살아갈 아이에게도 최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성장했던 시대와 같지 않습니다. 정보의 검색과 정리를 AI가 상당 부분 대신하는 시대에는 주어진 답을 기억하는 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질문을 만들고, 여러 답의 근거를 검토해 판단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따라서 교육을 바꾸려면 새로운 도구를 교실에 들이는 것만큼이나, 어른들이 자신의 성공 경험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교육이 한 아이의 성장 결과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성장은 타고난 기질과 욕구, 가정과 또래, 미디어와 사회문화, 그리고 자신이 경험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방식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같은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의 성취와 태도를 모두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돌려서도 안 됩니다.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피한다면 의지가 부족하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그러한 행동이 어떤 조건에서 나타났는지 살펴야 합니다. 수업과 평가 방식, 교사의 말과 반응, 또래 관계와 교실 분위기가 학생의 참여와 시도를 북돋웠는지, 오히려 위축시켰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직접 만들고 바꿀 수 있는 교육의 조건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지, 질문과 시도가 존중받는지, 실패한 뒤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지 살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학생에게 적절히 대응하는 일도 그 책임에 포함됩니다.
다만 그 책임이 학생의 삶을 대신 결정하거나 어른들이 정한 모습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를 돌아보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의 성장 결과를 통제할 수 없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기회와 경험을 제공했는지는 책임 있게 살펴야 합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학교생활과 학업 부담 때문에 떠나는 학생도 있고, 자신의 진학 목표를 위해 학교 밖에서 더 효율적인 길을 찾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 선택을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왜 학교보다 학교 밖의 길이 더 나은 선택으로 여겨졌는지 물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학교의 고유한 의미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생활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자신이 고르지 않은 또래와 교사를 지속적으로 만납니다. 공동의 규칙을 지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부딪치며,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웁니다.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활동하면서 자신이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도 발견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혼자 지식을 익히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얻기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에서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드러납니다. 인간은 감정을 조절하고 판단하며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을 완성된 상태로 갖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과 다른 관점을 만나고, 행동의 결과를 경험하며 세상을 판단하는 법을 익힙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배워갑니다. 교육은 이러한 성장이 우연한 경험에만 맡겨지지 않도록 필요한 관계와 기회를 마련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 것인지와 함께, 학생이 어떤 관계 속에서 무엇을 경험할 것인지까지 물어야 합니다. 학교의 성과 역시 시험 점수와 진학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는 힘,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길렀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합니다. 먼저 학교가 아이들에게 머물라고 요구할 만한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학교가 마련해야 할 것은 아이들을 붙잡아 두는 장치가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힘을 기르는 조건입니다. 바로 여기에 지식 전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학교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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