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우리는 왜 같은 사회에서 다른 현실을 사는가?

작성자: 자인연구소 | Aug 13, 2026, 12:30:00 AM

최근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를 두고 관객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익숙한 문법을 깨뜨린 대담한 시도와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을 높이 평가했다. 다른 쪽은 개연성이 부족하고 설명의 책임을 관객에게 떠넘긴 실패작이라고 혹평했다.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관객이 경험한 영화는 달랐다.

감상의 차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작품에 대한 평가가 평가자에 대한 의심으로 번졌다는 데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호프〉에 별점 4점을 주자, 나홍진 감독과의 친분이나 영화계의 이해관계 때문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감독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으며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해명해야 했다.

“나는 좋았다”와 “나는 싫었다”는 얼마든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저 사람이 좋다고 말한 데는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감상의 차이는 신뢰의 문제로 바뀐다. 상대가 나와 다른 장면을 보았을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의 지식과 정직성이 의심받기 시작한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지만, 이 장면에는 오늘날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방식이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경험과 기준에 따라 판단했는지 살피기보다, 지식이 부족하거나 숨은 이해관계가 있어서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고 의심한다. 판단의 근거를 따지는 논쟁이 상대의 동기를 심판하는 싸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생계와 자산이 걸린 주거, 노동, 연금 등의 문제로 옮겨가면 갈등은 더 거칠어진다. 서로 다른 처지에서 나온 주장은 검토하거나 조정해야 할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집단의 이기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쟁은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이 다른 판단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차이를 상대의 무지나 악의로 해석할 때 시작된다.

같은 사건도 누구에게 일어나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이 다른 판단을 낳는다는 것은, 같은 사회적 변화가 누구에게나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집값 상승은 집주인의 자산을 늘리지만, 세입자에게는 내 집 마련의 문턱을 높인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기업이 경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계약직 노동자에게는 고용과 소득이 끊길 수 있다는 위협이다. 연금 개혁도 청년에게는 미래에 짊어질 부담을 줄이는 일로,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믿어온 노후의 약속이 바뀌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 공식 스틸

사람들은 같은 정책을 보면서도 자신이 얻게 될 이익과 감당해야 할 위험을 다르게 예상한다. 따라서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한쪽이 합리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 정책이 다른 쪽에는 생계와 미래를 위협하는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삶의 위치에 따라 이익과 위험이 달라지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과거에도 계층과 지역, 성별에 따라 기회는 달랐다. 다만 경제가 성장하고 교육 기회가 확대되던 시기에는 열심히 일하고 자녀를 교육하면 다음 세대의 삶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비교적 널리 퍼져 있었다. 실제 기회가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은 자신과 자녀가 더 나은 삶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믿었다.

외환위기 전후로 구조조정과 고용 유연화가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경로는 더 선명하게 갈라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 보유자와 무주택자, 수도권과 지역에 따라 현재 감당해야 할 위험은 물론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기회까지 달라졌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누구는 변화의 이익을 얻고, 누구는 그 비용과 위험을 더 많이 떠안게 된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23년 취업한 20~29세의 4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낮고, 사회보험과 직업훈련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첫 일자리의 고용 형태가 현재의 소득뿐 아니라 능력을 개발할 기회와 다음 일자리의 가능성까지 좌우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소득과 고용 형태 같은 통계 수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쪽에는 기회와 안정의 기억으로, 다른 쪽에는 좌절과 불안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경험은 같은 현실에서 다른 위험을 보게 한다

사람은 눈앞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하나씩 검토한 뒤 판단하지 않는다. 과거에 자신에게 이익이나 손실을 가져온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한 정보를 먼저 골라낸다. 그런 다음 그 정보가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하고,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생길지 예상해 행동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채용 과정에서 출신 학교나 나이 때문에 반복해서 불이익을 겪은 사람은 채용 제도가 바뀌어도 새로운 기준이 자신에게 또 다른 불리함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먼저 살핀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새로운 취업 기회보다 해고 위험이 커지는 일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로 이직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와 소득을 얻은 사람은 같은 정책이 일자리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이라고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

사진: Jonathan Borba / Unsplash

이처럼 경험은 판단의 결론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일지, 그 정보를 기회와 위험 중 어느 쪽의 신호로 해석할지,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지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접하고도 서로 다른 판단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에 따라 같은 사실을 해석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사실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주택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연금 재정이 어떤 상태인지는 공통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각자의 경험은 그 사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해서 그 경험에서 나온 모든 해석과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

같은 변화라도 그 영향은 사람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집값이 10퍼센트 올랐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그 의미와 결과는 같지 않다. 주택 보유자에게는 자산가치의 상승이지만,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구입 비용과 대출 부담의 증가다. 세입자에게는 보증금이나 월세가 오를 수 있다는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의 가격 상승이 자산 보유 여부와 주거 형태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를 논의할 때는 두 가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먼저 자료와 증거를 통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그 변화가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누구에게 어떤 비용과 위험을 안기는지 따져봐야 한다. 객관적 사실만 확인하면 이익과 부담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놓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의 경험만을 근거로 판단하면 자신의 사례를 사회 전체의 현실로 확대해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같은 현실을 함께 논의하려면 사실은 공동으로 확인하고, 그 사실이 서로 다른 조건에 놓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내가 본 현실이 전부라고 믿을 때

사람은 자신의 감각과 기억,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이해한다. 따라서 같은 사실을 보더라도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갈등은 자신의 판단 역시 특정한 경험과 조건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을 때 커진다. 자신이 주목한 정보와 그로부터 예상한 결과를 현실의 전부로 받아들이면, 다른 판단은 또 다른 경험과 조건에서 나온 해석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는 현실을 제대로 모르거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이때 정책에 대한 이견은 상대방의 인격과 의도를 평가하는 문제로 번진다. 부동산 정책을 다르게 평가하는 이유를 주거 경험과 자산 조건에서 찾기보다 탐욕이나 무지로 설명한다. 노동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도 고용 형태와 생계 위험의 차이에서 살피기보다 이기심이나 무책임의 결과로 단정한다.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을 걱정하면 약자를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복지 확대를 주장하면 표를 얻기 위해 나랏돈을 쓰려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상대가 살아온 조건과 판단의 근거는 사라지고, 확인하기 어려운 의도에 대한 추측만 남는다.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공동체를 해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의견의 차이는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논의하기도 전에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호프〉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왜 저 장면을 높이 평가했을까”라는 질문은 “어떤 이해관계가 있기에 저런 점수를 주었을까”라는 의심으로 바뀌었다. 다른 감상이 나온 이유를 이해하려는 질문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상대의 숨은 의도에 대한 추측이 채운 것이다.

정치와 미디어는 왜 갈등을 키우는가

서로 다른 판단을 조정하려면 먼저 각자가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손실을 피하려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위에서 공동의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의 여러 기관은 이 과정을 맡기 위해 존재한다.

언론은 서로 다른 주장과 경험을 사실에 비추어 검증하고,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쟁점을 드러내야 한다. 정당은 다양한 요구를 모아 정책 대안을 만들고, 의회는 각 대안이 누구에게 어떤 이익과 부담을 주는지 따져 결정해야 한다.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도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미디어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갈등의 조정보다 증폭에 유리할 때가 많다. 정치인은 지지층의 분노와 불안을 결집할수록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고, 미디어는 충돌이 선명한 발언을 앞세울수록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 상대의 처지를 이해시키는 긴 설명보다 분노를 자극하는 짧은 말이 빠르게 퍼지고, 타협을 모색하는 사람보다 상대를 강하게 공격하는 사람이 더 주목받는다.

온라인 플랫폼은 이용자의 반응을 바탕으로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한다. 분노를 일으키는 게시물을 클릭하고 댓글을 달거나 공유하면, 플랫폼은 이용자가 관심을 보인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제시한다. 같은 주장을 반복해서 접한 사람은 그것을 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으로 받아들이고, 반대편을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렇게 강화된 판단은 다시 클릭과 공유로 이어진다.

개인의 반응이 정보 환경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 환경이 다시 개인의 판단을 강화하는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상대를 공격하는 말이 더 큰 관심과 영향력을 얻는 방식이 정치와 공론장에 자리 잡는다. 양극화를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성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람들이 어떤 정보에 반응하는지, 정치와 미디어가 어떤 반응을 이용하는지, 플랫폼이 어떤 정보를 반복해서 보여주는지가 맞물려 갈등을 키운다.

문제는 갈등을 조정해야 할 기관에 대한 신뢰마저 낮다는 데 있다. OECD의 2023년 조사에서 한국인의 정당 신뢰도는 20퍼센트, 국회는 21퍼센트, 언론은 30퍼센트에 그쳤다. 모두 공통의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핵심 기관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2.3퍼센트가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결국 정부와 국회, 정당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 기관들이 사실과 공익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믿음은 약하다. 갈등은 커지고 있는데 이를 조정할 기관은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 이것이 한국 사회가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다.

삶의 위험이 한쪽에 쏠리지 않게 해야 한다

양극화를 줄이려면 사회적 변화가 가져오는 비용과 위험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같은 정책과 제도도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생계와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능력과 선택,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의 불리한 조건이 다음 기회까지 막으면서 교육과 고용, 소득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는 줄여야 한다. 현재의 불리함이 미래의 가능성까지 계속 제한한다면, 사람들은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잃게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직업훈련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 평가 때문에 다시 불안정한 일자리로 밀려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산업 전환이나 연금 개혁처럼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한 변화라도 그 비용이 특정 세대나 직업군에 집중된다면, 손실을 보완하고 새로운 일자리와 삶의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삶의 조건과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크게 다른 상태에서 서로 이해하라고만 요구하면, 더 많은 손실을 떠안은 사람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갈등을 줄이려면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노력과 함께,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삶의 격차와 위험의 불균형도 줄여야 한다.

사실과 경험을 함께 다뤄야 한다

정책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먼저 무엇이 달라졌고, 그 변화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공통의 자료와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의 전체 효과뿐 아니라 비용과 혜택, 위험이 집단별로 어떻게 나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이 사회 전체에 가져올 평균적인 효과만 제시해서는 안 된다. 누가 혜택을 얻고, 누가 어느 정도의 비용과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사회 전체의 편익이 커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면, 당사자에게는 좋은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정책의 타당성을 판단하려면 전체 편익과 함께 이익과 부담이 배분되는 방식까지 확인해야 한다.

언론도 찬성과 반대의 발언을 같은 분량으로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각 주장이 확인된 사실과 근거에 부합하는지 검증하고, 같은 정책이 서로 다른 조건에 놓인 사람들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줘야 한다. “누가 옳은가”를 묻는 것과 함께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개인의 경험은 자료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2021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연구는 정치적 쟁점과 직접 관련된 개인적 경험, 특히 피해를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 사실과 통계만 제시할 때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존중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경험을 통해 그 판단이 나온 이유를 이해하면,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단정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의 경험만으로 정책의 효과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경험은 정책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고, 자료는 그 영향이 사회에서 얼마나 넓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하게 한다. 사실과 경험을 함께 다룰 때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확인하면서도, 그 일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와 결과를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정하기 전에 손실을 조정해야 한다

갈등을 다루는 절차도 달라져야 한다. 정책을 결정한 뒤 당사자에게 취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람들이 결정 전에 같은 자료를 검토하고, 정책으로 얻게 될 이익과 감당해야 할 손실을 확인하며, 부담을 줄이거나 나눌 방법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돌봄시설 설치와 학교 통폐합, 산업 전환과 주거 개발처럼 이해관계가 분명하게 엇갈리는 사안부터 이러한 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의견을 들었다는 기록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견이 결정에 반영되었는지, 받아들이지 못한 요구는 무엇인지, 왜 수용하기 어려웠는지를 당사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집단에는 그 손실을 줄이거나 보완할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사진: The Climate Reality Project / Unsplash

자신의 의견이 검토되었고 결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사람들은 다음 논의에도 참여한다. 반대로 아무리 의견을 내도 이미 정해진 결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이면, 참여 절차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때 사람들은 대화보다 반대와 저항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정치는 서로 다른 집단이 무엇을 원하고 두려워하는지, 정책이 누구에게 어떤 손실을 요구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공동의 이익을 키울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모든 요구를 충족할 수는 없더라도, 결정의 근거를 밝히고 불가피한 손실을 공정하게 나누고 보완할 수는 있다.

민주주의의 힘은 갈등이 없는 상태에 있지 않다. 이해가 충돌하더라도 서로를 배제해야 할 적으로 여기기 전에 차이를 조정하고,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갈등의 반대말은 생각의 일치가 아니다

〈호프〉를 둘러싼 논쟁에서 문제가 된 것은 평가가 엇갈렸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감상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고 검토하기도 전에, 다른 평가를 내린 사람의 정직성과 의도부터 의심한 것이 문제였다.

사회적 갈등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커진다. 삶의 조건이 다르면 같은 변화에서도 얻는 이익과 감당하는 위험이 달라진다. 그 경험은 기억에 남아 이후의 현실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기준이 된다.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경험과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돌아보지 못하면, 다른 판단은 잘못된 생각이나 악의적인 의도로 보이기 쉽다. 정치와 미디어가 이러한 의심을 부추기고 제도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면, 의견의 차이는 상대에 대한 불신과 적대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같은 사회에 살지만 같은 위험과 기회를 경험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므로 판단의 차이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함께 확인하고, 같은 변화가 누구에게 어떤 이익과 손실을 주는지 따진 뒤, 그 차이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으로 조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장면을 보라고 요구하는 제도가 아니다. 각자가 본 장면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동의 사실에 비추어 확인하며,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결정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다. 서로 다르게 보고 판단하면서도 상대를 배제하지 않고, 끝내 함께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