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본질을 읽는 과학과 철학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왜 원망할까?

작성자: 자인연구소 | Sep 8, 2026, 12:42:12 AM

칠순을 넘긴 어머니가 회사 일로 정신없는 아들에게 인기 가수의 공연 티켓 예매를 부탁합니다. “얘야, 어미는 손도 느리고 컴퓨터도 할 줄 모르니까 네가 좀 해줘라.”

한숨짓던 아들은 그래도 선착순 예매 시간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런데 예매에 실패하자 어머니가 쯧쯧거리며 말합니다. “원 저런, 그것도 못 해주니.”

 

순간 아들은 울화가 치밀어 말대꾸를 합니다. “아니,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해요!” 어머니의 한마디가 오래전 기억을 건드렸습니다. “너는 왜 그런 것도 못 하니?” 어릴 때부터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타박하던 어머니의 말이지요.

 

그런데 화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마음 한편이 저릿해집니다.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결국 어머니에게 화낸 자신이 민망해지고, 못난 사람이라도 된 듯 또 자신을 탓합니다. 마음은 순식간에 원망과 미안함 사이를 오갑니다.

 

우리는 평소 제법 어른답게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며, 웬만한 말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모 앞에서는 이상할 만큼 예민해집니다. 부모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도 익숙한 말투 하나에 오래된 서운함이 되살아나곤 하지요.

 

부모가 며칠 연락이 없으면 걱정하면서도 막상 전화가 오면 긴장합니다. 건강을 챙기면서도 사소한 부탁에는 짜증부터 나고요. 그러고는 자신을 의심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 많은데 왜 아직 원망하는지, 다 큰 어른이 왜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자책하는 것이지요.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
둘 중 하나를 지워야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찾는 마음은 생존의 필요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해버린 이야기, 소설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에게도 평생 풀지 못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였습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크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큰 목소리와 단호한 판단 앞에서 그는 자주 위축되었고,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놓았지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인정받고 이해받기를 바랐습니다. 그 복잡한 마음을 담아 쓴 것이 오늘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로 알려진 장문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만을 쏟아낸 고발문은 아니었습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하나하나 되짚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애쓴 아버지의 수고까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의 끝에서는 아버지라면 자신의 말에 어떻게 반박할지 대신 써 내려간 뒤, 그 말에 다시 답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면서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려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토록 어렵게 써 내려간 편지는 끝내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해받고 싶어 편지를 썼지만, 그 마음은 정작 아버지에게 닿지 못한 겁니다. 편지를 썼다는 사실에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편지에는 두려움과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거리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합니다.

 

부모에게서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그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마음. 상처를 떠올리면서도 사랑받았던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는 마음. 부모를 사랑하면서 원망하고,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는 마음. 그것은 카프카만의 특별한 감정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부모 앞에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미성숙해서가 아닙니다. 부모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의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아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먹고 자는 것뿐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을 견디는 일까지 오랫동안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에게 의지해야 하지요. 아이가 울음으로 도움을 청하고, 부모의 품을 찾으며, 부모가 곁에 있으면 안정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갓난아이는 효도를 배우기 전부터 부모를 찾습니다.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는 도덕을 알기 전부터 부모에게 매달리고, 부모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지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보호받으려는 성향이 살아남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아이가 양육자와 맺는 이러한 정서적 유대를 ‘애착’이라고 합니다.

 

물론 부모를 향한 사랑을 생존의 필요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 고마움과 신뢰가 더해지면서 부모를 향한 마음은 훨씬 깊고 복잡해집니다. 다만 그 출발점에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을 찾고, 그 곁에서 안정을 얻으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자연 밖에서 따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성향 위에 살아오며 겪은 경험이 더해지고, 그 경험이 뇌와 몸의 반응 방식에 흔적을 남기면서 마음이 형성됩니다. 부모를 향한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부모는 늘 한 가지 경험만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울 때 안아준 사람도 부모이고, 실수했을 때 나무란 사람도 부모입니다. 나를 위해 희생한 사람도 부모이고, 나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아프게 한 사람도 부모이지요. 그렇게 한 사람과의 관계 안에 편안했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이 함께 쌓입니다.

 

현재의 말에는 과거의 기억이 겹쳐진다

부모와의 경험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우리 뇌는 지금 들은 말을 현재의 정보만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과 비슷한 과거의 경험을 불러와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판단합니다.

 

기억은 과거의 장면을 영상처럼 그대로 보관했다가 재생하는 기록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과 관련된 기억을 불러와 지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다시 구성합니다. 같은 말도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 이유입니다.

 

 

부모가 “요즘 일은 잘되니?”라고 물었을 때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안부로 듣지만, 어린 시절 끊임없이 비교와 평가를 받은 사람에게는 ‘또 나를 평가하려는 건가?’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자식은 대답하기도 전에 몸이 긴장하고 방어적인 말을 내놓을 수 있지요.

 

어린 시절의 내가 실제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말이 과거의 비슷한 기억을 불러오면서 그때 익힌 해석과 반응이 먼저 작동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데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말에 화가 나는 이유를 모두 어린 시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피로와 몸 상태, 지금 부모와 맺고 있는 관계, 실제로 오간 말도 함께 영향을 줍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반응에 관여하지만, 혼자서 모든 반응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원망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한 사람을 향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을 ‘양가감정’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음을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같은 사람과 맺어온 서로 다른 경험이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부모가 며칠 연락하지 않으면 걱정되면서도 막상 전화가 오면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걱정은 부모가 소중하다는 마음에서 나오고, 긴장은 그 관계에서 겪었던 불편한 경험에서 나옵니다. 어느 한쪽이 거짓인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이 모두 진짜인 겁니다.

 

부모를 만나면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함께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면, 상처의 기억은 같은 아픔을 피하도록 경계하게 합니다. 사랑에는 부모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원망 속에는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과 같은 상처를 다시 겪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화를 내고 돌아선 뒤 곧바로 미안해질 수 있습니다. 화가 났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미안하다고 상처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부모에게 고마웠다는 사실과 서운했다는 사실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지켜준 부모와 나를 아프게 한 부모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 안에 두 모습이 함께 있었던 겁니다. 부모를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 중 하나로만 규정하려 하면 내 경험의 절반을 지우게 됩니다. 고마움만 남기면 상처를 억누르게 되고, 상처만 남기면 부모에게 받은 사랑까지 부정하게 되지요.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환경을 이해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하거나 갈등을 푸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도 그 사람이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관계, 시대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받은 상처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원인을 이해한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인정한다고 부모에게 받은 사랑까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를 원망하는 자신을 미성숙하거나 불효하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두 마음 중 하나를 억지로 지우는 일이 아니라, 각각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오늘의 관계가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으로 형성되지만, 한 번 만들어진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고정된 존재는 아닙니다. 마음을 만드는 과정은 어린 시절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통해 부모를 해석하고 대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먼저 지금의 관계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비교하는 말은 듣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공격적으로 흐르면 멈추고, 필요에 따라 만나는 시간과 거리도 조절할 수 있지요.

 

경계는 부모를 밀어내기 위한 벽이 아닙니다.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나를 지키고,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계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부모의 모든 말과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부모가 달라지기만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의 말이 내 안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는지 알아차리면, 그 감정에 곧바로 끌려가지 않고 다음 반응을 고를 작은 여지가 생깁니다. 화를 쏟아내는 대신 잠시 대화를 멈추거나, 참기만 하는 대신 내 마음을 차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매에서도 어머니의 말에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화가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차리고, 감정이 다음 행동까지 모두 결정하게 두지 않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나도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실패해서 속상해요. 그런데 그런 말은 듣기 힘들어요.”

 

이 한마디로 오랜 관계가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부모가 곧바로 자신의 말투를 바꾸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래도 이전과 다르게 말하고 반응한 결과는 새로운 경험으로 남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오래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억이 현재의 반응을 모두 좌우하지는 않게 됩니다. 부모의 말에 화를 내거나 참는 것밖에 몰랐던 사람도 잠시 멈추고 설명하거나, 거절하거나, 거리를 두는 다른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쌓일수록 선택할 수 있는 반응도 늘어나는 것이지요.

부모와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거가 오늘의 모든 반응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가 내게 남긴 영향을 이해하되, 앞으로 어떤 거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계할지는 지금의 내가 조정해갈 수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원망은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마음에 남긴 서로 다른 흔적입니다. 그 두 마음은 모순의 증거가 아니라, 한 관계 안에서 사랑받고 상처받으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니까요.

 

그 흔적을 이해하되, 오늘의 관계에서는 이전과 다른 선택을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부모와의 과거를 지우지 않고도 나를 지키며, 내 삶의 어른이 되어가는 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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