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른여덟 번째 사람경영레터입니다.
<토이스토리>, <인사이드 아웃>으로 잘 알려진 ‘픽사’는 오랜 시간 상업적 성공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아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이유를 뛰어난 감독, 독창적인 아이디어, 앞선 기술력에서 찾으려 합니다. 이들 모두 성공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이지요. 하지만 픽사 공동 창업자 에드 캣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성과의 비밀을 한 사람의 천재성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협업 방식에서 찾았던 것이지요.
픽사에는 이런 관점이 잘 드러나는 독특한 회의 문화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 trust)’가 있습니다. 사장인 캣멀부터 선배 감독, 프로듀서까지 직급과 경력이 다른 핵심 크리에이터들이 제작 중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지요. 이름처럼 신뢰할 만한 창작자들의 지혜를 모으는 자리지만, 이 회의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습니다. 누구도 ‘결정권(authority)’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급이 높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내더라도 그것은 지시가 아닌 조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떤 피드백을 받아들일지는 작품을 책임지는 감독만이 판단합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정답을 내려주는 자리가 아니라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의견을 모으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는 “결정권이 없으면 책임도 없는 것 아닌가?” 혹은 “그냥 알아서 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브레인트러스트는 방임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리더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위험한 변수를 짚으며, 필요한 의문을 제기하지요. 다만 자신의 의견을 먼저 밀어붙이거나, 결론을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책임지는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되고, 끝까지 붙잡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캣멀 본인도 거의 모든 브레인트러스트에 직접 참석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피드백을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회의의 규칙인 ‘누구도 결정권을 갖지 않는다’는 약속이 지켜지는지 살펴보고,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오는 것이지요.
브레인트러스트의 핵심은 ‘리더십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습니다. 회의에서의 리더는 감독이 잘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 주고, 피드백이 명령이 되지 않도록 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최종 결정권은 작품의 감독에게 남겨두어 스스로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합니다.
이처럼 리더는 답을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이 나올 수 있도록 ‘관계에 개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관계에 개입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믿고, 협력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상호작용의 조건을 조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리더십은 구성원의 자율적 몰입 상태를 만들고, 구성원 스스로 동기를 자극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