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지원서의 첫 칸은 학교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신입 수시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없애고 경험과 직무 역량, 성장 가능성을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SK하이닉스만이 아닙니다. 삼성은 오래전부터 학력·성별·나이를 따지지 않는 열린 채용을, 카카오는 개발자 블라인드 채용을, 현대자동차그룹은 직무별 상시채용을 운영해 왔습니다.
방향은 분명합니다. 스펙이라는 과거의 데이터만으로 미래의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시장은 학벌보다 직무 역량을 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력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직무 역량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기업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기준은 경력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조사한 '2026년 신규 채용 실태 조사'에서도, 기업이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평가 요소는 '직무 관련 업무 경험'(67.6%)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비슷한 일을 해봤고 성과도 냈으니 우리 회사에서도 잘하리라 기대하는 것이죠.
그러나 경력이 곧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과거의 성과를 만든 조건은 함께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전 회사의 브랜드와 고객, 리더와 동료, 시스템은 모두 성과에 영향을 줍니다. 좋은 결과를 냈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개인의 힘만으로 낸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성과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후보자가 기여한 부분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월가의 스타 애널리스트 1,000여 명을 분석한 연구도 같은 점을 보여줍니다. 뛰어난 평가를 받던 이들도 회사를 옮긴 뒤에는 성과가 떨어졌고, 그 다음해에 최고 등급에 오를 확률은 약 10%에서 5%대로 낮아졌습니다.
둘째, 경력이 단순한 반복에 머물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오래 했다는 사실이 더 나은 판단력과 실행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익숙한 일을 반복한 경험과 낯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낸 경험은 다릅니다.
조직행동 분야의 대표적 저자 스티븐 로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20년의 경험이 있고 어떤 사람은 2년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전자가 후자보다 의미 있는 경험을 10배 더 많이 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년의 경험이란 흔히 1년간의 경험이 20번 되풀이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학력이 과거의 학습 이력이라면, 경력은 과거의 업무 이력입니다. 둘 다 과거의 기록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록은 성과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왜 역량이 미래의 성과 가능성일까?
어느 조직이든 원하는 사람은 결국 성과를 잘 만드는 사람, 곧 고성과자입니다. 성과를 만드는 힘은 '역량'입니다. 그러니 채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래에 성과를 잘 만들 가능성'인 보유역량 수준이 높은 사람을 찾는 일이어야 합니다.
역량은 어떻게 성과로 이어질까요? 성과는 능력과 기회가 만날 때 만들어지고, 능력은 지식과 기술, 역량의 상호작용으로 발현됩니다. 지식이 '무엇을 아는가'이고 기술이 '어떻게 하는가'라면, 역량은 그 지식과 기술을 실제 상황에서 성과로 이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판단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술이 익숙해도 변수 앞에서 방법을 바꾸지 못하면 성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역량은 기회와 과제를 만났을 때 뇌의 성과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먼저 주어진 기회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가치판단), 그 가치에 따라 열정이 솟아오르며(열정발현), 성과를 얻을 방법을 찾고(전략모색), 결과가 날 때까지 실행을 조정합니다(추적제어). 이 흐름을 이끄는 힘이 바로 역량입니다.
그런데 이 역량은 경력기술서나 면접 인상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식과 기술은 학습 이력과 자격, 과제 결과로 비교적 쉽게 확인되지만, 정작 성과를 좌우하는 역량은 뇌의 성능이자 비인지 영역의 힘이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역량 중심 채용에는 과학적 렌즈가 필요합니다. 서류와 면접이 후보자의 과거를 이해하는 자료라면, 과학적 렌즈는 그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성과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는지 예측하게 하는 기준입니다. 좋은 채용은 과학적 렌즈로 입사 이후의 성과 가능성을 판단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검증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봐라
역량을 채용의 기준으로 삼자는 말은 단순히 학벌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경력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조직에 필요한 미래의 고성과자를 뽑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입니다.
역량 중심 채용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그 역량을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입니다. HR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경험했는가'라는 과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성과를 잘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