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어시장을 찾았습니다.
동이 트기도 전부터 시장은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지요. 갓 잡아 올린 생선이 펄떡이고, 상인의 목소리가 골목을 흔들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습니다. 갈매기들은 사람들 머리 위를 오가며 시장의 분주함을 더했고요.
힘이 빠질 때 일부러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저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흥정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움직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 활기찬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행복에 관한 오래된 비유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비 온 뒤 먼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에 비유하곤 합니다. 분명 눈앞에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나는 파랑새 이야기에도 비슷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막상 손에 넣으려 하면 쉽게 붙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곳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요.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행복은 다시 저만치 앞에 놓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끝내 다가갈 수 없는 무지개일까요? 붙잡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파랑새일까요?
어쩌면 이 질문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행복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손에 넣어 오래 소유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얻을 때 뇌에서 잠시 일어나는 행복감이며, 그 경험을 다시 바라는 마음이 우리를 다음 목표로 움직입니다. 새벽 시장은 그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시장이 유독 활기찬 이유
시장이 활기찬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필요한 것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시장은 이토록 살아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손님이 필요한 것을 찾고, 상인이 그 필요에 맞는 물건과 정보를 내놓으며, 서로의 조건을 맞춰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알맞은 값에 사고 싶고, 파는 사람은 자신의 물건을 제값에 팔고 싶습니다. 그러니 흥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거래가 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손님은 다시 가격을 묻고, 상인은 물건의 값을 설명합니다.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으면 거래가 이루어지지요.
거래가 성사되면 손님은 필요한 것을 얻고, 상인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얻습니다. 서로 다른 욕망이 만나고, 충돌하고, 조정되면서 각자의 삶을 이어 갈 길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시장의 활기는 바로 이 움직임에서 생깁니다.
시장에서는 돈과 물건만 오가지 않습니다. “이 생선은 오늘 잡은 겁니다”라는 말에는 정보가 담기고,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라는 말에는 신뢰가 쌓입니다. 단골에게 조금 더 얹어 주는 손길과 다시 찾아오는 발걸음이 반복되면서, 한 번의 거래는 다음 거래가 이루어질 조건을 만듭니다. 시장은 물건을 파는 장소이기 전에, 수많은 관계와 상호작용이 이어지며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장소였습니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우리는 흔히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막상 “행복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선뜻 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행복감은 뇌의 신경보상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쾌감과 안락감입니다. 우리는 쾌가 늘어나거나 통이 줄어들 때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통해 기쁨과 만족, 안정과 희망을 느낍니다. 필요한 것을 얻었을 때의 안도감,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의 뿌듯함, 힘든 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따뜻함도 그러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뇌는 그때의 행복감을 기억합니다. 행복을 주었던 대상과 상황, 그 경험을 함께한 사람과 행동이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 기억은 다시 같은 가치를 기대하게 하고, 그 기대는 욕망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어떤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며, 더 나은 결과를 바라게 되는 이유입니다.
배고픔이나 피로처럼 생존과 직접 연결된 욕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성공하고 싶은 마음과 같은 사회적·정신적 욕망은 살아오며 만난 사람과 사건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과 방향을 갖춥니다. 우리는 사랑과 인정, 성공과 실패, 신뢰와 배신을 경험하며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다시 삶을 움직이는 욕망이 됩니다.
그래서 행복감은 내 뇌에서 느끼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는 많은 경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며, 함께한 일의 결과를 나눕니다. 사랑과 신뢰, 인정과 성취도 그렇게 경험합니다. 시장에서 손님과 상인이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듯, 삶에서도 서로의 필요가 더 나은 방식으로 만날 때 우리는 기쁨과 만족을 느낍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욕망이 만나는 곳에는 오해와 갈등도 생깁니다. 시장에서 거래가 깨지듯, 사람 사이에서도 관계가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얻은 기쁨만 기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해와 갈등, 상처 역시 기억으로 남아 이후의 욕망과 선택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관계가 남긴 쾌와 통의 기억을 바탕으로 무엇을 다시 가까이하고 무엇을 피할지 배웁니다. 그 기억은 다음 관계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달라진 행동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듭니다. 관계는 내가 바깥에서 선택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고 기억하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지금의 자신이 되어갑니다.
✔️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이 인생이 된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약 138억 년 전 빅뱅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빅뱅 이후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고, 이 원소들이 모여 별이 탄생했습니다. 별에서 만들어진 더 무거운 원소들은 지구와 생명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지구의 생명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여러 세대에 걸쳐 진화했고, 그 긴 과정에서 오늘의 인간이 출현했습니다. 한 사람의 몸에도 우주와 생명의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금의 나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가족, 친구와 스승, 일하며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눈 말과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일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마주하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기억과 욕망, 서로 다른 삶의 역사가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만남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랑하고, 믿고, 때로는 다투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가치를 경험합니다. 그 경험은 다시 기억과 욕망이 되어 서로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
행복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가치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어떤 기억과 욕망으로 남아 삶을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도덕적 구호가 아닙니다. 인간이 관계 속에서 가치를 얻고, 그 가치가 신경적 보상이 되어 다시 삶을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다시 어시장을 떠올려 봅니다.
좌판의 할머니 한 분이 허리춤의 전대를 풀어 두꺼운 돈뭉치를 꺼내 천천히 세고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였을 겁니다. 수없이 흥정하고, 사람들과 부딪치고, 웃고, 때로는 속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왜 미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대보다 장사가 잘되어서일 수도 있고, 고단한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하루가 혼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건을 건네고 말을 주고받으며 수많은 사람과 맺은 관계가 그날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새벽 시장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은 흥정하고, 생선은 펄떡이고, 갈매기는 날아오릅니다. 그곳에는 오늘도 수많은 욕망과 기억, 관계와 상호작용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장의 활기는 사람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욕망이 만나 가치를 주고받고, 그 경험이 다시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아마 그러할 겁니다. 행복감은 각자의 뇌에서 일어나지만, 그 행복감을 만드는 삶의 가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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