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페퍼 교수는 고성과 조직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 성과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지요.
강연이 끝난 뒤 한 참석자가 말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모두 상식이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페퍼가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과 당신의 회사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그렇지 않네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페퍼와 그의 동료 로버트 서튼은 이를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간극(Knowing-Doing Ga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조직의 우수사례 공유도 비슷합니다. 성공한 팀의 방법을 공유하고 사례집까지 만들어도 다른 팀이 기대만큼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례는 쌓이는데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인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 결과만 복붙하면 과정이 사라진다
우수사례는 대개 성공한 결과를 중심으로 정리됩니다.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고객 만족도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어떤 제도를 도입했는지를 보여주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은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전 과정입니다.
처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기존 방식은 왜 효과가 없었는지, 무엇을 바꾸기로 판단했는지, 실행해보니 무엇이 예상과 달랐는지, 그 결과를 보고 무엇을 다시 수정했는지가 드러나야 합니다.
도요타의 표준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여기서 표준은 완성된 정답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좋은 사례이자 다음 개선의 출발 기준이지요. 실행하고, 확인하고, 다시 고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면서 조직의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팀의 결과만 공유하면 “무엇을 했는가”만 남겠지요.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판단과 행동 경로를 보여주면 다른 팀도 자신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이 시작됩니다.
✔️ 과정의 이면에 있는 조건을 살펴야 한다
과정을 이해했다고 해서 그 방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A팀이 매일 15분 회의를 시작한 뒤 협업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를 우수사례로 접한 B팀이 똑같이 15분 회의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A팀의 문제는 정보 공유의 지연이었고, B팀의 문제는 의사결정 권한의 부족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방법이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은 문제와 업무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수사례에서 살펴야 할 것은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이 선택된 맥락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왜 그 방법을 선택했는지,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수사례는 우리 조직의 문제와 업무 조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자료여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성과가 좋은 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반드시 성과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러 팀이 회의를 자주 한다고 해서 회의가 성과를 만든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요. 업무 특성상 빠른 정보 공유가 필요해서 회의가 많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상관은 인과가 아닌 것입니다.
✔️ 우수사례도 질문이 되어야 한다
이 관점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구성원의 프롬프트를 공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AI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어떤 자료와 맥락을 제공했는지, AI의 결과에서 무엇을 문제로 판단했고 어떻게 수정했는지입니다.
결국 프롬프트가 아니라 판단과 검증의 과정이 성과 창출의 핵심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경험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데서 끝나면 좋은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길 뿐입니다. 그 경험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직접 시험해볼 때 비로소 조직의 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얻은 결과와 시행착오가 다시 조직에 쌓이면 개인의 경험은 조직의 역량으로 바뀌고요.
HR의 역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잘한 사람과 잘한 일을 찾아 소개하는 데 머물기보다, 그 성과를 만든 문제 인식과 판단, 실행과 수정의 과정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서 다시 시험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수사례의 가치는 그 사례를 통해 얼마나 많은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나 새로운 성과가 나타나는지에서 드러납니다.
우수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는 조직은 과거의 성공을 반복할 뿐입니다. 성공한 이유를 묻는 조직은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냅니다. 우수사례는 정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의 새로운 성공을 여는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