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지요. 우리 인생에는 집, 밥, 돈, 잠, 꿈처럼 유독 한 글자로 된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집이 없으면 몸 둘 곳이 없고, 밥이 없으면 배가 고픕니다. 돈이 없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잠이 없으면 사람이 망가집니다. 꿈이 없으면 삶이 밋밋해지고요. 그런데 이들과 달리 조금 이상한 한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일’입니다.
집은 갖고 싶고, 밥은 먹고 싶고, 돈은 벌고 싶고, 잠은 자고 싶고, 꿈은 이루고 싶은데, 일은 하기 싫습니다. 힘들고 귀찮아서 가능하면 덜 하고 싶지요. 그런데 또 일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바빠 죽겠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할 일이 없으면 권태를 견디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상한 건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일을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한 일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일까요?
✔️ 나와 세상이 만나는 곳에 일이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사람도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고, 누군가가 만든 음식과 집, 지식과 기술, 제도와 문화를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의 나 역시 가족과 친구, 학교와 직장, 수많은 만남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인생은 자신과 세상이 주고받은 영향이 축적된 결과인 것이지요.
일은 그 상호작용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일은 직장에서 돈을 받고 하는 업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돌보고, 배우고, 연구하고, 창작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도 모두 일에 속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능력을 사용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 공동체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행위가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숫자를 다루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있지요. 그러나 이 능력은 가능성을 품고 있을 뿐, 필요한 곳과 만났을 때 비로소 실제 가치로 이어집니다.
가치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낫게 만드는 데서 생깁니다. 같은 청소도 집에서는 가족의 쾌적한 일상을 만들고, 호텔에서는 고객의 편안한 경험을 제공하며, 병원에서는 감염 위험을 줄여 환자의 안전을 지킵니다. 반도체 공장의 청소는 작은 먼지를 제거해 제품의 불량을 막고요. 같은 행동도 누구의 어떤 필요를 충족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만듭니다.
✔️ 일은 가치를 주고받는 통로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치를 얻습니다. 누군가가 재배한 곡식을 먹고, 앞선 사람들이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사용합니다. 가족의 돌봄과 동료의 도움, 사회가 마련한 제도와 기회도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 역시 일을 통해 시간과 능력, 경험과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삶에 필요한 가치를 더하지요. 이렇게 각자가 만든 가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가치 교환에는 정해진 등가나 시점이 없습니다. 제공한 가치와 돌아오는 가치의 크기와 형태는 다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거쳐 돌아오기도 합니다. 가족을 돌본 시간은 돈으로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고, 연구자가 발견한 지식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도 하지요.
우리는 흔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단지 시간을 들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시간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과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그렇게 제공한 가치를 사회에서 주고받게 하는 대표적인 교환 수단이자 보상입니다.
일을 통해 얻는 가치도 돈에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보람과 존재감을 느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감을 얻습니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는 동안 경험과 능력도 자랍니다. 일은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돈과 관계, 성장의 기회를 얻는 행위입니다.
✔️ 일이 삶의 의미가 되려면
그렇다면 일의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직업의 이름이나 보상의 크기, 들인 노력으로 일의 가치를 가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어떤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보여주어도, 그 일로 ‘누구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까지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일의 가치는 ‘그 일로 실제 무엇이 달라졌는지’에서 드러납니다. ‘누군가의 불편이 줄고,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풀리고, 한 사람의 삶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면’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의 일은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질문이 달라지면 일의 기준도 들인 노력에서 그 노력으로 만들어낸 변화로 옮겨갑니다.
그 변화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반복해서 확인되면 하나의 성과로 남습니다. 성과는 신뢰를 쌓고, 신뢰는 더 중요한 일을 맡을 기회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험과 능력이 커지고, 커진 능력으로 다시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바구니에 성과와 경험이 쌓일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도 넓어집니다.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더 많이 만들수록 내 삶의 가능성도 함께 커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은 나의 능력으로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고, 그 결과를 경험하며 내 삶의 가능성도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세상에 더한 가치와 그 일을 하며 달라진 내가 함께 지금의 인생을 만듭니다.
역시 ‘일’은 참 이상하고도 중요한 ‘한 글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