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가 있다. 잠깐 집중해서 풀어보자.
“이사를 한 집에 페인트를 칠했는데 냄새가 너무 독해서 머리가 아파. 그렇다고 문을 열면 밖에서 매연이 들어와 기침이 계속 나. 문을 닫자니 머리가 아프고, 문을 열자니 기침이 나. 어떻게 해야 할까?”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이 난제는 한때 공전의 히트를 쳤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등장했던 것이다. 주인공 ‘나정’의 질문에 주변 남자친구들은 갖은 이유를 들며 문을 열어야 할지 닫아야 할지 토론을 벌였다. 이에 실망한 ‘나정’은 결국 극중 최고의 상남자 ‘쓰레기’ 오빠 김재준과 서울 남자 칠봉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의대에서 수석을 도맡아 하는 ‘쓰레기’는 질문을 듣자마자 명쾌하게 답을 한다. ‘문을 열어야지!’ 재차 실망한 ‘나정’은 칠봉이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고심 끝에 ‘문을 닫는 게 낫지 않냐’고 대답하는 칠봉을 보며 실망에 빠지려는 찰나, 칠봉은 묻는다. ‘근데 너 괜찮아?’ 문을 여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따뜻한 말이 우선이라고 줄곧 주장했던 ‘나정’은 서울 남자는 역시 다르다며 칠봉을 추켜세우고 만족해한다.
이 질문의 핵심은 문을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은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있지 않다. 상대를 향한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에 있다. 이 질문은 한때 남녀의 소통 방식 차이를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소통에 있어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의 중요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애정 어린 따뜻한 말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똑똑한 말보다 언제나 우선한다.
옳고 그름에 앞서는 긍정 판단
사람은 늘 소통을 하며 살아간다. 동료, 가족, 친구, 연인 등의 관계를 맺고 잘 유지하는 핵심은 소통’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상호작용은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소통의 순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의 순서는 뇌의 세 가지 판단체계(정서판단, 감정판단, 이성판단)를 따른다.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의 말을 포함한 모든 외부 자극을 접하게 되면, 우선 존속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긍정 혹은 부정의 정서적 판단을 한다. 자극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단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즉 신뢰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정서판단). 신뢰 여부를 판단하는 정서 판단 이후에는 관련 기억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좋은지 싫은지 감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고(감정판단), 이후에 비로소 접근 혹은 회피의 반응 행동을 결정하는 이성판단이 작용한다(이성판단).
이러한 정서-감정-이성의 판단 체계는 순차적이다. 정서판단이 일어난 뒤에 감정판단이 일어나고 그 뒤를 이성판단이 따른다. 이 순차적 판단과정은 지극히 (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히도) 편향적이다. 앞서 판단한 결과가 뒤의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믿을 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긍정적인 정서판단을 했다면, 대개 감정적인 좋음이 뒤를 따르고, 그다음에는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성적 판단과 더불어 행동에 나서게 된다. 반면, 어떤 자극에 대해 일단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어지간해서는 좋은 감정이 들지 않고, 당연히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쪽으로 판단하게 된다.
소통이 이처럼 정성-감정-이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면, 핵심은 논리적 설득이 전달이 아닌 정서와 감정의 작용일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은 소통에 있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기술을 생각하면 말을 똑똑하게 매끄럽게 잘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설득이든, 토론이든, 발표이든 원활한 소통의 시작은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긍정적인 판단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논리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소통은 정서-감정-이성의 판단체계에 따라 순차적이고 편향적으로 이루어진다
긍정을 여는 소통 전략
소통의 긍정적 결과를 낳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소통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상대방이 현재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면, 또는 굉장히 긴급한 상황이라면 긍정적인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긍정적 소통의 시작은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상대방에게 긍정을 입력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반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칭찬 한 마디를 듣게 된다면 자연스레 긍정적으로 판단하게 되기 마련이다. 따뜻한 말투, 표정, 단어 선택, 자세, 동작, 사소한 칭찬 등이 모두 상대로 하여금 긍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경청으로 감정적 공감을 이루는 것이다. 경청은 말, 자세, 표정 등 상대가 소통 과정에서 보이는 사소한 반응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로 하여금 온전히 수용되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결과적으로 상호 간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단계로,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상대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이성판단 단계에서는 결국 유리와 불리를 따지게 된다. 따라서 정보를 숨기거나 감추지 말고 서로에게 어떻게 이익이 될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능동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보다 깊이 수용하며, 그 선택을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성판단의 결과 역시 온전히 상대방의 적극적 선택의 몫이 되도록 질문을 던져야 한다.
“Yes, And…” 기법의 비밀
IT 혁신을 이끄는 구글은 직원을 독려하기 위한 독특한 제도로도 유명하다. 그중 구글의 회의 기법은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Yes, and…” 기법이다. 설령 상대의 의견이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동의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일단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으로 알려진 이 원칙을 통해 상대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발전적으로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다.
구글의 “Yes, And…” 기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기업에서 이 기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이대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계적으로 “Yes”를 말하고 결국 반대의견을 말하게 되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소통에 있어 “Yes, And…” 기법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알려지지 않은 원칙이 있다. 우선,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개인 간의 소통에서는 소통 상대의 심리 상태를 파악함으로써 긍정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지만, 조직의 관점에서는 회의 참석자의 심리 상태를 매번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의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을 때, 직원들은 거침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두번째 중요한 원칙은 상대방에게 긍정을 입력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Yes’라는 한 마디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대해 『긍정지능 Positive Intelligence 』의 저자 쉬자드 샤미네 박사는 “Yes, What I like about your idea”라고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습관적으로 ‘Yes’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아이디어 중에 좋은 점을 콕 집어서 대답하라는 조언이다. 쉬자드 샤미네 박사는 상대 아이디어의 모든 점이 100퍼센트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라고 말한다. 바로 긍정을 깊숙하게 입력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원칙은 “And…” 이후의 대답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Yes, And…” 기법에서 And 이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쉬자드 샤미네 박사는 ‘And’ 이후에 말해야 하는 것은 상대의 아이디어 중 내가 좋아했던 부분(What I like about your idea)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즉, 상대방에게 어렵게 심은 긍정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상대의 아이디어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상대가 가급적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다.
구글의 “Yes, And” 회의 기법은 상대방에게 긍정성을 입력하고, 경청하여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 내고,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긍정 소통 전략을 철저하게 따르는 기법이다. “Yes, And” 라는 것은 그저 단어일 뿐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긍정 소통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상대에게 긍정을 심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말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똑똑한 말보다 강하다. 따뜻함 없이 똑똑하기만 한 말은 긍정 정서를 만들 수 없다. 긍정이 없는 상태에서 좋은 감정은 생겨나기 어렵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논리라도 상대를 움직이기란 요원할 뿐이다. 논리는 신뢰와 호감이라는 비옥한 토양이 있을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신뢰와 호감이 없는 말은 그 누구의 마음의 밭에도 깊게 자리잡지 못한다. 그렇기에 신뢰와 호감을 부르는 긍정의 따뜻한 말이 논리적이고 똑똑한 말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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