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회의 내용을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점점 더 잘하고 있고요. 그동안 관리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왔던 업무의 일부를 AI가 대신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관리자가 지금처럼 많이 필요할까? 관리 계층을 줄이면 조직은 더 빨라지지 않을까?”
실제로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간관리자를 줄이는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2025년 인텔 CEO 립부 탄도 복잡한 보고 체계와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이 현장의 실행을 늦춘다고 보고, 조직을 보다 수평적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불필요한 보고와 승인은 줄여야 합니다. 다만 관리자를 줄이는 것과 조직에 필요한 관리 기능을 줄이는 것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는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나누며,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배분하고, 부서 간 충돌을 해결하는 일도 포함합니다.
✔️ 관리자를 줄여도 해야 할 일은 남는다
구글도 오래전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엔지니어 중심 조직이었던 구글은 관리자가 없으면 의사결정이 더 빨라지고 엔지니어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관리자를 없애자 구성원들은 업무 우선순위와 갈등, 경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진이나 다른 구성원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자라는 직책을 없앴다고 그들이 맡아오던 일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구글은 이후 ‘산소 프로젝트(Project Oxygen)’를 통해 어떤 관리자가 팀을 효과적으로 이끄는지 분석했습니다. 직원 설문과 성과평가, 우수 관리자 추천 자료 등에 담긴 수천 건의 의견과 데이터를 분석해 효과적인 관리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덟 가지 행동을 찾아냈습니다. 좋은 코치가 되는 것, 구성원에게 권한을 주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 소통을 잘하고 경력 개발을 돕는 것, 팀의 목표와 전략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구글의 경험은 관리자를 줄이더라도 구성원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목표를 정하고, 권한을 부여하고,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은 계속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여러 부서의 목표가 충돌하면 누군가는 조직 전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개발팀은 품질 검증을 위해 연기를, 마케팅팀은 예정대로 출시할 것을 주장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보고 단계를 하나 줄이는 일이 아닙니다. 품질 문제가 가져올 위험과 출시 지연에 따른 손실을 함께 검토해 무엇을 우선할지 결정하고, 일정과 투입 인력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조직이 빨라지려면 필요한 사람이 제때 결정하고, 부서의 의견이 충돌했을 때 우선순위를 빨리 정하며, 그 결정이 실행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통솔 범위를 넓히면 해결될까
관리 계층을 줄인 뒤 남은 관리자에게 더 많은 구성원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조직도는 단순해지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피드백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딜로이트가 소개한 한 생명과학 기업에서는 관리자가 담당하는 현장 직원 수를 크게 늘린 뒤 코칭과 인재 육성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었고, 직원 참여도와 이직에서도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유능한 사람이 많다고 조직의 성과가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역량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분명해야 하고, 맡은 범위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정을 실행할 인력과 예산, 정보도 필요하고요.
관리의 가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성원의 업무 진행 상황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자신의 역량을 중요한 과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목표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필요한 권한과 자원을 제공하며, 여러 부서가 함께 일할 때 역할과 책임을 정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가 경영진에게 제때 전달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를 보고했을 때 책임부터 추궁받는 경험이 반복되면 좋지 않은 정보는 늦게 올라옵니다. 경영진이 문제를 늦게 알수록 잘못된 결정도 오래 유지됩니다.
✔️ AI에 맡길 일과 관리자가 집중할 일
AI는 보고서 작성, 정보 취합, 진행 상황 추적처럼 반복적인 관리 업무를 빠르게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업무가 줄어들수록 관리자는 정보를 모아 전달하는 일보다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과제를 우선할지 결정하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지 판단하며, 부서 간 의견이 엇갈릴 때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구성원이 업무에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필요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따라서 관리 계층을 줄이려는 조직이라면 조직도부터 바꾸기보다 현재 관리자가 하는 일을 먼저 나누어 봐야 합니다.
반복적인 보고와 형식적인 승인은 줄일 수 있습니다. 정보 취합과 진행 상황 확인은 AI와 시스템에 맡길 수도 있고요. 반면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하고, 의사결정 권한과 자원을 배분하며, 부서 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담당자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관리자를 줄인 뒤 이런 일을 남은 사람에게 그대로 넘기면 작은 의사결정이 임원에게 몰리거나, 구성원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조직도는 단순해져도 실제 업무는 더 늦어질 수 있습니다.
조직이 줄여야 할 것은 불필요한 승인과 정보 전달 단계입니다. 필요한 판단을 누가 내릴지 정하고, 그 사람에게 정보와 권한을 주며, 부서 간 의견이 충돌할 때 결론을 내릴 책임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조직의 속도는 관리 계층의 수보다 필요한 결정이 제때 내려지고 실행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