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넘치는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AI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답을 얻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답이 풍부해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물을지 판단하는 인간의 힘입니다. 질문은 정보를 요청하는 데서 자기 생각과 삶을 검토하는 성찰로 이어집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보여 주듯, 지혜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앎을 점검하고 모름에 맞는 질문을 던질 때,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 답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질문은 당연하게 여긴 전제를 바꾸고 주어진 조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돔을 반드시 아래에서 떠받쳐야 한다는 전제를 의심했고, 미켈란젤로는 버려진 돌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자신의 선택에도 필요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에 대비해 자신을 묶고, 칼립소의 제안을 거절하며 고향을 선택했듯이, 우리는 미래의 자신을 지킬 조건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소중한 가치는 그것을 위해 실제로 내어 주는 시간과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다른 사람과 조직을 이해하는 일로 확장됩니다. 거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왕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바사호와 물난리를 겪은 공장에는 위험을 알거나 해결책을 가진 사람이 있었지만, 질문이 오가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고, 답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AI의 답을 활용하면서도 무엇을 묻고 무엇을 위해 행동할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에게 남은 과제입니다.
강연 목차
- AI 시대의 질문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
- 소크라테스와 공자 — 자신의 앎과 무지를 구분하기
- 해리슨의 시계 — 앎의 한계를 점검하고 다른 모습의 답을 알아보기
- 브루넬레스키의 돔 — 당연하게 여긴 전제를 의심하기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성 발견하기
- 노자의 덜어냄 — 익숙한 요구와 규칙의 유효성 돌아보기
- 세이렌 — 미래의 자신을 지키는 조건과 AI 사용의 순서
- 칼립소와 세네카의 항구 — 삶의 목적과 선택의 방향
- 대체할 수 없는 가치 — 소중한 것에 실제로 내어 주는 시간
- 거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 자신의 위치가 만드는 시야의 한계
- 바사호와 공장 사례 — 지식과 경험이 오가는 질문의 통로
- 다섯 가지 질문 — 자신과 타인, 삶을 다시 바라보는 성찰
1. 모름을 아는 데서 질문은 시작된다
자신의 앎과 무지를 구분하는 것이 질문의 출발점입니다. 모름에 맞는 질문을 던질 때, 필요한 배움과 예상 밖의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AI에게 묻고 즉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옳은가?”,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나는 좋은 뜻을 품고 살아가는가?”를 묻는 일은 자신의 생각과 삶을 검토하는 성찰입니다. 정해진 답을 익히는 데 익숙했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고, 얻은 답을 다시 검토하는 힘입니다. 답을 쉽게 얻을수록 무엇을 물을지 생각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용기와 정의를 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며 그들의 앎을 검토했습니다.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끝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공자 역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앎과 무지를 구분하는 메타인지는 필요한 배움을 찾는 출발점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존 해리슨은 정확한 시계로 경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경도위원회가 천문학적 해법을 찾는 동안, 그는 기준 지점의 시각과 배가 있는 곳의 현지 시각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위원회는 기대한 해법과 다른 시계를 쉽게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아는 방식에 머무르면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 답을 놓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오래 타도 구조를 설명하지 못하듯, 익숙함이 곧 정확한 앎은 아닙니다. 질문은 자신의 앎이 어디까지인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익숙해서 안다고 믿었던 것을 설명해 보는 순간, 다음에 물어야 할 질문이 드러납니다.
2. 당연한 것을 다시 물으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질문에 담긴 전제를 살펴야 합니다. 당연한 조건을 다시 물으면, 한계로 여겼던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오랫동안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건축가들은 돔을 나무 비계로 떠받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떠받칠 것인가?”를 묻는 동안 브루넬레스키는 “왜 반드시 아래에서 떠받쳐야 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두 겹의 돔과 엇갈린 벽돌 구조를 활용해 거대한 비계 없이 돔을 완성했습니다. 해결은 당연하게 여긴 전제를 질문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맡은 대리석은 좁고 손상되어 여러 조각가가 작업을 포기한 돌이었습니다. 그 돌에서 탄생한 다비드는 승리한 모습이 아니라 싸움을 앞둔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좁은 돌에 골리앗의 머리를 새기기 어려웠다는 해석은, 결함이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조건이 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 돌로 만들 수 있는가?”에서 “이 돌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꾸면 부족한 조건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계와 골리앗의 머리처럼 익숙한 요구를 덜어낼 때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원래 그렇게 해 왔다”는 규칙도 처음의 이유가 지금까지 유효한지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나이와 경험, 시간 부족을 결함으로만 보기보다 그 조건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 물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은 아직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부족한 조건을 채우기 전에, 그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3. 무엇을 위해 선택하고, 어떻게 지킬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묻고, 그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소중한 가치는 실제로 내어 주는 시간과 행동으로 실현됩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묶게 했습니다. 미래의 자신이 유혹 앞에서는 결심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휴대전화를 다른 방에 두거나 함께 운동할 약속을 잡는 등 선택을 지킬 조건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AI를 사용할 때도 편리한 답에 생각을 맡기지 않도록,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지킬 규칙을 미리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택을 지키는 방법과 함께 물어야 할 것은 그 선택의 목적입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함께 머물면 불멸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고향에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어느 항구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적지가 있어야 바람이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듯,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알아야 눈앞의 좋은 조건이 자신에게도 좋은 선택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과거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져갈 단 하나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답은 대체로 신과 가족, 사랑으로 모였습니다. 이 사례는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한 가치는 소중하다는 선언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시간을 내고, 피곤해도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AI가 많은 일을 도와도 무엇을 위해 할지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은 시간을 쓰는 대상과 행동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일은 그것을 선택하는 데서 시작해, 시간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4. 내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질문하다
자신의 위치에서는 다른 사람과 현장이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점을 바꾸고 질문의 통로를 열어야 지식과 경험을 문제 해결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해 궁전에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약한 사람을 모욕하고 누가 따뜻하게 대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왕의 자리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모습입니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경험이, 교사에게는 학생의 어려움이, 사무실에서는 현장의 상황이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로 올라오는 정보도 보고받는 사람에게 맞게 다듬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무엇을 보여 주고 가리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바사호와 물난리가 난 공장은 질문의 통로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바사호는 출항 전 시험에서 불안정성이 드러났지만, 국왕이 승인하고 재촉한 결정을 다시 묻기 어려웠습니다. 공장에는 물난리의 해결법을 아는 전임 공장장이 있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아는 사람과 해결책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그 지식이 판단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질문할 수 있는 구조와 답을 가진 사람에게 다가가는 행동이 함께 필요합니다.
다섯 가지 질문은 자신의 무지, 당연한 전제, 미래의 행동, 삶의 목적, 위치와 조직의 한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는 다시 “나는 항상 옳은가?”,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나는 좋은 뜻을 품고 살아가는가?”라는 성찰로 이어집니다. 주변에는 경험과 답을 가지고도 질문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자신도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AI에게 묻는 데서 나아가 자신에게도 질문하고, 익숙한 믿음을 검토하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물을 때, 누군가의 경험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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