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산책 다시보기

관계 없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철학, 지식에서 지혜로

일시
2026년 8월 1일 13:00~16:00
장소
마이다스 그룹 판교 본사 2층 컨퍼런스 홀

연사 소개

  •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관심 분야는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기술의 철학, 인공지능의 철학 등이다.

    저서로 《포스트휴먼의 시대, 인간을 다시 생각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등의 공저가 있으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모든 순간의 물리학》 등을 감수하였다.

이중원 교수 강연 현장
이중원 교수 - 생각산책 현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독립된 사물들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그물망일까요?”

 

현대 물리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세계의 모습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양자이론에서는 사물의 속성이 언제나 독립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기 어렵고,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조차 절대적인 기준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중원 교수는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는 이러한 세계상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며, 물질과 시간, 공간을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로 바라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론적 세계 이해를 과학적 지식에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지식을 삶의 맥락 속에서 판단하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연결하는 지혜의 중요성으로 논의를 확장합니다.

 

 

과학은 세상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과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론으로 설명하고, 과학철학은 그 이론이 어떤 세계와 존재의 모습을 전제하는지 묻습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계의 언어와 개념만으로 미시세계나 우주의 근원적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개념은 대부분 거시적인 경험 세계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론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특히 물리학은 수학을 통해 관측과 실험에서 얻은 현상을 설명하고, 그 원리와 법칙을 추론합니다.

 

하지만 과학이론은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론이 어떤 세계를 전제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이해되는지를 묻는 순간 철학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물리학자가 현상과 이론의 관계를 정교하게 밝힌다면, 과학철학은 그 이론 속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해석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이론은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와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관한 관점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는 세계를 관계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다음 논의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지식 뒤에는 언제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 놓여 있습니다. 그 관점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까지 돌아보게 합니다.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는 관계의 세계

 

현대 물리학은 세계를 독립된 실체와 고정된 속성의 집합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물질과 시간, 공간을 이해할 때에도 그것이 놓인 관계와 조건을 함께 살펴보게 합니다.

 

고전물리학의 세계관에서는 사물이 다른 존재와 무관하게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시간과 공간 역시 모든 존재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절대적인 배경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전제를 흔들며, 물질과 시간,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양자이론에서는 입자의 상태와 속성을 언제나 고립된 대상 안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불확정성, 중첩, 얽힘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입자의 상태를 독립적이고 고정된 속성만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강연에서 측정은 인간의 의식이 개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대상과 측정 장치가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관계로 설명됩니다.

 

상대성이론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모든 존재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절대적인 배경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중력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공간적 길이 역시 어느 기준계에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물질과 사건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절대적 무대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관계는 완성된 존재들 사이에 나중에 생기는 연결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무엇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는 그 존재가 어떤 상태와 속성으로 드러나는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관계의 세계, 철학으로 읽다

 

현대 물리학의 관계적 세계관은 독립된 실체 중심의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 이해가 삶의 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질 때 지식은 지혜가 됩니다.

 

현대 물리학의 관계론적 해석은 세계를 독립된 조각들의 집합으로만 보기보다, 사건과 존재가 연결되며 이루는 관계의 그물망으로 바라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강연에서는 입자 역시 영구적인 작은 실체라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과 반복되는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불교의 연기와 공 사상과도 철학적 접점을 가집니다. 연기는 어느 것도 다른 원인과 조건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하고, 공은 관계와 무관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본성이 없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현대 물리학과 불교가 동일한 이론은 아니지만, 세계를 고립된 실체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와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과학철학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습니다. 강연에서 지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며 행동으로 이어가는 능력으로 설명됩니다.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는 관계적 세계상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줍니다. 그 관점이 삶의 태도와 선택으로 이어질 때, 과학적 지식은 삶의 지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 지식에서 지혜로

 

AI 시대에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AI와의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는 주체성과 지식을 판단과 실천으로 연결하는 지혜입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다루고 학습과 추론을 통해 다양한 답과 선택지를 제안합니다. 인간이 지식의 양이나 검색 속도로 AI와 경쟁하기 어려워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지식을 어떤 맥락에서 판단하고 책임 있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지혜의 문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앎의 한계를 자각하는 인식적 겸손입니다. AI가 그럴듯하지만 근거가 부족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만큼, 인간은 답의 근거와 맥락을 점검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동시에 관계론적 세계관은 인간과 AI의 관계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AI가 인간의 판단과 정서, 일과 관계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만큼, 단순한 도구로만 볼 것인지 앞으로 어떤 관계와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철학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확정된 결론이라기보다, AI의 능력과 자율성이 커질수록 계속 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AI 시대의 인간다움은 AI와 거리를 두는 데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AI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도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로 남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