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과가 흔해진 사회는 좋은 사회일까?

2026. 9. 17 · 자인연구소 · 읽는 시간 13분

요즘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익숙한 장면을 마주합니다. 누군가 논란이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댓글과 비판이 쏟아집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당사자의 사과문이나 사과 영상이 올라오지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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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일반인이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과문의 내용도 엇비슷하고요. 잘못이 발생하면 사과하고, 논란이 커지면 해명하고 또 사과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과’는 매우 익숙한 공적 행동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끼친 피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한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성숙한 태도임은 분명하지요. 공동체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고요.

 

사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가 틀렸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나의 행동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행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과는 빨라졌지만,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친 것은 사과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사과가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요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반복될 때이지요. 사과 후 잠시 조용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경우가 흔해진 것입니다.

 

사과가 마치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한 의례처럼 보입니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이고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너무 많이 반복되면서 그 말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집니다.

 

사과의 ‘속도’에 지나치게 민감해졌는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얼마나 빨리 입장을 내놓는지를 중요하게 보니까요. 왜 아직 사과하지 않는지 비판하고, 사과문이 늦으면 진정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당사자 역시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요.

 

물론 신속한 사과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가 분명하고 잘못이 명확하다면 책임을 미루는 것보다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옳지요. 그러나 빠른 사과와 진정한 사과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과문의 표현과 속도, 댓글의 반응은 꼼꼼히 확인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쉽게 잊습니다. 사과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을 바꾸었는지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과는 점점 빨라지고 늘어나는데, 변화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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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부터는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고요. 감정적으로 반응한 뒤에는 너무 예민했다며 사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며칠, 몇 달이 지나면 같은 행동을 또 합니다.

 

분명 반성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요.

 

반성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반성만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낸 판단과 반응의 구조까지 바꾸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떤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과 표정을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지요.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나를 무시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해석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다시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났다면 단순히 ‘화를 냈다’는 행동만 돌아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나는 그 말을 무시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왜 그렇게 강하게 반응했는지, 그 순간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건너뛰면 우리는 행동의 결과만 반성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다음에는 화내지 말아야지.” 그러고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다시 화를 냅니다. 실수의 결과는 반성했지만, 실수를 만들어낸 자신의 반응 구조는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과의 외주화

이것은 ‘자기객관화’와 ‘메타인지’의 부재라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자기객관화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것입니다. 메타인지는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이고요.

 

우리는 타인의 비난이 있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과 자체도 그 대상이고요.

 

나는 지금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했을까. 나는 정말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비난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과의 외주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지요. 댓글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사과하고, 여론이 거세진 연후에야 고개를 숙입니다. 주변의 반응을 보고 나서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과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여론이 되는 셈이지요.

 

정작 중요한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려납니다.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조차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 채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만 사과합니다.

 

물론 타인의 지적은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다른 사람이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판단을 참고하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성숙한 사과는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되 마지막 판단은 스스로 내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밀양_포스터

영화 <밀양>에는 사과와 용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명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을 잃은 주인공은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가고, 범인은 자신이 이미 하느님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주인공은 묻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했다는 것입니까.” 이 대사는 용서가 가해자의 마음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이지, 상대방의 감정과 상처까지 대신 정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과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상대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과하는 사람이 반성뿐 아니라 사건의 종결까지 맡습니다. 사과했는데 왜 계속 문제 삼는가. 이제 그만 용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말은 피해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정리하고 용서할 것까지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용서와 감정의 정리까지 피해자에게 외주화합니다. 사과한 사람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피해자도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처의 시간은 사과의 시간과 다릅니다. 사과하는 데는 몇 분이 걸릴 수 있지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과한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느끼는 것과 상처받은 사람이 실제로 회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사과의 끝은 용서가 아니라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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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는 상대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받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수합니다. “내가 사과했으니 이제 당신도 괜찮아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과는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버립니다.

 

사과는 용서를 얻기 위한 거래가 아닙니다. 사과의 마지막을 상대의 용서로 채우려 하지 않고 자신의 변화로 채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과의 의미입니다.

 

다시, 진정한 사과는 무엇일까요.

 

먼저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응 뒤에 있는 판단과 목적을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순간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다음에는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변명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듣고, 책임을 피하고 싶을 때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국 느끼고, 깨닫고, 바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느깨바’라고 줄여서 새겨볼까요.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 뒤에 있는 판단을 깨우고, 그 결과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과를 단순한 감정 표현에서 성찰의 과정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지요.

 

공적 사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때 사과는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은 말의 길이나 표현의 정교함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행동이 사과의 의미를 증명하지요. 이제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했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과를 얼마나 빨리 했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과 이후의 시간을 지켜보는 일입니다.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실제 조치를 취했는지, 그들의 판단과 태도가 달라졌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사과를 서둘러 요구하고 서둘러 받아내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사과가 자신의 행동을 깊이 돌아보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에 대응하는 임시방편이 되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과를 요구하면서 사과를 믿지 못하고, 사과를 받아내면서 또 다른 사과를 기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를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사람에게 영원히 죄를 묻는 것도, 반대로 사과 한마디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도 아닙니다. 실수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다시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과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가 필요할 때 제대로 사과하고, 그 사과가 변화로 이어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지요.

 

사과만 너무 흔해진 시대입니다. 이제는 옳은 변화가 흔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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