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주어지는 걸까, 만들어가는 걸까?
2024년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는 미국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셰프였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켄터키와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수십 년간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어왔지요. 그런데 그는 쉰두 살이 되어 한국 무대에서 자신을 다시 소개해야 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랐고, 에드워드 리 역시 한동안 한국 문화와 거리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선명하게 답하기 어려운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국의 요리 경연에 참가했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한국어를 배우고,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한국 이름 ‘이균’을 밝혔습니다.
자신의 삶을 담은 요리를 선보이는 경연에서 그는 비빔밥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재료가 섞여 하나의 맛을 이루듯, 자신도 한국과 미국의 경험이 함께 섞인 ‘비빔 인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혼란스럽게 느꼈던 두 정체성이 한 접시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와 가치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에드워드 리가 태어난 가정과 시대는 그가 고른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살아온 경험과 한국계 이민자의 정체성도 이미 그의 안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요리 프로그램과 세계적인 한식 열풍 역시 그가 혼자 만들어낸 환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결해 세상에 내놓을지는 그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새로운 재능이 갑자기 생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축적된 요리 경험이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그는 그 만남에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응답했습니다. 주어진 자신과 다가온 세상, 그리고 둘을 연결한 현재의 선택이 새로운 삶을 만든 것입니다.
인생방정식 ‘인생=자신×세상’은 바로 이 과정을 설명합니다.
인생을 이루는 세 가지 변수
인생방정식은 인생이 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방정식의 핵심 변수는 자신, 세상, 그리고 곱하기 기호로 표현되는 상호작용입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형성된 몸과 마음, 기억과 능력, 욕망과 습관을 뜻합니다. 현재의 나는 어제까지 겪은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두려워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고 무엇에 서툰지, 사람과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는지도 대부분 지나온 경험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에는 부모와 가족, 학교와 직장, 만나는 사람, 사회의 제도와 시대의 변화처럼 나 밖에서 다가오는 조건이 포함됩니다. 어느 나라와 가정에서 태어날지, 어떤 시대를 살아갈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을지 모두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역시 수많은 원인과 관계가 쌓여 현재에 도착한 현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과 세상은 모두 과거 변수입니다. 현재의 나는 이미 지나온 경험을 통해 형성되어 있고, 지금 마주한 세상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과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현재에 도착한 자신과 세상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곱하기 기호가 의미하는 상호작용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어떤 기회와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다른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비슷한 조건에서도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행동으로 응답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능력이 뛰어나도 세상의 필요와 연결되지 않으면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도 적절한 도움과 기회, 새로운 시도를 만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리의 한국계 정체성과 미국에서 쌓은 요리 경험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한국의 요리 경연과 만나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요리로 표현했을 때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곱하기는 이미 존재하는 자신과 세상을 실제 인생으로 바꾸는 현재의 작용입니다.
과거의 자신과 주어진 세상이 만나는 현재
우리는 현재만을 살아갑니다. 과거는 기억으로 남아 있고 미래는 예상으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묻고, 듣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입니다. 현재의 선택이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다시 미래의 자신을 형성합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에서 배운 것을 사용하고 미래의 결과를 예상하되, 판단과 행동은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맞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되돌릴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결과는 직접 다룰 수 없습니다. 지금 시도할 수 있는 행동만이 다음 경험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불합격은 이미 벌어진 세상의 결과입니다. 실망과 자책이 드는 것도 지금까지 형성된 자신의 반응입니다. 이때 ‘나는 원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판결을 반복하면 과거의 결과가 다음 선택까지 결정합니다. 반면 준비가 부족했던 부분과 통제하기 어려웠던 조건을 구분하고, 공부 방법을 바꾸거나 도움을 구하면 자신과 세상이 만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다음 합격을 보장할 수는 없어도 다른 결과가 생길 가능성은 높일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리도 자신의 성장 배경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느껴온 거리감 역시 오랜 시간 쌓인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다시 배우고, 한국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요리로 표현하는 행동은 현재의 선택이었습니다. 과거의 사실은 그대로였지만, 과거와 맺는 관계가 달라지면서 다음 삶도 달라졌습니다.
관계가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인생에서 상호작용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이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혼자 형성되지 않습니다. 부모와 가족, 친구와 동료, 학교와 직장, 사회와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자신이 됩니다. 내가 내린 결정에도 과거에 만난 사람의 말과 행동, 성공과 실패의 기억, 당시의 사회적 조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인연과(因緣果)’와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어떤 원인인 인(因)이 적절한 조건인 연(緣)을 만나 결과인 과(果)로 나타난다는 설명입니다. 씨앗만으로 열매가 결정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에는 자랄 가능성이 있지만 토양과 햇빛, 물과 온도를 만나야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조건이 달라지면 같은 씨앗도 성장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사람도 타고난 조건과 과거 경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뛰어난 재능도 적절한 기회와 훈련을 만나야 능력으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힘든 경험 또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좌절로 남을 수도 있고, 새로운 판단의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관계와 기회, 그에 대한 반응이 새로운 원인이 되어 이후의 자신과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다고 상호작용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과 기회가 만나도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는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익숙한 기억에 기대어 상대를 오해하거나, 현실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좋은 조건도 활용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가 아니라 그 만남에서 무엇을 보고, 주고받고, 배웠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상호작용은 가치를 주고받는 일이다
상호작용은 자신과 세상이 서로 필요한 가치를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가족은 돌봄과 안정감을 나누고, 친구는 이해와 즐거움을 주고받습니다. 고객은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얻고, 이를 만든 사람은 보상과 다음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관계가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지속되려면 서로에게 의미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성과를 만들고, 세상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를 ‘성과=자신의 능력×세상의 욕망’이라는 관계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세상의 필요와 만나지 못하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세상이 원하는 것을 이해해도 그것을 실제 가치로 만들어낼 능력이 부족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성공은 능력과 세상의 필요가 적절한 방식으로 연결될 때 만들어집니다.

그 연결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면이 ‘일’입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가치를 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며, 타인과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제공합니다. 성과가 새로운 신뢰와 기회로 이어지면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능력도 성장합니다. 인생은 ‘기회 획득–성과 창출–더 큰 기회’가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확장됩니다.
에드워드 리는 미국에서 쌓아온 요리 능력에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담아 세상에 제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음식에서 새로운 맛과 함께 서로 다른 문화가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가 제공한 가치는 다시 새로운 관계와 기회로 돌아왔습니다. 상호작용은 이미 가진 능력을 드러내면서, 나에게 없던 가능성을 세상으로부터 얻는 과정입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만의 인생방정식을 찾으려면 지금 자신과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과거에 겪은 실패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미리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익숙한 판단으로 상대와 상황을 단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진 능력이 실제로 필요한 곳과 연결되어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때 세 가지를 구분하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해집니다.
먼저 이미 일어난 일과 현재 주어진 조건을 사실대로 확인합니다. ‘시험에 떨어졌는지, 상대가 어떤 말을 했는지, 시장의 요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와 같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봅니다.
다음으로 그 사실을 해석하는 데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살핍니다. 가령 ‘한 번의 실패를 능력 전체에 대한 판결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과거의 갈등 때문에 상대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단정하고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바꿀 수 있는 반응을 한 가지 정합니다. ‘상대의 말을 다시 확인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 작은 시도로 가능성을 검증하는’ 식입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현재의 관계를 실제로 바꾸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인생방정식은 모든 조건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과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을 구분하게 합니다. 이 구분이 선명해야 바꿀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 지점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인생은 주어지는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과 세상에는 내가 고르지 못한 과거가 들어 있지만, 둘이 만나는 방식은 매 순간 새롭게 열립니다. 에드워드 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문화 가운데 하나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두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해 세상에 내놓을지를 선택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도 새로운 관계 속에 놓이면 다른 의미와 가능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삶의 주체성은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능력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상호작용을 포기하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판단과 행동은 새로운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내일의 자신과 세상에 다시 들어갑니다.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인생방정식을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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