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산책 다시보기

이기적 유전자, 그 너머 공존의 길

일시
2025년 9월 27일 13:30~15:30
장소
마이다스그룹 본사, 2층 컨퍼런스홀

연사 소개

  • 최정균 교수 프로필 사진2

    최정균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KAIST 생명과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 과정 중 국내 연구기관에 파견되어 생물정보학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이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습니다. 인간 유전체의 비암호화(non-coding) 영역과 오믹스 빅데이터를 기계학습으로 분석해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과 암 돌연변이를 규명하는 계산생물학·바이오인포매틱스 연구를 이끌고 있으며, 2017년 아산의학상 젊은의학자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저서로 『유전자 지배 사회』, 『보수 본능』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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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균 교수 - 생각산책 현장

“사랑과 혐오, 능력과 경쟁까지 유전자의 영향 아래 있다면,
인간은 그 본능을 넘어 어떤 사회와 미래를 만들어야 할까요?”

 

인간의 사랑과 혐오에는 생존과 번식 과정에서 진화한 본능이 작동합니다. 혈연을 향한 사랑은 자녀에게 자원을 집중하게 하고, 위험을 피하려는 두려움은 낯선 사람에 대한 혐오와 배척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투자하고 위험을 피하도록 이끈 본능이 오늘날에는 교육 경쟁과 사회적 차별을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작동 원리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모든 행동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경제와 정치로 확장됩니다. 과시적 소비와 자원 확보 경쟁을 번식 경쟁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성공을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는 능력주의가 사회적 조건과 타고난 재능의 영향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정치에서도 생존의 위협과 번식 경쟁에 대응해 형성된 본능이 보수와 진보, 자유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본능을 사회의 정당한 기준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가입니다. 질병과 노화에 대한 논의는 이 질문을 자연 자체로 넓히며, 자연의 질서가 반드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자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질서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본능이 낳는 편견과 불공정을 성찰하고, 의학과 기술로 자연의 제약을 줄이며,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유전자 설계 기술로 생명의 조건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어떤 기준으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유전자의 영향을 인식하는 일은 그 영향에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정을 기준으로 인간과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강연 목차


01 사랑과 혐오, 관계 속에 숨은 본능
  • 유전자가 부추기는 사랑과 부모·자식의 갈등
  • 가족 중심의 사랑이 불러온 교육 경쟁
  • 위험을 피하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혐오와 차별

02 우리는 능력과 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 성공을 개인의 능력으로 돌리는 내재성 휴리스틱
  • 번식 경쟁에서 비롯된 값비싼 신호와 과시적 소비
  • 자원의 선점과 타고난 능력이 만드는 불평등

03 본능과 자연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 생존의 위협과 번식 경쟁으로 살펴본 보수와 진보
  •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에 담긴 서로 다른 전제
  • 질병과 노화를 통해 드러나는 자연의 가혹한 조건

04 자연을 넘어,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제약을 줄여가는 인간
  • 공정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존엄
  • AI와 유전자 설계 시대에 인간이 내려야 할 선택

 

 

1. 사랑과 혐오, 관계 속에 숨은 본능

사랑과 혐오에는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 작동합니다. 사랑을 무조건 고귀하게 여기거나 혐오를 본능적 반응으로 정당화하면, 교육 경쟁과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결과를 놓칠 수 있습니다.

연인 간 사랑과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고귀한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려는 번식 본능과 연결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는 행동도 자녀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생물학적 작동의 한 모습입니다. 어머니와 태아 사이에서도 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이후의 출산도 고려해야 하지만, 태아에게는 자신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자기 자녀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면 사회적 경쟁도 심해질 수 있습니다. 내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과 기회를 주려는 노력은 사교육과 입시 경쟁을 키우고, 양육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을 높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모여 오히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관심과 자원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집중될수록 공동체와 공적 영역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혐오의 바탕에는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이 놓여 있습니다. 오염된 음식이나 배설물, 질병의 징후를 빠르게 피하게 하는 행동 면역계는 생존에 유리했지만, 그 반응이 사람을 향하면 편견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낯선 외모와 문화, 특정 집단을 위험의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생존을 위한 두려움이 혐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시기 아시아인을 감염의 위험과 연결해 배척했던 사례는 이러한 반응이 사회적 차별로 번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혐오의 생물학적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감정의 가치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본능이 어떤 조건에서 경쟁과 차별로 이어지는지 알아야 그 영향을 성찰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능력과 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성공과 부를 개인에게 내재한 능력의 결과로만 보면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과 타고난 재능의 영향을 놓치기 쉽습니다. 자원의 선점과 능력에 따른 보상을 살피면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정당성을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는 유명한 작품을 보면 작품 자체가 뛰어나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고, 성공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어떤 결과의 이유를 대상 자체의 특성에서 먼저 찾는 사고의 지름길을 ‘내재성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명성에는 우연한 사건과 시대적 환경이, 기업가의 성공에는 공교육과 축적된 기술, 사회 기반시설이 함께 작용합니다. 성공을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면,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과 기여를 놓치게 됩니다.

 

경제 활동에서 나타나는 과시와 경쟁은 동물의 번식 경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 생존에 부담이 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만큼 건강하고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특징을 ‘값비싼 신호’라고 합니다. 인간 사회의 고가 자동차 소비와 학위 취득도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드러내는 신호로 설명됩니다. 이러한 경쟁에서는 필요한 만큼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이어집니다.

 

경쟁에서 얻은 부와 지위에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먼저 차지한 자원과 물려받은 조건도 작용합니다. 토지의 가격이 공동체의 개발로 오르면, 소유자는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은 가치 상승의 이익을 얻습니다. 성공의 근거로 여기는 타고난 재능 역시 온전히 개인의 공로는 아닙니다. 그 바탕인 유전자는 부모와 오랜 세대를 거쳐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원의 선점과 타고난 능력을 모두 개인의 공로로 받아들이면, 그에 따른 보상과 불평등도 당연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유전자를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타고난 재능이 만들어낸 성과를 함께 나누고 질병과 장애의 부담도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이는 모든 보상을 똑같이 하자는 뜻이 아니라, 노력과 노동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불평등을 줄이자는 주장입니다.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는 일과 성공을 오직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일은 다릅니다. 능력과 부를 만든 사회적 조건까지 볼 때 보상과 분배의 공정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3. 본능과 자연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사회적 보수와 경제적 보수는 각각 생존의 위협과 번식 경쟁에 대응해 형성된 본능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과 자연의 질서가 인간 사회의 정당한 기준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보수적인 사고의 바탕에는 살아남고 번식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놓여 있습니다. 사회적 보수는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와 관습, 권위를 중시합니다. 경제적 보수는 세상을 경쟁의 장으로 바라보며,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은 부와 지위를 얻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본능은 인간에게 공통되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과 강도는 신체적 조건과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노화로 위협을 더 크게 느끼거나 경제적 경쟁이 심해지는 환경은 각각의 보수적 반응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구분해야 합니다. 절대왕정과 봉건적 권위로부터 쟁취한 시민의 자유와, 오늘날 자원을 가진 사람과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토지와 생산 수단을 선점한 사람이 그 소유를 근거로 이익을 얻는 행위를 자유로 정당화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와 불공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유라는 이름만으로 이러한 결과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건강과 장수를 보장하는 질서가 아닙니다. 위험하고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살아남아 번식하는 데 유리한 유전자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몸 안에는 DNA 오류를 복구하는 체계가 있지만, 번식기를 지나면 이를 유지하는 진화적 압력은 약해집니다.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섭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된 생물학적 조건으로 이해하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본능과 자연은 인간이 출발한 조건이지만, 우리가 따라야 할 사회의 기준까지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할수록 본능이 만든 경쟁과 불공정을 성찰하고 다른 선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4. 자연을 넘어,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자연의 질서는 인간이 그대로 따라야 할 당위가 아니며, 인간은 질병과 불공정을 줄이는 방향으로 자신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명의 조건까지 설계하게 된 시대에는 공정을 창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 자연을 인간이 따라야 할 완전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자연은 생명을 탄생시켰지만 질병과 노화, 고통과 죽음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의학과 과학기술을 통해 이러한 제약을 줄이고 자연이 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자연의 작동 방식을 아는 일은 그 질서에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조건을 바꾸고 어떤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성서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공의는 착취와 혐오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기준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경쟁과 불평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갈 주체입니다. 이 관점에서 존엄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서로를 공정하게 대하기 위해 형성하는 신념입니다. 공정이 존엄보다 앞서며, 존엄이라는 이름으로 공정을 위배해서는 안 됩니다.

 

AI를 이용한 유전자 서열 설계와 인간 유전체 합성 연구는 인간이 생명의 조건을 직접 만들어갈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현실화되면 인간이 유전정보를 설계한 새로운 생명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기술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인간이 어떤 가치와 목적을 입력할 것인가입니다. 인류가 겪어온 부조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공정을 창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존엄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속성이라기보다 서로를 공정하게 대하기 위해 세운 신념입니다. 생명을 설계할 가능성까지 열린 시대에는 과거의 착취와 차별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공정을 창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