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산책 다시보기

협력의 비법

일시
2021년 2월 27일 13:30~15:30
장소
마이다스그룹 본사, 2층 컨퍼런스홀

연사 소개

  • thinking-walk-jeon-joonghwan-v2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행동생태학으로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진화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섭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진화심리학이며, 가족 간 협동과 갈등, 혐오와 같은 감정의 진화적 기원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오래된 연장통』, 『본성이 답이다』 등이 있으며, 『욕망의 진화』, 『적응과 자연선택』 등을 번역하였습니다.

“왜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알아도 무임승차가 생기며,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가?”

 

함께 노력하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알아도 무임승차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로등 설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밝은 길을 이용할 수 있듯, 공동의 이익과 개인의 선택은 어긋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설득하는 것만으로 협력을 이끌기 어려운 까닭을 살펴봅니다.

 

인간은 특정한 조건에서 협력하는 조건적인 협력자로 진화했습니다. 반복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직접 상호성에서는 상호이득과 배신의 위험이 함께 나타납니다. 직접 되갚음을 기대할 수 없는 도움은 평판에 기반한 간접 상호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기꾼 기억 연구와 관찰 단서 실험은 이러한 설명을 살펴보는 근거가 됩니다.

 

협력을 이끌려면 협력한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지도록 하고, 다른 사람의 참여 정보를 보여주며, 불참에는 명시적인 거부가 필요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선행을 곧바로 평판을 얻으려는 계산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협력의 진화적 기능과 개인의 의도를 구분하면서, 협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연 목차


01 협력의 필요성을 알아도 왜 무임승차하는가
  • 도덕적 앎과 행동의 차이
  • 공동의 이익과 개인의 비용 회피
  • 진화적 설명의 의미와 기능·의도의 구분

02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 작은 비용·큰 편익과 역할 교대
  • 사기꾼 문제와 조건적인 도움
  • 사기꾼 탐지·기억과 도덕적 분노

03 되갚음을 기대할 수 없어도 왜 돕는가
  • 직접 상호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움
  • 평판과 제3자를 통한 협력 관계
  • 관찰 단서와 조건적인 협력

04 협력을 이끄는 환경은 어떻게 만드는가
  • 관찰가능성을 높이는 현장 관찰과 사후 공개
  • 이미 이루어진 협력과 참여 정보
  • 요청 회피·명시적 거부와 선행자의 믿음

 

 

1. 협력의 필요성을 알아도 왜 무임승차하는가

협력의 필요성을 아는 것과 실제로 협력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간을 조건적인 협력자로 이해하려면 행동의 진화적 기능과 개인의 의도를 구분해야 합니다.

가로등 설치에 비용을 내지 않아도 밝은 귀갓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어도 집단 안에서는 비용을 피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지식도 행동을 자동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기부에 관한 비교 연구에서 윤리학자들은 다른 철학자나 일반인보다 마땅히 기부해야 할 비율을 높게 제시했지만, 실제 기부 비율에 대한 답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협력을 이해하려면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묻는 근접 설명과 왜 그런 심리가 진화했는지를 묻는 궁극 설명을 구분해야 합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나 뇌의 보상 중추는 행동이 작동하는 가까운 원인입니다. 왜 당이 풍부한 음식을 좋아하는 체계가 생겼는지는 진화적 설명의 질문입니다. 수렵·채집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풀도록 형성된 마음이라는 관점이 그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진화적 기능이 개인의 의도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행동이 유전자 전달에 기여했다고 해서 부모가 그것을 계산하며 아이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항상 협력하는 천사도, 항상 배신하는 악마도 아닙니다. 특정한 조건에서 협력을 선택하는 인간을 이해하려면 선한 의도를 호소하는 것과 행동의 조건을 살피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협력이 부족한 이유를 구성원의 의식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을까요? 무엇을 아는지와 어떤 조건에서 행동하는지를 구분하면 문제를 보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2.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반복해서 도움을 주고받으면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도움을 받고도 갚지 않는 상대를 구별하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직접 상호성은 같은 상대와 시간 간격을 두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도움을 주는 비용보다 상대가 얻는 편익이 크고,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역할이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사냥에 성공한 사람이 남은 고기를 나누고, 다음에는 상대가 고기를 나누면 각자 적은 비용으로 큰 도움을 얻습니다. 비용을 c, 편익을 b라고 하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뒤에는 b−c의 순이득이 남습니다.

 

문제는 도움을 받은 뒤 갚지 않는 편이 상대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우나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도움만 받고 떠나면, 남은 사람만 비용을 부담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돕는 대신 상대가 도움을 되갚는지에 따라 다음 행동을 달리하는 조건적인 협력 전략이 중요해집니다.

 

한 얼굴 기억 실험에서는 얼굴 사진에 선행·중립·사기꾼에 관한 소개글을 붙여 보여준 뒤, 일주일 후 새로운 사진과 섞어 기억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사기꾼으로 소개된 얼굴을 다른 얼굴보다 더 잘 찾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도움을 받고도 갚지 않는 상대를 민감하게 구별하는 심리적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배신에 대한 도덕적 분노도 이러한 직접 상호성의 설명과 연결됩니다.

 

배신에 느끼는 분노를 도움의 상호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상대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행동에 우리가 민감한 까닭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3. 되갚음을 기대할 수 없어도 왜 돕는가

도움을 받은 상대가 직접 되갚지 않아도 협력은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운 이력이 평판으로 알려지면 제3자와 도움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산불 피해자를 위해 성금을 내는 사람은 피해자가 자신을 찾아내 같은 도움을 갚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대칭적이고 일회적인 도움은 같은 상대와의 반복적인 교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평판에 기반한 간접 상호성입니다.

 

평판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특징을 지녔으리라고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실제 성향 자체와는 구별됩니다. A가 B를 돕는 모습을 C가 보고 A를 좋은 협력 상대로 판단하면, C가 먼저 A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직접 상호성에서 중요한 것이 ‘네가 나를 도왔는가’라면, 간접 상호성에서는 ‘네가 다른 사람을 도왔는가’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과 나중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휴게실 실험에서는 자율적으로 커피값을 내는 무인지불함 주변에 눈 그림이나 꽃 그림을 붙였습니다. 눈 그림을 붙인 주간에는 꽃 그림을 붙인 주간보다 더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이 결과는 평판과 관련된 관찰 단서에 반응하는 심리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협력은 추상적인 선의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드러나는 조건과도 연결됩니다.

 

평판을 통해 선행의 기능을 설명한다고 해서 선행자의 진심까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와 그 사람의 마음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협력을 이끄는 환경은 어떻게 만드는가

협력한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고 다른 사람의 참여가 보이며, 불참하려면 명시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조건이 협력을 이끌 수 있습니다.

첫째, 협력한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에어컨 사용을 조절하는 공익사업에서 이름과 주소를 공개해 신청한 집단은 전화로 신청해 참여자가 드러나지 않은 집단보다 참여가 많았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장기기증 의사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도록 했을 때도 참여가 늘었습니다. 협력할 당시뿐 아니라 나중에 그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둘째, 이미 이루어진 협력을 알려야 합니다. 호텔의 수건 재사용 연구에서는 환경보호를 호소하는 안내에 ‘고객의 75%가 수건을 재사용했다’는 정보를 더했을 때 참여가 높아졌습니다. 바로 그 방에 묵은 고객의 참여 정보는 더 큰 효과를 보였습니다. 과반수가 아니어도 먼저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알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무단 투기 사진처럼 배신이 흔하다는 정보를 보여주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셋째, 도움 요청을 몰랐다고 피해 갈 여지를 줄여야 합니다. 장기기증 의사를 묻는 형식에서 동의가 기본이고 거부하려면 체크를 지워야 하는 경우는, 원하는 사람만 체크하는 경우보다 동의 정도가 높았습니다. 요청을 피하는 것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것에 따르는 평판 부담의 차이에 주목한 방식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좋은 일이어서 했다’는 당사자의 믿음을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선행을 대신 알려주되, 협력자가 낯 뜨거운 자기 자랑을 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선행을 알리는 일과 선행자의 동기를 평가하는 일은 다릅니다. 협력한 사람이 낯 뜨거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 행동이 알려질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