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칼럼
왜 같은 세상을 만나도 다른 인생을 살까?
인생 칼럼
왜 같은 세상을 만나도 다른 인생을 살까?
음식이 식탁에 놓이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춥니다. 감사 기도 때문이 아닙니다. 어른이 먼저 수저 들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스마트폰부터 꺼냅니다. 먹기보다 찍는 것이 먼저이고, 예의이니까요. 사진 촬영이 끝나야 비로소 어른도 수저를 듭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갑니다. 불꽃놀이를 보는 것보다 불꽃놀이를 담는 게 더 급하고요. 친구가 넘어져도 스마트폰에 먼저 손이 갑니다. 미모의 연예인이 지나가도, 끔찍한 바퀴벌레가 나타나도 카메라부터 켭니다.
이제는 음식의 맛보다 보여줄 만한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 듯합니다. 무엇이든 기록과 저장과 인증이 먼저이니, 날것의 감응보다 카메라 버튼 누르기가 앞섭니다. 놀라기도 전에 찍고, 웃기도 전에 찍고, 울기도 전에 찍지요.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은 원래 각양각색이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모두 비슷합니다. 모르지요, 찍기가 새롭게 등장한 현대인의 생존 본능일지도.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사진을 찍는데도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결국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기억을 남기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지요.
사진부터 찍는 반응이야 닮았지만, 결과는 닮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진은 어떤 이에게는 추억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기록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그저 곧 지워질 파일 하나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맞닥뜨린 세상은 같아도, 그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결과는 모두 다릅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세상을 만나는데도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될까요?
인생은 나 혼자 만들어가는 것도, 세상이 혼자 돌며 만들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자신과 세상이 함께 써 내려가는 ‘관계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도, 기회도, 정보도, 행복도 모두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지요. 관계는 ‘인생의 조건’입니다.
인생 = 자신 X 세상
이것은 계산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관계식’입니다. 미리 사진을 찍어두어도 좋을 법합니다. 자신과 세상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같은 세상에서도 전혀 다른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주어질지 몰라도,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지는 순간 인생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건 지어진 모든 건 변하고, 조건이 변하면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세상은 이처럼 ‘관계’로 움직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존재의 가치와 의미는 혼자 저절로 완성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열쇠는 자물쇠를 만나야 열쇠가 됩니다. 스마트폰도 배터리와 연결되어야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껏 '먹스타그램'도 할 수 있겠지요.
음식도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좋은 사람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서로의 이름과 관계의 이름을 불러가며 오손도손 먹는 식사는 얼마나 맛있나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누군가 불러줘야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때로는 이름값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고요.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요.

자연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씨앗 하나도 혼자서는 꽃이 되지 못합니다. 씨앗 안에 생명력이 있어도 흙과 물과 햇빛을 만나야 꽃이 됩니다. 예쁘게 피어난 꽃은 좋은 씨앗 하나의 결과도, 좋은 환경 하나의 결과도 아닌 겁니다. 씨앗과 환경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이지요. 인과가 분명하니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고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緣起)’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꽃은 봄과 햇빛과 벌과 흙이 함께 피워낸 것이고, 한 사람의 인생도 가족과 친구와 시대와 수많은 만남이 함께 빚어냅니다.
어쩐지 양자역학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계를 단단한 물질의 집합이 아닌, ‘관계의 그물망’으로 바라보지요. 세계는 물질이 아니라 관계로 구성되고, 관계가 실체를 만든다는 겁니다. 존재는 혼자이거나 고정된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다는 것이고요. 끊임없는 ‘관계의 업데이트’라고 할까요!
그래서 양자역학 세계 속에서는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상태가 연결됩니다. 관측되기 전까지 하나의 상태가 아닌 여러 가능성이 겹쳐 있는 상태이고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불확실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호하기 짝이 없지요.
이 ‘모호’라는 말도 제법 재밌습니다. ‘법 모[模]’와 ‘풀 호[糊]’를 그대로 해석하면 풀처럼 번져 흐려진 상태, 즉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인도의 가장 작은 소수 단위에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너무 작은 크기라 알 수 없다는 뜻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마치 양자역학에서 들여다보는 미시의 세계처럼 말입니다. 양자역학과 불교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요.
다시, 관계식으로 돌아갑니다.
인생 = 자신 X 세상
‘자신’은 과거형입니다. 지금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니까요. 살아오며 쌓인 경험과 기억, 반복된 습관, 익숙한 감정 반응이 현재의 나를 이룹니다. 따라서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비난으로 받아들입니다. 같은 실패를 겪어도 누군가는 배움을 얻고, 누군가는 상처를 남기고요. 과거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의 해석 속에 머무는 겁니다.
‘세상’은 수동태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주어진 게 아니라 나에게 다가오고 주어지고 맡겨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모를 만날지, 어떤 시대에 태어날지, 어떤 조직과 사람을 만나게 될지는 대부분 개인의 의지 밖에서 찾아옵니다. 가족, 친구, 동료, 조직, 제도, 시대, 기회와 사건은 그렇게 우리 앞에 놓이는 세상입니다.
자신과 세상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과거의 나를 바꿀 수 없고, 만나는 세상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만난 세상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어떤 행동으로 응답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관계식의 ‘곱하기(X)’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바로 ‘상호작용’ 말입니다.
우리 인생을 관계와 상호작용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지 위에서 시작되지 않지요. 과거의 영향을 받는 자신과, 뜻대로 고를 수 없는 세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새롭게 펼쳐집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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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성공으로 인생 전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일 하나를 잘 끝냈다고 언제나 탁월한 사람인 게 아니고, 평가 한 번에서 밀렸다고 부족한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어떤 성과는 역할과 때를 잘 만난 결과이고, 어떤 실패는 무능력이 아닌 변수 때문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다음에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과거의 결과이지 끝이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를 설명하지만, 미래까지 결정하진 못하는 것이지요.
세상의 본질은 ‘관계’입니다.
세상은 나의 길을 바꾸고, 나의 선택은 다시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바꿉니다. 인생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만난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인생은 닫힌 운명이 아니라 항상 열려 있는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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