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기는 리더와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이번 경쟁사 분석 프로젝트는 김 대리가 맡아주세요.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세부적인 방법은 알아서 해보고요.”
리더는 중요한 일을 맡겼고 자율성도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 대리는 일을 선뜻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결정도 계속 확인받으려 했고, 일주일 뒤 가져온 보고서에는 경쟁사의 기능과 가격만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원한 건 이런 자료가 아닌데요. 어떤 경쟁사에 대응해야 하는지 결론이 있어야죠.”
리더는 답답한 마음에 보고서를 직접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김 대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김 대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왜 이 조사를 하는지,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보는지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알아서 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지도 알 수 없었고요. 리더에게는 성장 기회였지만, 김 대리에게는 실패하면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던 겁니다.
조직에서 위임이 실패하는 장면은 대개 이와 비슷합니다. 리더는 일을 맡겼다고 생각하지만 구성원은 목적과 기준 없이 결과만 요구받았다고 느낍니다. 리더는 자율성을 주었다고 여기지만 구성원은 어디까지 결정해도 되는지 몰라 리더의 눈치를 봅니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리더는 결국 일을 다시 가져옵니다. 직접 처리하는 편이 더 빠르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리더는 “맡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구성원은 “어차피 마지막에는 리더가 고친다”고 학습합니다. 리더가 일을 가져올수록 구성원이 판단하고 배울 기회는 줄어들고, 구성원이 성장하지 못할수록 리더는 더 많은 일을 떠안게 됩니다.
일과 책임은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까지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구성원이 움직이려면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노력하면 해낼 가능성이 있는지,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맡기는 리더와 움직이게 하는 리더의 차이가 생깁니다. 맡기는 리더는 업무와 책임을 전달합니다.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구성원이 그 일을 자기 과제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판단으로 실행해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조건까지 마련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일에 사람을 맞추기보다, 그 일이 누구에게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일을 맡기기 전에 사람을 본다
리더는 일이 생기면 먼저 누가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살핍니다. 업무량과 역량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여기에 구성원의 욕망과 성장 방향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 일이 누구에게 의미 있는 가치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성취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장하고 싶으며, 의미 있는 일에 기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다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때 의욕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문성을 쌓거나 더 큰 책임을 맡을 기회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지요.
리더가 구성원의 욕망을 뜻대로 만들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 안에 형성되어 있는 욕망을 적절한 역할과 기회에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동기는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있고, 노력하면 그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예상할 때 생깁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선뜻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도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면 지시받은 만큼만 하게 됩니다.
따라서 위임할 사람을 정할 때는 업무를 처리할 능력과 함께 그 사람의 관심, 강점, 성장 방향을 살펴야 합니다. 현재 역량보다 조금 어렵지만 적절한 지원이 있으면 해낼 수 있는 과제를 연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는 것이 좋은 위임의 시작입니다.
일의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쟁사 자료를 조사해서 다음 주까지 보고해 주세요.”
이 지시에는 해야 할 일과 기한만 들어 있습니다. 왜 조사하는지, 무엇을 중심으로 비교해야 하는지, 그 결과가 어디에 사용되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구성원이 자료를 많이 모으는 데 집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움직이게 하는 리더의 설명은 조금 다릅니다.
“다음 분기 제품 전략에서 무엇을 먼저 개선할지 결정하려고 합니다. 주요 경쟁사 세 곳을 고객가치와 가격, 핵심 기능을 기준으로 비교하고, 우리가 먼저 대응해야 할 한 가지를 제안해 주세요. 김 대리가 고객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찾아내는 강점이 있어 이 일을 맡기려 합니다. 이번 주에는 비교 기준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이 설명을 들으면 구성원은 조직이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보는지, 왜 자신에게 맡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고요.
일의 의미를 설명한다는 것은 회사의 비전이나 목표를 길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맡은 일이 어떤 결정과 결과에 쓰이는지,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무엇을 배우고 얻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겁니다.
목표는 도전적이어도 첫 행동은 분명해야 합니다. 비교할 경쟁사를 정하고 분석 기준부터 세우는 것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는지 보여주어야 하지요.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해낼 가능성이 함께 보일 때 구성원은 일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목적과 기준, 권한을 함께 맡긴다
일의 가치를 이해했다고 해서 구성원이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은 주면서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으면 구성원은 리더의 생각을 맞히는 데 집중합니다. 반대로 충분한 설명 없이 자율성만 주면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지 몰라 불안해하고요.
좋은 위임에는 목적과 기준, 권한이 함께 주어져야 합니다. 목적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기준은 무엇을 좋은 결과로 판단할지 알려줍니다. 권한은 그 목적과 기준 안에서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고 수정할 수 있게 하지요.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를 ‘통제가 아니라 맥락(Context, Not Control)’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을 구성원에게 부여한 ‘자유’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구성원에게 제공한 것은 자유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어디로 향하는지,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공유했습니다.
구성원에게는 충분한 재량이 주어졌지만 모든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과 리더와 상의해야 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도 분명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자유는 방임이 아니라 충분한 맥락 안에서 작동하는 자율성이었던 겁니다. 목적과 판단 기준을 공유했기 때문에 리더가 일일이 통제하지 않아도 구성원이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요.
군사 분야에서 발전한 ‘임무형 지휘(Mission Command)’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상급자는 행동 하나하나를 명령하기보다 임무의 목적과 지휘관의 의도를 공유합니다. 현장 상황이 계획과 다르게 전개되더라도 목적을 이해한 사람은 그에 맞춰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에서도 좋은 코치는 “더 열심히 뛰어라”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공간을 공략해야 하는지,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각자의 움직임이 팀 전술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선수는 코치의 의도를 이해할 때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 상황에 맞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위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리더와 협의해야 하는 사항, 즉시 보고해야 하는 위험도 구분해야 하지요. 그 범위 안에서는 구성원이 직접 판단하도록 맡겨야 합니다.
권한 없는 책임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맥락 없는 자유도 자율적인 판단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구성원이 일의 목적과 판단 기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위임받은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입니다.
추적하되 답을 빼앗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을 맡긴 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실행 과정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필요한 정보가 늦게 들어오고, 다른 부서와 협조가 되지 않으며, 처음 세운 가설이 틀리기도 하지요.
이런 문제가 계속되면 구성원은 성공 가능성을 낮게 판단합니다. 노력해도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끼면 처음에 생긴 동기도 약해집니다. 위임 이후의 사후관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다만 “다 됐나요?”라고 재촉하는 것과 “지금 막히는 부분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은 전혀 다른 개입입니다. 전자는 진척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고, 후자는 실행을 돕기 위한 질문이지요.
리더는 목표와 현재 결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처음 예상과 달라진 조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구성원이 다음에 시도하려는 방법이 적절한지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하고, 구성원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조직적 장애는 제거해주어야 하고요.
이때 리더가 답을 대신 정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구성원이 현재 결과를 해석하고 다음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리더가 판단과 실행을 대신하면 당장의 결과물은 빨리 완성될 수 있지만, 구성원이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법을 배울 기회는 사라집니다.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결과를 대신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끝까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마련합니다.
성공경험이 다음 동기를 강화한다
앞의 김 대리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리더는 보고서를 직접 고치는 대신 프로젝트의 목적과 판단 기준을 다시 설명하고, 조사 방법은 김 대리가 정하도록 했습니다. 김 대리는 고객 인터뷰를 추가해 분석 방향을 기능 중심에서 고객 문제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경쟁사의 기능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제품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리더는 결과를 칭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판단과 행동이 결과를 바꾸었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기능과 가격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객의 선택 이유를 확인한 것이 좋았습니다. 조사 방향을 바꾼 덕분에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피드백을 통해 김 대리는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결과를 개선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것이 ‘성공경험’입니다. 성공경험은 좋은 결과를 얻은 기억이 아니라, 자신이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고 실행해 결과를 바꾼 경험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높입니다. 자기효능감은 막연히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아니라, 특정한 과제에 필요한 행동을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으면 다음에 비슷한 과제를 만났을 때도 필요한 행동을 해낼 수 있다고 예상하게 됩니다.
사람은 원하는 결과에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노력하면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예상할 때 움직입니다. 성공경험은 이 가운데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과제를 시작하기가 쉬워지고, 어려움이 생겨도 방법을 바꾸며 시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성공경험이 다음 동기를 강화하는 이유입니다.
뇌도 예상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학습에 활용합니다.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와 관련된 행동의 가치를 높게 학습합니다. 다만 무엇이 결과를 바꾸었는지 정확히 알려면 구체적인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실패했더라도 원인을 찾고 방법을 수정해 결과를 개선했다면, 그 전체 과정 역시 성공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결정까지 확인받던 구성원도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자신의 실행안을 제안하고,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 스스로 방법을 수정하게 됩니다. 위임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입니다.
사람을 남기는 위임
위임의 성패는 일을 건넨 순간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그 일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발견하면 동기가 생깁니다. 목적과 판단 기준을 이해하고 필요한 권한을 가지면 자신의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리더가 진행 과정을 살피고 장애를 해결해주면 어려움 속에서도 시도를 이어갈 수 있고요. 시행착오를 수정해 성과를 만든 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다음 도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키웁니다.
맡기는 리더는 구성원에게 일을 줍니다.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구성원이 그 일을 해내고 싶게 하고, 해낼 수 있게 하며, 끝까지 해내도록 돕습니다.
리더가 모든 답을 알려주면 이번 일은 빨리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성원이 답을 찾을 기회는 사라집니다. 반대로 책임만 맡기고 손을 놓으면 구성원은 실패에 대한 불안 속에서 지시를 기다리게 됩니다.
좋은 위임은 조직 안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리더 혼자 판단하는 조직은 리더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성원이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자신의 행동으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조직은 더 많은 일을 더 높은 수준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맡기는 리더는 일을 전달합니다.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일의 의미와 판단의 기준을 전달하고, 구성원이 자신의 힘으로 성과를 만드는 경험까지 책임집니다.
결국 리더가 남겨야 할 것은 처리된 업무만이 아닙니다. 다음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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