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왜 ‘사람’에게서 답을 찾아야 할까?

내가 꽃을 좋아해서 사무실에 화분이 여럿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말도 걸어주고 눈도 맞추며 살뜰히 보듬는데도 꽃을 잘 피우지 못한다. 좁은 실내에서 키우다 보니 공기와 바람과 햇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더러는 내가 사랑을 더 내어주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아무리 정성을 기울인들 자연의 넓디넓은 품을 어찌 따라가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에는 꽃을 피우지 못했던 동백이 올해는 작은 망울 하나를 겨우 내밀었다. 꽃을 피울 조건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영차영차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처롭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때문에 고집이 세다. 주변 환경 변화에 동물만큼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식물도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과 열심히 상호작용을 한다. 바람에 실어 꽃씨를 나르기도 하고,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기도 한다.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그 사실을 멀리 떨어진 잎에 전달하고, 애벌레가 싫어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어떻게든 내면의 욕망을 꽃으로 피워낸다. 그것이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욕망을 피워내며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다.

 

 

 

 

꽃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주어진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욕망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며 살아갈 순 없다. 숨 쉴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일할 수 없으며, 행복할 수도 없다. 모든 존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 욕망을 실현하고 행복을 얻는다. 관계가 행복이며, 행복은 관계이다.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결이 이러한데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분열과 분쟁으로 가득 차 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든 할 것 없이 모두가 서로 오해하고 반목하고 혐오하고 배척한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불행하다. 자기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해지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이 관계가 행복이고 행복이 관계임을 알 리가 없다. 비교와 평가를 통해서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획득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세상은 매일매일 경쟁해야 하는 전쟁터이지 각자의 결대로 상호작용하며 각자의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정원일 수가 없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 씨앗을 품고 태어나는데 그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 채 시들해진다.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서로 따뜻하게 손잡고 세상에 열심히 반응하며 각자의 꽃을 피워내면 된다. 생물의 결의에 동물의 결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인간의 결을 얹으며 진화해 온 우리는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생명력이 충분히 있다.

 

우리가 사람의 본질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결에 맞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삶을 살아내고 꽃을 피우는 주체는 ‘나’이다. 나를 알아야 나의 결대로 꽃피울 수 있지 않겠는가.

 

기업 경영자가 왜 돈 버는 일이 아닌 사람의 본질에 그리 천착하느냐고 묻는다. 그 답은 단순 명료하다. 사람의 본질을 알아야 구성원들이 각자의 결에 맞게 잘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자에게 돈 버는 일과 사람 키우는 일은 별개일 수가 없다.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다. 기업에서 효용을 생산하는 주체도, 시장에서 그 효용을 평가하고 구매하는 주체도 결국에는 사람이 기 때문이다. 경영의 핵심은 사람이고, 목적은 육성이다. 사람의 본질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열쇠가 된다. 비단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을 경영하는 부모, 학교를 경영하는 교사,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을 비롯해 각자의 삶을 경영하는 개개인 모두가 사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각자의 경영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구성원과 조직 전체의 행복 총량을 늘려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서 조직을 경영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다. 자녀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끊임없이 해대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 아니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좋은 대학 나와서 돈 많이 버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에 다가갈 수 없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흔이 되어서야 회사를 창업하고 구성원들을 대표해 경영을 맡게 되었다. 줄곧 기술자로 일해온 터라 경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서점을 찾아 경영 관련 책들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영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사람에 대해 탐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심리학을 공부했고, 마음의 원천이 뇌이므로 신경과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뇌는 존속 추구라는 생물학적 목적에 종속되므로 생물학으로 연구가 이어졌고, 생명은 원자와 분자로 구성된 유기물질로부터 출발했으므로 분자생물학으로 들어가서 결국 생명과 물질의 본질과 기원을 알기 위해서 물리학과 우주론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제야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림을 조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본질에 점점 더 다가갈수록 지금까지의 경영 방식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2013년에는 사람에 대한 연구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고자 자인연구소를 설립했다. '자인'은 자연주의 인본사상의 줄임말이다. 자연주의(自然主義)는 자연의 결이 만든 세상, 생명, 인간에 대한 이치 기반의 본질을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등 자연과학을 통해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인본사상(人本思想)은 자연이 만든 사람의 결을 바탕으로 개인의 행복과 기업의 성장 그리고 사회의 번영을 위한 실용적 가치와 지혜를 지향한다는 목적을 함의한다. 자인 연구소는 사람과 세상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을 깨우고, 기업을 키우고, 사회를 바꾸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한다.

 

사람에 대한 탐구와 연구를 거듭하며 깨달은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아는 것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 믿으며, 또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최근 수백 년간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까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인간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단서들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내듯 인간 정체성이라는 퍼즐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자인연구소에서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개발한 통합 역량모델 이론(NCT, Neuro Competency model Theory)을 바탕으로 인간 정체성의 본질을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의 연구결과를 통해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인간 계발과 사회 발전을 위한 실용적 가치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이불변응만변(以不變 應萬變)’이란 것이 있다. 그 뜻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이치(理致)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이치는 바로 이 책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인간 정체성의 본질’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경제, 산업, 정치, 교육, 문화 등 모든 현상은 인간 정체성의 질서 위에 만들어진 또 다른 질서들이다. 따라서 인간 정체성의 본질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당위와 실용적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구해온 답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답이 어떤 것이든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답을 구하는 여정에서 각자가 경험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통렬하고도 냉철한 인식은 바람직한 삶을 일구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 그 지혜로 우리는 삶을 무의미한 소모가 아닌 참다운 의미로 충만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간 정체성의 본질까지 내려가서 보면 우리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은 커녕 얼마나 미숙하고 편향되며 완전하지 않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가 허무감이나 무력감에 빠져야 할 이유가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세상의 주인이니 하는 특권 의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착각과 오해였을 뿐이니 사실상 우리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 철저하게 바닥까지 내려가는 그 여정은 물론 쉽지 않을 테지만, 나는 그것만 이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삶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제1부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정체성을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최상의 삶에 다다를 것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질문은 철학적이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과학적일 것이다.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관심이 많다. MBTI를 비롯한 수많은 성격유형검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의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이 매일 생각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추상적이거나 단편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 위안은 줄 수 있어도 실제 삶에 필요한 실용적 가치는 다소 부족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두 가지 질문을 한 번도 던져보지 않은 사람처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생각의 장막을 걷어내고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질과 핵심을 꿰뚫을 수 있다면 어떤식으로든 각자의 일과 삶에 필요한 실용적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통해 사람의 본질, 세상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맑은 시야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맑은 시야는 각자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지혜의 창이 되어줄 것이며, 불확실한 인생 항로를 안내할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낯설고 어색한 용어와 문장을 만나면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설익은 표현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민낯을 드러내는 표현과 설명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 믿는다. 부족한 재주와 질박한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는 것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선택이 아니라 당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지혜는 부족하고 재주는 거칠지만, 이 글의 진정성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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