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ONE 무엇이 진짜이고 진실인가 : 인식과 편향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물에 갇혀 있기 때문이요, 여름에만 사는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시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물을 벗어난 적이 없는 개구리는 우물 밖 세상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우물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세상에 태어나 경험하고 기억한 것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경험하고 기억한 만큼만 생각하고 상상하며 행동할 수 있다. 비슷한 경험과 기억이 반복되면 생각의 틀을 형성해 자신만의 관념이 만들어진다. 한 번 형성된 관념은 점점 강화되어 고정관념을 구축한다. 스스로 자기 생각이 고정관념이란 걸 모르면 모든 것을 자신이 믿는 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면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편협한 주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자기 관념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주관에 매몰되는 걸까? 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진실인 양 믿는 걸까? 왜 우리는 주관적 관점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단단한 두개골에 둘러싸여 있는 뇌를 통해 자기 자신을, 타인을,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뇌는 바깥 세상을 안으로 들여와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판단한다. 뇌는 과거의 기억을 활용해 편익에 따라 상황을 해석하고 심지어 왜곡하기도 한다. 세상에 갈등이 넘쳐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지적 주관성과 편향성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인지적 주관성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편향성을 극복해야만 분쟁과 갈등을 줄여갈 수 있다.

 

 

 

 


 

 

 

주관성과 편향성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관성과 편향성을 극복하고 우물 밖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합리적 이치를 배우고 객관적 관점을 갖추면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이유는 주관성과 편향성이 의도를 갖고 개입하거나 제어하기 어려운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은 수면 위로 드러난 일각에 지나지 않고 그마저도 수면 아래에 있는 무의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에서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식할 수 없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제어할 수도 없다.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조차 무의식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판사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에 의존해서 판결을 내린다고 하면 믿기 어려울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이 가석방 여부를 판단하는 이스라엘 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판사의 식사 여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가석방 비율이 높고 배가 고프거나 피곤한 상태에서는 가석방 비율이 낮았다.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판사가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가정의(正義)이다”라는 속담이 있었을 정도다.

 

무의식이 감정이나 생각으로 굳어지면 ‘마음의 습관’이 되고, 몸으로 표현되면 ‘행동의 습관’이 된다. 습관은 오랫동안 축적된 무의식적 마음이자 신경적 편향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우리가 지닌 습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과 본성은 ‘유전적 습관’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젖을 먹고 트림을 하고 배변을 하고 잠을 자는 것은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적 습관 덕분이다.


둘째, 신경 경향성으로 만들어지는 성격과 인격은 ‘인지적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인지적 습관은 성장환경과 상호작용 경험에 따라서 형성되며,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고정적이고 패턴화된 사고 및 행동으로 드러난다. 부정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사사건건 부정적이고, 긍정적 성향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다.

 

셋째,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양한 관습과 문화는 ‘사회적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다. 사회적 습관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습관들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필요한 상황에서 주관적 편향이나 편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바꾸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관점 갖기


모든 인간은 존속에 유리한 편향을 유전자에 축적하면서 진화해왔다. 편향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편향이다. 편향 자체를 피할 것이 아니라 나쁜 편향을 멀리하고 바람직한 편향을 가까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좋은 편향을 가까이하고 나쁜 편향을 멀리한다는 것은 곧 뇌의 인지적 습관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뇌에 좋은 길을 내는 것이다. 편향은 뇌의 습관이기 때문에 반복적 학습을 통해 수정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꾸준히 배우고 익혀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습관을 바꾸면 무의식적인 선택과 행동도 그 방향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뇌에 새로운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나쁜 편향을 극복하고 주관성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적 합리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인간은 나, 나와 타인, 그리고 나와 세상에 대한 세 가지 기억을 바 탕으로 세 가지 주관을 갖게 되므로, 이러한 세 가지 주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세 가지 객관이 필요하다.

 

 

첫째, 스스로 주관적임을 깨닫는 ‘인지적 객관’이다. 인지적 객관은 우리 인식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세상은 각자의 머릿속에 인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인지적 객관이다.

 

둘째,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회적 객관’이다. 사회적 객관은 내가 그러하듯 타인도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타당하다. 모든 존재의 당위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객관을 갖는 출발점이다.

 

셋째, 이치를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객관’이다. 이치란 자연의 본질적 질서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제약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분과 전체는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는 ‘주객일체(主客一體)’의 시각을 갖는 것이 이치를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객관이다.

 

 

객관의 눈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주관성과 편향성의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며, 주어진 상황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 서 한 번 더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속성과 이치를 기반으로 하는 앎에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실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다양한 현상 중의 한 장면이거나 인식일 뿐이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도 합리와 객관의 렌즈로 비춰보면 거짓일 때가 많다.

 

과학은 어떤 결론이든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다. 현재의 과학적 결론은 아직 부정되지 않은 진실일 뿐이다. 과학은 재현과 실증을 통해 사실을 증명한다. 과학은 합리적 절차로 얻은 결론에 호의를 갖되 부단히 검증한다. 과학이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합리적 이치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관점을 갖게 해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바르게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고, 제대로 알아야 올바로 살 수 있다. 가짜와 진짜, 어떤 이정표를 보며 걸을 것인가? 우리를 ‘진짜’로 이끌어주는 이정표는 합리적 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적 관점이다. 합리와 객관이 우리를 더 나은 판단과 선택으로, 더 행복한 인생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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