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ONE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간 본능을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했던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는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가 누워있고, 왼쪽 끝부분에는 침울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싼 노인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림의 가운데에는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젊은이가 서있다.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묘사한 이 그림을 통해 고갱이 던진 세가지 물음은 모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향하고 있다 .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나의 현재와 더불어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고갱이 던진 질문에는 “우리는 과거의 결과로 존재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미래에 가야 할 길이 결정된다"라는 삶에 대한 본질적 통찰이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엔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할까? ‘나답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나의 성격이나 지능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걸까,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걸까? 나는 왜 매번 후회하면서도 비슷한 선택을 되풀이 하는걸까? 스무살에는 서른살이 되면 더 이상 이런 고민을 안할것 같지만, 서른살이 되어도 이런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자기 삶의 모든 장면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알고자 하는 바는 취미, 특기, 성격 유형, 학력, 직업과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동안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온 결과로 드러나는 현상들이다. 말하자면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자극에 반응한 결과로 만들어진 삶의 구체적인 장면들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정보가 주어져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판단을 한다. 그렇기에 똑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서로 다른 반응을 한다. 똑같은 상대를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사업 파트너로 관계를 맺는다. 똑같은 장소에 여행을 다녀와서도 어떤 사람은 유학을 결심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이렇듯 서로 다른 반응이 모여서 서로 다른 정체성과 삶을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 주지 않을까?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예측과 판단이 있다. 세상에 대한 정보로 주어진 자극의 의미와 가치를 예측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판단함으로써 반응에 대한 선택이 이뤄진다. 예측과 판 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것을 알려면 예측과 판단을 하는 몸과 마음의 작동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몸과 마음의 작동 메커니즘을 알려면 그것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단위인 세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세포에 대해 알려면 아주 단순한 움직임만 할 수 있었던 단세포 생물에서 어떻게 이토록 복잡한 뇌와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파헤쳐야 한다. 결국에“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제1부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인간 정체성을 근원적 차원에서 탐색하게 될 것이다. 정체성(正體性)의 영어 번역인 아이덴티티(identity)의 어원은 ‘동일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idem’이다. 아이덴티티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어 일관되고 동일하게 유지되는 성질이나 특성’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정체성은 아이덴티티를 포함하고 있으나 아이덴티티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책에서 살펴보려는 정체성은 최초의 생명체에서 출발해 고도의 인지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갖게 된 본능과 본성이라는 적응적 속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세상에 태어나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뇌에 만들어지는 신경경향성인 성격과 역량도 포함한다. 정체성을 본질적 측면에서 재정의하면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된 유전적 속성이 신경을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내면에 구축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정체성은 ‘물리, 생리, 심리와 같은 합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이치’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이치를 근간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뇌 구조는 면면히 이어져온 진화의 흔적으로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사고와 행동이 나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많은 판단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1898년

 

 


 

 

 

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까?


그리스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인류에 두고 회자할 위대한 잠언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말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던 문구인데, 소크라테스가 이를 인용해 우리가 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기 성찰은 왜 그토록 중요한걸까? ‘내가 누구인지’잘 아는 것이 결국에 행복한 인생을 잘 살아내는 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를 바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하기를 원하며, 정신적인 성장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식으로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모든 노력과 고민도 결국에는 행복한 인생을 위한 것들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면 행복의 본질과 더불어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삶이란 ‘나’를 사용해서 세상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세상과 풍성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최대한 사용하려면 자기 자신을 본질적 차원에서 깊이 이해해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언어를 잘 다뤄야 하고, 언어를 잘 다루려면 문법과 맞춤법 외에도 사전적 정의와 사회적 쓰임뿐 아니라 각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우리는 매우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함으로써 미성숙한 존재에서 성숙한 존재가 된다. 우리 모두 생물학적으로 태어난다는 점에서는 수동태이지만,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능동태이다. 우리는 유전자에 봉인된 채 태어나지 않았다. 자연은 누구에게도 정해진 운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실현하며 자신이 꿈꾸는 삶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또한 상실과 실패를 두려워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죽음을 앞둔 시점까지도 계속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생을 마친다. 우리 모두 행복의 무지개를 꿈꾸고 좇으며 살아가건만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정작 무지개를 손에 넣는 사람은 없다. 무지개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허상을 좇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고 행복의 본질에 대해 모르면 허상만 좇으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왜 정체성을 알아야 할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에 “인간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알고자 하면 인간 정체성에 대해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겉모습만 아는 것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기대와 욕망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정체성’을 알아야 모든 것에 대한 합리적 답을 얻을 수 있다.

 

정체성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 내면에 ‘질서’로 구축돼왔다. 질서라고 하면 일직선으로 정형화되고 선형적인 패턴을 떠올리기 쉬운데, 자연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부여한 질서는 기본적으로 복잡계적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비정형비선형의 창발적 패턴이다. 그래서 질서보다는 ‘결’이라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우리는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진 피조물이 아니다. 애초에 생물이었고, 그다음엔 동물이었으며,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했다. 그렇기에 우리 정체성에는 생물의 결, 동물의 결 그리고 인간의 결이 모두 담겨 있다. 생물의 결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생존과 번식을 최우선으로 하려는 속성으로 드러난다. 동물의 결은 신경을 통해 자신이 처한 신체 내외부의 상황을 잘 지각해서 가치를 정하고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속성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다른 동물에 비해 고도로 발달한 뇌를 가진 인간의 결은 물질적사회적정신적 욕망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타인에 대한 공감, 자신과 세상의 경계에 대한 인식 등을 바탕으로 사회성, 합리성, 초월성과 같은 고유의 정신적 속성으로 드러난다.

 

생물의 결과 동물의 결을 가진 우리는 ‘본능’과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또한 인간이기에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인성’이란 것을 지니게 된다. 대개는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유전적 속성을 ‘본성’이라고 말하지만, 이 책에서 ‘본능’과 ‘본성’을 구분해 설명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매우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본능은 생존과 번식을 최우선으로 하는 유전적 속성을 기반으로 하는 결핍감 형태의 추구성이고, 본성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치 기반의 학습을 통한 만족감이나 행복감 형태의 추구성이다. 본능과 본성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영유아기에 초기 양육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서 발현되거나 추구되는 양상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인간다움을 부여해 주는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인성은 그것을 학습하는 시스템만 뇌에 가지고 태어날 뿐 그 내용은 출생 이후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채워진다. 인성은 본능과 본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대부분은 환경문화적으로 학습되고 형성된다. 인성은 거친 본능과 미숙한 본성을 세련되게 다듬어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는 인성을 통해 동물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본능본성인성이 서로 다른 속성으로 존재하면서 제각기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란 점이다. 오늘날 인간 정체성은 본능의 결 위에 본성의 결이 얹어지고, 본능과 본성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 위에 인성의 결이 얹어지면서 형성되고 진화해왔다. 바로 이러한 정체성에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담겨 있다.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정체성


인간 정체성은 한때 신이 창조한 피조물로 규정되었다. 도덕과 윤리에 기준을 둔 인간성에 대한 탐구가 정체성에 관한 탐구를 대신하기도 했다. 고갱이 저 그림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한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근대 이성과 과학의 발전 덕분에 인간은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학이라는 렌즈와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악했다. 이로써 인간은 더 이상 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우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장류로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 정체성에 관한 탐구는 철학이나 종교의 독점 영역이 아니며 인문학만의 영역도 아니다.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등의 자연과학이 인간 정체성을 규명할 다양한 지식과 통찰을 제공하며 퍼즐을 완성해가고 있다. 애초에 인간은 자연과학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실용적 도구로 주로 사용해왔다. 수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이 그것을 증명하는 결과다. 그런데 지구촌 대부분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는 인간 정체성을 근원적인 차원에서 밝혀내는 데 자연과학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종교적 신탁에 의존했던 주관적 신념이 과학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세계관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엄밀한 과학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다만 올바른 답과 실용적 지혜를 얻기 위해 과학이라는 렌즈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과거의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체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특히 어둡고 캄캄한 방에 숨겨졌던 인간의 뇌에 환한 빛을 비추면서 온갖 비밀을 캐내고 있는 신경과학의 놀라운 발전은 정체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상상력을 펼치고 미래를 계획하는 모든 인지체계의 바탕이 되는 ‘뇌’야말로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들어내고 우주여행까지 할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올바로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함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과거의 수많은 우연과 기회로부터 주어진 것처럼 지금의 내가 가고 있는 길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어떤 형태로 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 정체성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인지 여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제1부에서는 인식과 편향, 기억과 개념, 감정과 욕망, 본성과 역량,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을 바탕으로 인식한다. 기억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경험하고 알게 되며,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이해한다. 기억이 없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동일한 존재인지 확인할 수 없고 자아감을 느낄 수도 없다. 내가 느끼고 아는 모든 것은 바깥 세상에서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뇌에 들어온 세상에 내가 사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도 기억이 만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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