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편향을 가까이하고 나쁜 편향을 멀리한다는 것은 곧 뇌의 인지적 습관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뇌에 좋은 길을 내는 것이다. 편향은 뇌의 습관이기 때문에 반복적 학습을 통해 수정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꾸준히 배우고 익혀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습관을 바꾸면 무의식적인 선택과 행동도 그 방향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뇌에 새로운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우리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바쁜 출근길에는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뛰어가서 탈 것인지 다음 버스를 탈 것인지 빠르게 선택해야 한다. 매일 먹는 점심 메뉴 정하는 것도 세상 어려운 선택이다.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을 할지 말지, 대출받아서 집을 살지 그냥 전세로 살지, 일찍 은퇴해서 시골에 내려가 살지 더 오래 일하는 게 좋을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삶의 모든 순간에 하게 되는 수많은 판단과 선택은 모두 각자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거꾸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과거의 선택들이 오늘의 나와 삶을 만들었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와 삶을 만들 것이다.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삶의 행로가 달라진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도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자신의 인생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사르트르는 그러한 선택들에 책임을 지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고도 강조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수많은 판단과 선택이 우리 인생을 행복으로 안내할 수도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다. 결국에 어떤 선택을 하며 사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결이 만들어지고 색채가 결정된다. 좋은 선택을 더 많이 할수록 그만큼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더욱이 다행스러운 것은 나의 인식이 곧 나 자신이고 내가 사는 세상임을 이해하면, 그리고 나의 뇌에서 판단과 선택이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면 바람직한 선택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
선택은 ‘판단’의 결과다.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다뤄야 할 변수들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해야 할 것들도 매우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사람들의 욕망도 다양하고 세상이 제공하는 가치의 종류도 대단히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늘 현명한 판단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를 하고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감당하기 어려운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의 인지체계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인지체계를 설명하자면 ‘뇌가 신체 내부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화학적 작용’이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인지체계 작동 결과의 일부만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비롯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모든 사물을 지각하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인식능력 덕분이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인식’되어야 한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인식 능력이 없다면 자기 자신도 이 세상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미 흘러간 과거를 기억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인식능력 덕분이다. 인식능력이 있어서 인간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생물은 인식 능력이 없으며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도 없다. 생물 중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움직임이 가능한 동물뿐이며, 그중에서도 자의식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서 인식하고 이해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식은 대개 감각수용체를 통해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한다. 눈, 귀, 피부와 같은 감각수용체를 통해서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 관련 기억을 활성화해 자극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가치를 판단한 다음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한다. 다만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의식적으로 알 수 없다. 대부분 과정은 무의식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든 인지체계에 의식이 관여한다면 정보 처리를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서 뇌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이와 관련된 인지체계의 상당 부분이 무의식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무의식의 판단 체계에 대해서는 제 5장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뇌는 생존을 위해 예측한다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뇌는 신체 내부와 외 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자극을 모니터하고 예측을 통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 선택한다. 뇌에서는 ‘자극 → 예측 → 반응’의 인지체계가 쉼 없이 작동한다. 멍하니 앉아 쉴 때도, 심지어 꿈을 꿀 때도 자극-반응 회로는 멈추지 않는다. 자극-반응 회로는 우리가 더 잘 존속하도록 자연이 마련해둔 생물학적 명령체계이기도 하 다. 따라서 이 회로가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뇌가 판단하는 과정은 얼핏 체계적이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하기 위한 본능적인 메커니즘에 가깝다. 뇌는 더 잘 존속하기 위해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한다. 우리가 간혹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를 뇌 입장에서 이해해 보자면 그것 이 존속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뇌의 판단 기준은 오직 존속의 유불리에 있다. 인간 역시 생명체이기에 생존에 유리한 특성을 유전자에 축적하면서 진화해왔다. 인간이 합리적 판단보다 직관적 판단을 우선하도록 진화한 이유도 그것이 존속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원시 환경에서는 촉과 감에 의존하는 직관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가령 뱀처럼 생긴 넝쿨을 보면 재빨리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발밑에 있는 것이 독사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넝쿨인지 아닌지 자세히 살핀 후 행동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이 결정될 만큼 위험한 환경에 살고 있지 않은 데도 우리는 여전히 직관을 가지고 태어난다. 시간과 정보가 불충분해서 체계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직관을 통해 빠르게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가령 눈앞에 김이 솔솔 나는 맛있는 떡이 있다. 뇌는 순식간에 “뜨거운 떡을 맨손으로 만지거나 식히지 않고 먹으면 손이나 식도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라는 것을 예측한다. 그 결과 젓가락으로 떡을 집어서 호호 불어 식히도록 하는 행동을 하게 한다. 직관은 이처럼 우리가 빠른 판단을 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불충분한 합리성으로 인해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직관적 판단은 원시시대 인류의 생존에는 유리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뇌의 판단 결과가 우리에게 오류로 인식되는 또 다른 이유는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효율성’ 때문이다. 뇌는 가능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진화했다. 만약 뇌가 모든 감각과 경험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한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뇌는 기억을 활용해 대략적인 정보를 미리 예측한다. 뇌는 모든 것을 정확히 관찰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뇌는 엄지손톱 크기의 망막을 통해 세상을 본다. 망막에는 시간당 약 100기가 바이트의 정보가 들어온다. 손톱만 한 망막에 모든 시각 정보를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뇌는 윤곽을 먼저 파악한 다음 필요한 경우에만 자세히 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또 뇌는 카메라처럼 모든 정보를 한 번에 담지 않고 대충 인지한 다음 나머지는 퍼즐을 맞추듯 조립해 이미지를 완성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 한눈에 모든 별을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부만 보게 된다. 그런데도 무수히 많은 별을 보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머지 공간을 뇌가 별들에 대한 심상으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들이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판단으로 삶을 만들어간다고 믿으며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고 고심한다. 하지만 정말 많은 선택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의 인지체계 작동 결과로 주어진다. 이는 뇌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한 결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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