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량에 관한 오해와 진실

스펙은 좋은데 일을 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을 잘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스펙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성과를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있는 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닌 없는 답을 찾고 만들며 추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작가 이상의 대표작 〈날개〉의 첫 문장입니다. 물론 작품에서의 의미와는 다르지만, 조직에도 불행히 ‘박제가 되어버린’ 인재(?)가 의외로 많습니다. 최고의 스펙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며 당당히 입사했지만 일의 성과에 있어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구성원들 말입니다.

 

이들은 성과를 떠나 처음부터 조직 생활 자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까지 합니다. 갈수록 생기를 잃고 무기력해지다가 결국 얼마 못 가 그만두지요.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과 교육에 쏟았던 온갖 비용이 매몰되고, 채용담당자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갑니다.

 

보통 스펙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주로 학벌, 학점, 영어점수, 수상경력, 자격증, 어학연수 등이지요. 사실 ‘스펙(specification)’이라는 말은 공학 분야에서 설명서나 시방서를 의미하는 용어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평가하니 세태가 참 씁쓸하지요.

 

어느 조직이든 내가 스펙이 더 좋은데 승진이나 평가에서 밀렸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선망하는 자격을 갖고 있으니 그만큼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잘난 체는 혼자 다 하면서 순 ‘헛똑똑이’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스펙이 좋을수록 일을 못해 성과가 낮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식 기반의 스펙은 기업에서 일을 잘잘하게 만드는 성과능력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학교에서의 인재는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입니다만, 기업에서의 인재는 ‘없는 답을 찾고, 답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물론 스펙이 좋으면 남들보다 머리가 좋을 수는 있습니다. 또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지식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하지만 ‘공부머리’가 좋다고 해서 조직에서 반드시 성과를 잘 내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은 그 자체로 성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내는 재료일 뿐, ‘일머리’는 따로 있습니다.

 

스펙이 성과까지 확실히 보장한다면 채용이 얼마나 쉬울까요? 그 옛날 공채 시절 그랬듯이 대학 서열과 학점에 따라 채용하면 되니까요.

 

 


 

 

 

스펙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한때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갔다면 일도 그만큼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었습니다. 특히 서류전형에서 지원자를 판단할 수 있는 스펙이 실제 채용 가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지요. 그러나 좋은 대학을 나온 것과 성과 사이에는 상관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입증되었습니다.

 

2022년 한국경영학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다양한 산업 및 기업 규모(대기업 포함)를 고루 배분한 16개 기업 재직자 4,040명의 직무 표준화 성과와 입사 당시 선발도구 간 상관계수(두 개의 변수가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정도)를 높음(1), 없음(0), 반비례(-1)로 측정했는데 학벌(대학 순위)은 0.01이 나왔습니다. 또 자격증 수는 0.03에 머물렀고, 심지어 영어 점수는 -0.01의 상관계수를 보였습니다. 즉 서류전형에서 가장 많이 본다는 이런 스펙 요소들이 정작 미래 성과는 잘 예측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처럼 스펙은 실제 성과와 성장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교육 현실에서 대개의 스펙은 부모를 비롯한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의 권유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또 실제 성과를 만드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스펙들도 많고요. 더욱이 취업을 위해서만 스펙을 쌓았다면 허울만 근사할 뿐, ‘가짜 스펙’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전 구글 인사부문 임원 복(L. Bock)의 분석에 따르면 일류 대학 출신일수록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기 때문에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지요. 또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이를 수용하는 정도도 낮고요. 반면에 학력이나 학벌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사람일수록 수용성이 크다고 합니다. 늘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낮추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요. 집단 시너지를 통해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에서는 명문 대학 졸업장보다 이런 태도들이 성과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선발도구와 성과 간 상관계수, 한국경영학회 2022

 

* 학벌: 수능 배치표 기준 대학 학벌을 1(낮은 점수)~9(높은 점수)로 변환
* 학점:대학별만점학점기준개인별학점비율을백분율로환산
* 기업별 성과평가는 최근 3~5년간 결과를 직무별로 표준화하여 계산
* 미국 노동부 가이드에 따르면 상관계수가 0.11은 되어야 활용 가능(Q09에서 상술)

 

 


 

 

 

'박사'가 아니라 '선수'가 필요하다


스펙 서류에 의존하는 편향성을 보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대부분의 기업은 ‘자소서’를 도입했습니다. 면접과 더불어 지원자의 경험과 능력을 평가자들에게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 여기지요. 그러다 보니 자소서를 대필하거나 컨설팅해주는 업체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말까지 나올까요. 그냥 자소서를 쓰는 일도 힘든데,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거짓과 과장을 더해 써내야 하니 지원자는 또 얼마나 힘들까요. 고작 글쓰기 수준을 확인하는 것 외에 자소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자소서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있으나 마나 한 광고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까지 등장해 자소서가 다시 채용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챗GPT 자소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무수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옵니다. 실제로 챗GPT에 몇 자만 입력해 주문하면 챗GPT는 능수능란하게 개인별 맞춤식 자소서를 작성해내고요. 스펙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 느낀 점을 문학적 표현법까지 써가며 훌륭하게 완성해내는 것이지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 레주메 빌더 조사에 의하면, 설문에 참여한 2,153명의 구직자 가운데 78%가 챗GPT가 작성한 자소서를 사용해 면접을 봤고 대부분 원하는 곳에 취업했다고 합니다. 10명 중 7(69%)은 챗 GPT가 작성한 이력서와 자소서에 대한 기업의 응답률이 더 높았다고 답했고요. 하지만 이럴수록 앞으로도 자소서 전형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더욱 희박해집니다. 채용 시장에서 자소서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니까요.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스펙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선별하고, 자소서와 면접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허울뿐인 스펙 쌓기에 골몰하며 등골이 휠 수 밖에 없고요. 이렇게 뽑아 놓으면 조직은 이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데 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하니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인 것입니다. 물론 지식과 기술이 없으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건 사실입니다.그러나 역량이 없으면 지식과 기술이 있어도 성과로 이어지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대개 스펙만 보고 역량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요.

 

기업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이론에 정통한 ‘박사’가 아닙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동료들 역시 스펙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일 잘하는 선수, 소위 ‘일잘러’를 찾기 마련이고요. 누구도 선수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선수가 될 가능성을 타고나는 것일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가 진짜 인재인지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에서 원하는 가치, 즉 ‘성과’를 만들어내는 인재를 채용하고 싶다면, 가짜 스펙이 아니라 내면에 잠재한 진짜 스펙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역량’입니다.

 


 

지식과 기술만으로 '박사'가 될 수 있어도, 역량을 갖추지 않고는 절대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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