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역량에 대하여

우리는 태어날까요, 만들어질까요? 본성과 양육의 문제는 언제나 교육의 최대 논쟁거리였습니다. 이 물음에 과학이 제시하는 답은 ‘인간은 태어나 만들어진다’라는 것입니다.

 

태어나 ‘만들어지는’ 존재로서 우리의 뇌는 환경에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날 뿐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학습하는지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습니다. 환경과의 긍정적 상호작용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삶에 필요한 많은 것을 학습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바꿀 수 있고, 타인과 사회도 더 멋지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뇌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숙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는 약 800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신경 세포는 수백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경세포의 수는 태아 시절에 거의 정해집니다. 양적으로만 보면 거의 완성된 뇌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뇌의 수준은 양보다 질이 좌우합니다. 뇌가 크다고 지능이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코끼리는 사람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지능과 비교할 수 없죠.

 

신생아의 뇌는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 연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발달합니다. 시냅스 연결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집니다. 자주 사용하는 연결은 남고, 사용하지 않는 연결은 제거됩니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섭취 에너지의 20퍼센트 이상을 소모하고 산소의 25퍼센트를 소비합니다. 그래서 가치가 없는 연결은 제거하고 필요한 연결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불필요한 연결을 제거하는 과정을 시냅스 ‘가지치기’라고 부릅니다.

 

가지치기를 마치고 살아남은 시냅스는 사용할수록 연결이 강해지고 안정화됩니다. 신경세포의 축색돌기를 피복으로 감싸주는 ‘수초화’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수초화는 뇌의 질적 성능을 결정합니다. 축색돌기 표면을 수초라는 지방질 세포로 감싸면 전선에 피복을 입힌 것처럼 신호 전달의 정확도와 효율이 높아집니다. 수초화 수준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풍부하게 할수록 시냅스 연결이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도 강화됩니다. 반대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빈약할수록 시냅스 연결이 약해지거나 사라집니다. 그래서 ‘뇌=뇌×환경’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만들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성장이 뇌의 발달 과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뇌는 발생, 성장, 성숙이라는 세 단계 과정을 통해 발달합니다. 우리 뇌는 본질적으로 유전자와 태내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여 생리화학적으로 유도된 뉴런들이 신경망을 형성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이처럼 뇌를 비롯한 몸, 성격과 역량, 지식과 지능, 인격과 지혜까지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계통발생적으로 태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지경험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태어나 신경자극과 신경 경험으로 기억을 얻고, 신경 맥락적으로 역량을 형성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본성이냐 양육이냐’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씨앗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환경이 좋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씨앗과 환경은 상호보완적 관계이지 이분법적 관계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유전자와 환경 역시 이분법적 관계가 아닙니다.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유전적 결함 없이 태어났다면, 환경이 훨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좋은 환경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풍성한 열매를 맺을 테니까요. 그래서 교육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결국 교육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개선의 여지가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과학이 말하는 진실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미숙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오랜 양육과 학습 기간을 거쳐서 성년이 됩니다. ‘사람 노릇’을 하기까지 꽤나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생쥐는 태어나서 약 6~8주 후에 어른 쥐로 발달하고, 아기 고양이는 생후 약 9~12개월이면 어른 고양이로 발달합니다. 또 강아지에서 개가 되는 데에 필요한 기간은 1~2년이고, 망아지에서 말이 되는 데에는 3~4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아기가 어른으로 발달하기까지 약 20~25년이 걸립니다.


인간의 생후 발달 과정이 다른 동물에 비해 더딘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이고 지능적인 생물로서 복잡한 환경에서 학습하며 문화적 존재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를 성숙한 존재로 빚어주는 것은 뇌인데, 그중에서도 대뇌피질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위 그림은 아이가 출생한 후뇌 바깥을 감싸고 있는 대뇌피질의 수초화 과정을 색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시냅스 연결이 미숙한 상태이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시냅스 연결이 거의 완성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붉은색이 파란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 후두엽의 시각피질과 두정엽의 운동피질이 가장 먼저 발달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먼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운동을 학습하며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후두엽과 두정엽 다음에는 예측이나 판단 같은 인지 작용에 깊이 관여하는 전전두엽이 발달합니다.


특히 뒤에서 살펴볼 역량과 관련해 핵심 영역이라 할 전전두피질의 발달은 20~25세 무렵에 거의 완성됩니다. 전전두피질의 성장이 20~25세 무렵에 거의 멈춘다는 것은 성인이 된 다음에는 뇌의 발달이 제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성장 환경이 뇌 발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전전두피질의 발달 과정에서 사춘기를 전후하여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춘기를 기점으로 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패턴으로 학습합니다. 사춘기 이전까지는 ‘흥분성 시냅스’를 통해 주로 ‘가치’를 학습하고, 사춘기 이후에는 ‘억제성 시냅스’를 통해 주로 ‘전략’을 학습합니다.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단백질 접착제인 시냅스는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는지 억제하는지에 따라서 흥분성 시냅스와 억제성 시냅스로 나뉩니다. 이 두 시냅스는 서로 길항적으로 작용하면서 전체 신경망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사춘기까지 진행되는 가치 학습은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좋은 것과 싫은 것,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등을 판단하는 ‘가치판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는 가치 있는 것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또는 가치가 없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전략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전략 학습을 통해 부모 곁을 떠나서도 홀로 성장할 준비를 하는 것이죠.

 

뇌의 질적인 성장은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 학습을 통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학습’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경험 과정과 결과가 뇌에 기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론 세상을 자신의 내면에 기억으로 축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적한 기억을 통해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성장이란 곧 학습입니다. 학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존속에 필요한 가치를 학습하고, 그러한 가치를 획득할 기술과 방법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다만 자연에서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학습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회라는 인공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학습의 폭이 대폭 넓어졌습니다. 이것저것 경험하고 학습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성장 기간은 본질적으로 ‘사회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사회화 과정과 탁월한 학습 능력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듭니다. 우리는 태어나 학습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적 존재로 성숙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매우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신경학적 가능성의 결이 바로 ‘역량’입니다. 역량은 가지고 태어나는 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양육자를 비롯한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따라서 가변적으로 형성됩니다. 상호작용의 결과가 뇌에 신경 경향성을 형성하면서 역량을 만들고, 역량은 다시 상호작용을 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역량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영유아기에는 주로 초기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으로 긍정/부정의 경향성을 만들고, 학령기에는 또래, 선생님, 가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대인력을 비롯한 적극성과 소극성, 안정성과 불안성, 능동성과 수동성의 성향을 형성합니다. 사춘기부터 성인 초기까지는 자기통제력을 비롯해 자립에 필요한 전략적 사고력과 자기통제력, 통합력과 같은 집행 역량을 강화합니다.

 

이렇게 ‘결정적 민감기’인 성장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생 동안 삶의 중요한 바탕이 되는 일곱 가지 기반 역량이 형성됩니다. 일곱 가지 기반 역량은 긍정성, 적극성, 안정성, 대인력, 전략력, 제어력, 통합력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역량을 바탕으로 세상을 만나고, 사랑하며, 도모하고, 거래하면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역량은 삶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기초 체력에 해당합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지식이 많고 현란한 기술을 갖고 있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역량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생애 초기,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영유아기에 부정적 자극에 많이 노출되면 평생 부정적 경향성을 가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똑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누구는 ‘헬조선’이라 하고, 누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 합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성장기 상호작용을 통한 경험이 그대로 그 사람의 역량이 되고 인생이 됩니다.

 

 

 

 

그러면 전전두피질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기반 역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전전두피질은 역할에 따라 크게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치를 판단하고 학습하는 영역인 ‘가치령’,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전략을 모색하는 영역인 ‘전략령’, 가치와 전략을 통합하는 영역인 ‘통합령’이 그것입니다. 전전두피질의 세 영역은 다음에 살펴볼 긍정성, 적극성, 안정성, 대인력, 전략력, 제어력, 통합력의 일곱 가지 역량개발 및 강화와 관련해 직접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치령은 긍정성·적극성·안정성과 같은 가치 중심 역량의 개발과 강화에 관여하고, 전략령은 대인력·전략력·제어력과 같은 최적의 변수를 모색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역량의 개발과 강화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통합령은 가치와 전략에 수반되는 다양한 변수를 통제하고 모니터하는 통합력의 개발 및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각 부위별 역할에 대한 명칭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은유적으로 만든 표현입니다. 뇌는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뤄졌기 때문에 뇌의 영역을 구획하고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뇌의 특정 영역과 특정 기능이 일대일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구분을 해야 다룰 수 있고, 다룰 수 있어야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뇌의 각 부위를 범주와 가치로 개념화하여 구획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더 밝혀둘 것은 일곱 가지 역량만으로 인간의 역량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 없이 물질적, 사회적,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모든 가치를 추구하는 힘이 바로 역량입니다. 따라서 일곱 가지 기반 역량은 그야말로 모든 역량의 기반이 되는 핵심적인 역량이지 인간의 역량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량을 개발하고 최대한 발현하도록 도우려면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제대로 다루려면 이러한 정의와 분류가 불가피합니다. 또한 각 역량의 발달 시기와 관련 뇌 부위에 관한 설명 역시 실용적 이해를 돕고자 덧붙였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뇌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는 역량은 ‘주어진 자극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접근하는 성향’인 긍정성(positivity)입니다. 긍정성은 이기적 존속 추구와 직결되는 감각적 보상에 대한 정서적 판단과 관련된 역량입니다. 0~3세의 영유아는 냄새, 맛, 촉각 등 다양한 감각 자극에 대해 반응하면서 긍정성 혹은 부정성을 학습합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통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유익한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판단, 주어진 기회나 관계를 통해 유익한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긍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성이 강한 사람은 희망을 찾고 부정성이 강한 사람은 절망을 느낍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신호에 끌리고, 부정적인 사람은 좋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신호에 끌리는 것이지요. 특히 자신과의 상호작용에서도 긍정성은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성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원하는 수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빠르게 학습하고 성장할 가능 성이 큽니다. 더불어 외부 환경에 대해서도 더불어 외부 환경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므로 새로운 기회에 빠르게 반응하고 접근하며 기회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게 됩니다.

 

적극성(initiative)은 ‘자신의 성취와 성장을 위해 강한 의지와 열 망을 가진 성향’으로, 주로 사회적 본성과 관련된 가치판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약 4~5세부터 발달하는 적극성은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행동의 강도를 결정하는데, 이는 성취나 인정과 같은 사회 적 보상을 통해 평판이나 지위 등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외적 동기 그리고 내면의 성장과 만족감을 추구하는 내적 동기의 수준으로 발현됩니다. 긍정성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형성되는 역량이라면, 적극성은 능동적인 행동을 통해 주어지는 보상적 자극에 대한 가치판단을 통해 형성되는 역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긍정적인 보상을 받으면 적극성을 학습하게 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소극성을 학습하게 됩니다.

 

안정성(stability)은 ‘자아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신념과 사회적 합리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치를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는 역량’입니다. 긍정성이 ‘존속적 가치’와 적극성이 ‘사회적 가치’와 각각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안정성은 ‘정신적 가치’에 대 한 판단을 통해 형성되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주관하는 영역인 전방 내측과 관련된 안정성 은 성찰을 통해 양심이나 염치의 자기 처벌적 감정을 일으키는 역량이며, 또한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제어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등 인격 함양과 관련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인력(interpersonal ability)은 ‘성과 창출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하면서 대인관계적 변수를 제어하는 역량’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성격, 정서, 감정, 의도나 상황을 탐지하고 심리를 유추함으로써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이해 수 준에 맞추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량이며, 성공적인 가치 획득과 친사회적 행동을 유도해 바람직한 대인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대인력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돕고자 하는 성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발달합니다. 대인력은 안정성과 더불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인식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6~11세에 타인과 긍정적 관계를 맺고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면 자기 정체성의 안정적인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주변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기존의 개인적 자아에 사회적 자아가 스며들면서 사회적 가치관과 신념도 변화와 수정을 거쳐 강화됩니다. 상호작용이 원활하면 책임감과 같은 친사회적 가치관이 강화되고, 그렇지 못하면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략력(strategic ability)은 ‘원하는 성과를 창출하거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을 도모하는 역량’으로 사춘기 전후에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전략력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목표에 따라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지력, 그리고 학습된 정보를 이용해 추론·예측·계획·분석하는 분석력과도 관련이 큽니다. 성과를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이 많이 축적될수록 치밀하게 사고하고 분석하는 전략력이 더욱 강화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성공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하면 목적 중심의 행동을 잘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이 구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제어력(self-regulation ability)은‘목표 달성을 위해 성과지향적 행동을 지속하는 동시에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에 대응하는 역량’입니다. 성찰을 기반으로 자기를 제어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으며 차분하고 성실한 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목적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능력,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적응하는 능력, 목표 달성을 위해 꾸준하고 끈기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과 깊은 관련을 갖고 발달합니다.

 

통합력(integration ability)은 ‘성과에 필요한 다양한 변수를 통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역량’입니다. 가치령과 전략령의 모든 정 보를 통합해서 최적의 행동 전략을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역량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러한 생각과 감정이 나타난 원인을 살펴보는 동시에 자신과 주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도 통합력의 중요한 측면입니다. 또 타인과 자기 자신의 인지체계 차이를 이해해서 타인의 반응을 예측함으로써 긍정적인 관계 전략을 수립하는 것, 성과 창출을 위한 과제를 수행할 때 큰 그림을 보는 동시에 작은 그림도 함께 봄으로써 비어 있는 곳을 파악하여 대안을 만드는 것 역시 통합력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역량으
로 성과를 만들까요?

 

 

 

 

우선 뇌는 자극이 들어오면 예측을 통해 신뢰할지 말지를 검토하고 판단합니다. 주어진 자극원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들어 맞고 신뢰할 만하면 긍정 정서가 유발되면서 기대 가치의 크기만 큼 열정이 발현됩니다. 열정은 기대 가치를 얻고자 하는 감정적 에너지가 발현된 상태로서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끌어내는 원동력입니다. 열정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모색하려는 이성 체계가 작동하게 되지요. 반대로 주어진 환경과 자극이 자신이 회피하려는 가치라면 부정 정서가 일어나면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고민을 하게 됩니다. 추구든 회피든 전략이 마련된 다음에는 성과중심적인 행동을 지속해서 실행함으로써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 판단→열정 발현→전략 모색→추적 실행의 성과 메커니즘을 통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핵심은 ‘역량’입니다. 기술과 지식도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기술이든 지식이든 성과로 전환될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데,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도 성과로 전환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외양에 온갖 옵션을 장착한 자동차라 할지라도 엔진 성능이 낮으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듯이 아무리 기술이나 지식이 많아도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 능력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역량과 능력을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은 다릅니다. 능력은 ‘역량과 기술 및 지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성과 능력은 그 사람의 역량이 기술과 지식을 만날 때 비로소 발휘됩니다. 그래서 성과를 창출하는 능력을 방정식으로 표현하면 ‘성과 능력=역량×기술×지식’입니다. 역량은 성과를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뇌의 성능이고, 기술은 경험과 숙련을 통해 습득하는 절차 지식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며, 지식은 역량이 성과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능력의 재료인 지식은 언제든 쉽게 조달할 수 있고, 능력의 도구인 기술은 적절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량은 결정적 민감기인 성장기에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성장기 이후에는 개발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희 회사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관련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석학 수준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지만 그들은 전체 인원 중 1퍼센트 미만입니다.

 

사실 저는 건설 소프트웨어 분야 기업의 창업자이지만 건설이나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상관없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경영학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기술자 출신의 경영자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대학 중퇴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세계적인 ICT 기업을 창업한 훌륭한 경영자들이지만, 이들 중 경영을 전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저도 대학을 중퇴했다면 이들처럼 유명해지고, 마이다스아이티도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진짜’역량이란 무엇일까요?

 

 

 

 

지식과 학벌, 어학이나 자격증과 같은 이른바 ‘스펙’이 역량일까요? 역량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클랜드는 역량을 ‘일과 삶에서 성과와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 핵심적 변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지식이나 학벌이 아니라 성과와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앞서 말씀드린 일곱 가지 기반 역량과 같은 안정적인 속성이 진짜 역량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짜 역량이 과연 현재 입시 중심의 정답 맞히기, 암기식 교육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한 대학 강연에서 겪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교육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때, 그 대학 강연에서 한 여학생에게 받은 질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여학생은 부모님과 학교, 사회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어렵게 들어왔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으며, 지금은 무기력증에 빠져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열정을 불태울 수 있고, 인생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는지, 그 여학생의 울먹이던 질문에 저는 먹먹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실 풍경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모두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과연 행복할까요? 미국 미래학자였던 앨빈 토플러는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전혀 필요 없는 지식과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교육의 핵심은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역량을 개발하고 함양함으로써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키우고 바람직한 삶을 살도록 매개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핵심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것에 있는 만큼 가정 교육이나 학교 교육 모두 체험과 경험의 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어떻게 소통해야 관계가 좋아지는지를 배우고, 배려와 양보를 했을 때 친구들과 오래도록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도 배웁니다.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면서 칭찬과 인정을 통한 성취감을 학습하고, 교과서가 아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적인 발상을 훈련하기도 합니다. 자기 스스로 직접 부딪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 자체가 역량을 개발하고 강화하는 좋은 상호작용적 경험이 됩니다. 책상에 앉아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 외에 이러한 다양한 상호작용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을 늘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교육 관계자들이 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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