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칼럼

성장 | 둥글게 원을 그리고 살다 보면

인생 칼럼

성장 | 둥글게 원을 그리고 살다 보면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방학이라 아이들 발자국 하나 없이 눈이 내려온 그대로입니다. 눈을 보니 동그랗게 뭉쳐 장난을 치고 싶어집니다. 눈뭉치를 열심히 굴려 아이만 한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집니다. 아이들 없는 눈밭이 조금 쓸쓸하게 보이네요.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바쁘다지요. 공부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쑥쑥 자랍니다. 현대인은 거의 모두가 바쁘게 삽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말은 핑곗거리로도 좋습니다. 그러려니 하니까요. 바쁘게 사는 것도 다 ‘욕망’ 덕분입니다. 안 바쁘면 오히려 불안합니다, 걱정합니다. 어떻게 보면 욕망은 ‘걱정’입니다.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걱정합니다, 욕망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때 우리는 놀랐고, 다급히 살 길을 찾았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나 홀로 면역을 갖추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저항력이 중요했으니까요. 이른바 ‘집단면역’을 희망하며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지키는 일은 곧 남을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남을 보호하는 일은 곧 나를 지키는 일이었고요. 나와 함께 사는 가족과 이웃, 친구, 일터의 동료가 모두 건강해야 나도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둥글게’ 살았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 원을 그리며 말이지요. 그 시절 우리는 더 불안했고, 걱정했고, 욕망했습니다. 그 덕분에 초유의 감염병은 빠르게 잡혔습니다. 나라와 기업은 백신 개발에 열과 성을 다해 성공했고,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산다’라는 인간의 조건을 확인한 것은 제 값보다 귀한 덤이었습니다.

 

 


 

 

욕망은 ‘쾌(快)’와 ‘통(痛)’의 기억에서 비롯됩니다. 뇌가 학습한 기록이 기억으로 재활용되어 우리는 욕망할 수 있는 겁니다. 그 기록 속에는 ‘감정’이 묻어 있습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과거에 경험한 ‘쾌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예기치 않게 가져온 함께 산다 인식과 그것에 대한 긍정 감정의 강화는 그래서 의미가 큽니다. 특히 감정은 행동 선택의 기준이 되는 가치 제공합니다. 감정이 없으면 가치를 판단할 수 없고,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면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습니다. 즉 인간 이런 가치기억 따라 인간답게 움직일 수 없는 겁니다. 감정은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을 일으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대부분의 감정은 사회적 표현이며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욕망 없이는 이 세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욕망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특히 공감과 연민에서 비롯된 욕망이 관계와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자신만의 생존을 도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돕는 마음과 행동이 인류 발전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당시에 누군가 다친 사람을 돕지 않았다면 뼈가 붙지 못했을 거란 말이지요.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현대인 역시 여전히 다른 존재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지요. 일단 생존을 위해서도 서로 돕는 길이 최선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인생도 사업도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도울 때 성공합니다. 막무가내 떼쓰기를 일삼으면 서로 에너지만 허비할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허공에 대고 주먹을 날리고 아무도 없는데 몸을 피하는 ‘섀도복싱’과 같습니다. 우리는 홀로 유리된 개체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나의 욕망이 아닌 상대의 욕망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가령 협상 자리에서도 상대를 좇지 않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적게 말하는 거지요. 다만 질문을 많이 합니다.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최대한 주는 거지요. 이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경청해야 하고요. 그러면 상대의 욕망과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다름 아닌 상대가 내주는 겁니다. 협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꺾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아닌 상대에게 몰입해야 합니다. 내게 몰입하면 상대로부터 소외됩니다. 상대의 욕망을 먼저 생각하면 나의 욕망과 진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의 욕망을 ‘알아차린다’는 거지요. 말없이 스스로 되묻기 때문입니다. 생각 바깥의 생각, 욕망 바깥의 욕망이 생겨 균형 잡힌 시각과 사고를 가져오는 겁니다. 이게 앞서 말한 ‘둥글게’ 사는 모습입니다.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오니까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는 바로 상대에게 있습니다. 이런 습관이 성공을 이끌고 성공이 ‘욕망의 성장’을 이끕니다. 욕망의 성장은 세상을 바꾸고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서로에게 먼저 내어주는 관계, 이른바 ‘공동체’ 세상이지요.

 

욕망이 성장한다는 것은 이기적 욕망에서 호혜적 욕망으로, 다시 이타적 욕망으로 그 비중이 조금씩 이동하는 것입니다. 욕망이 성장하여 이처럼 질적으로 도약하는 것을 ‘욕망의 천이(遷移)’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욕망이 우선 폭넓게 충족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표층이 있으려면 심층이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우선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욕망의 충족을 ‘성공’이라 불러볼까요? 그렇습니다. 욕망의 천이를 이끄는 것은 바로 ‘성공’입니다. 작든 크든 성공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긍정 성향이 커지고, 이를 바탕으로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중심이 ‘나’에서 ‘우리’로, 다시 ‘세상’으로 옮아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생존에서 공생으로, 공생에서 다시 공존으로 확장됩니다. 욕망은 공존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겁니다. 우리의 욕망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합니다. 욕망은 개인의 내밀한 사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shutterstock_1556343866 11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뜻 이상한 말처럼 보이지요.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잘되면 남도 잘된다는 거지요. 자기 수행이 곧 이웃 사랑이라는 겁니다. 경영자라면 최선을 다해 고객을 만족시키며 기업을 번창시키는 것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 되겠네요. 좀 가볍게 표현하자면, 화투에서 말하는 ‘일타쌍피’인 셈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그 성공이 나에게 갇혀 있지 않고 나를 벗어나 공동체를 향할 때 나는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곧 타인의 행복입니다. ‘이타자리(利他自利)’와 뜻이 통하지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는 불가분의 관계이니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다시 돌아오니까요. 세상과 우리 인생은 이렇게 원을 그리며 굴러갑니다. 그래서 시인 황동규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고 노래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은 ‘바퀴’를 닮았지요. 구르면서 다 같이 전진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욕망의 변주곡입니다. 바람직한 인생은 나와 세상이 원하는 욕망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만족도를 높이고 싶어 분투합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여기서 ‘의미’라 함은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나는 세상에 어떤 가치를 내주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세상과 욕망을 일치시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이지요. ‘인간답다’는 것은 곧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픈 욕망이 커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헌신’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름답게 바쁜 것이지요. 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죽기 전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크고 귀한 존재입니다. 지금 바닥을 기고 허둥댄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미래는 언제나 좋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도 없던 운동장에 갑자기 아이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혼자 눈을 뭉치며 장난을 치네요. 아이와 함께 둥글게 둥글게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볼까요? 

 

 


모든 콘텐츠는 제공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거 무단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이전화 아이콘 이전화 다음화 다음화 아이콘

평점은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입력하시겠습니까?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회원가입

준비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