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연극의 이유 | 진짜 인생을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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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이유 | 진짜 인생을 사는 길

아흔이 가까운 노배우가 연극 〈리어왕〉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세계 연극 사상 최고령으로 리어왕을 연기했지요. 셰익스피어 연극을 통틀어도 그렇다 하니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합니다. 관련 인터뷰에서 그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드니 대사가 외워지지 않는다고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다음 말이 압권입니다. 그래서 연습을 더 많이 한다고요. 길고 긴 대사를 다 외워야 해서 다른 배우들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그저 노익장이라 하기엔 너무도 아름답지요. 

 

 

인생에서 기회의 문을 여는 건 ‘긍정’의 자세입니다. 기회를 성공으로 만드는 건 ‘최선’에 있고요. 기회를 주는 건 세상이지만 그 기회를 통해 어떤 성과를 만들지는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노배우의 말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연극을 못 하겠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힘드니까 젊었을 때보다 더 연습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진정 어른다운 현실 인식이자 다짐 아닌가요! 어떤 기회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거니까요. ‘진짜 인생’을 사는 길이자, 세상을 더 ‘많이’ 사는 법이지요. 

 

 

교육은 이 노배우처럼 인생을 더 많이 사는 법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무척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여야 하지요. 아이들은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게 아니라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체화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 발견과 놀라움이 연속해서 일어나야지요.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 누구에게나 가치를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이라는 신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요. 

 

교육에서 중요한 건 결과보다 ‘과정’입니다. 사실 ‘걷기’만 해도 무수한 과정이 쌓여 한 걸음이 됩니다. 이런 찰나의 과정을 당연시(무시)하며 살아갈 뿐이지요.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교육도 인생도 계속 변화하고요. 학교는 작든 크든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가장 넒은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과정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요. 노배우의 각성처럼 아이들이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지가 하나하나 기록되어야 합니다. 결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지요. 

 

 


 

 

아이도 교사도 가면을 쓰고 연기하듯 살아갑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좋든 싫든 자신이 맡은 역을 그럴듯하게 해냅니다. 사실 ‘감당’하는 거지요. 물론 언제나 연기만 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 연기는 원래 가짜이고 인생은 가짜가 아니니까요. 가짜를 진짜처럼 보여줘야 할 때가 많을 뿐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는 상황이 보다 현실적인 거지요. 그런 자연스러움이 인생처럼 보이는 거고요. 연극 무대도 일종의 가상 세계입니다 연극은 무대와 편집의 제약으로 실제 공연을 보고 있어도 관객의 상상이 필요하지요. 그 때문에 다른 어떤 장르보다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합니다. 

 

연기의 기본은 발성과 발음입니다. 여기서부터 꼬이면 속절없이 ‘발 연기’의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알고 보면 말 자체를 통한 연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말을 구성하는 목소리의 크기, 빠르기, 높낮이, 말투 등 ‘반(半)언어’의 비중이 크지요. 이는 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반쪽’입니다. 또한 눈빛, 표정, 몸짓 같은 ‘비(非)언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언극’이 오르는 이유이지요. 배우는 반언어와 비언어에 능숙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음, 싫음, 기쁨, 즐거움, 화남, 반가움 등 다양한 정서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배우는 이런 표현법을 통해 ‘심안(心眼)’을 키워갑니다. 매사를 관찰하고 관조하지요. 그 후에 그걸 재치 있게 표현해내고요. 이런 표현법은 연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정체성은 결국 ‘표현된 나’를 의미하니까요. 세상을 향한 나의 표현법을 자각할 수 있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선명해지는 거지요. 

 

배우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감정이입’입니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거지요. 제삼자를 통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는 겁니다. 관객을 감동시키는 건 배우의 외모가 아닙니다. 배우가 분한 그 역의 정서와 감정이지요. 모든 정서와 감정은 그보다 선행된 어떤 사건의 결과입니다.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다시 기억으로 떠오르지요. 결국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치 판단과 행동 방향의 기준이 됩니다. 

 

연극 경험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감정이입을 증진시키는 데 유용합니다. 특히 정서와 감정 표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우리 아이들입니다. 아이는 어른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표현하는 데 서툴 뿐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서부터 대개 둔감한 아이로 변합니다. 수업 시간표가 매일을 짓누르니까요. 환경이 그걸 요구하고요. 아이는 조용히 ‘둔갑’합니다 아니 ‘둔갑장신(遁甲藏身)’ 즉 남에게 보이지 않게 자신을 감춥니다. 

 

 


 

 

우리 아이들이 온몸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기회가 ‘연극’입니다. 비록 연기이지만 다른 인물로 변신해 상황 속 일부가 되어보는 거지요. 아이들을 연극이라는 상호작용 속으로 끌어들여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와 감정을 나눌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대본을 쓴다면 관련 자료를 모으며 입체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연기를 하며 학습 내용이 직접 자신의 글과 입과 몸짓으로 생생히 살아나는 경험도 하고요. 각자 역할을 연기하다 보면 차이를 존중하는 법과 공감 능력도 배울 수 있습니다. ‘연극 수업(drama class)’이야말로 학습과 성장을 동시에 촉진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교육이지요. ‘인생 시뮬레이션’인 셈입니다.

 

연극 속 연극인 ‘극중극’이란 게 있습니다. 연극 중에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연극인 겁니다. 모두가 연출, 배우, 관객이 되어 작품 속으로 뛰어듭니다. 다분히 ‘메타’적이지요.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서기까지 과정을 그린 연극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관객이 연극을 허구로 인식하며 연극 자체를 생각하게 되지요. 우리 인생이 연극과 비슷하단 걸 깨닫는 겁니다. 아이들도 그럴 거고요. 

 

 


 

 

교육은 아이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고 길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아이의 성장 발달은 복잡하고 상호적입니다. 지적 성장과 함께 감정, 신체, 관계의 성장이 모두 연결됩니다. 생명 현상 역시 무수한 네트워크의 상호작용입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인 거지요. 배우의 연기도 유기적 생명력을 가지려면 극 사이 막이 내려도 계속 연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을 연기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행동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고요.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이 되어볼 기회가 많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맞는 자신의 결을 찾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더 나아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줘야 합니다. 교사부터 연기의 밀도를 높여가는 겁니다. 더불어 교사도 성장하지요. 어떤 역이든 날마다 새롭게 익혀야 합니다. 결코 완성되는 법이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위대한 연기는 늘 더 나은 연기를 찾아 늘 새롭게 시작하는 거니까요. 아흔의 노배우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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