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나는 뽀로로 | 아이는 경험한 만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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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뽀로로 | 아이는 경험한 만큼 자란다

조금 속된 말로 ‘떼창’이란 게 있습니다. 요즘 말일 뿐 그 전통은 오래되었습니다. 국악과 민요에서 비롯되어 지금까지 우리 공연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요. 누가 무대에 서든 주거니 받거니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기기 바쁩니다. 우리 식의 ‘싱어롱’인 셈입니다. 서로의 마음이 그야말로 ‘호응’하며 무대와 관객의 벽을 허무는 거지요. 

 

떼창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대학 축제 현장이었지요. 그 노래는 다름 아닌 〈뽀롱뽀롱 뽀로로〉 주제곡이었습니다. 뜬금없는 선창에 다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뒤질 새라 목소리 높여 제창했습니다. 뽀로로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은 귀여운 감동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떼쓰던 아이도 뽀로로 앞에선 뚝 그쳤습니다. 뽀로로는 ‘뽀통령’이라 불릴 만큼 아이들에게 인기였습니다. 부모들도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뽀로로에게 의지했습니다. 뽀로로가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들이 벌써 나이 스물이 넘은 겁니다. 그 경험과 기억으로 하나된 거고요. 

 

요즘도 아이가 뽀로로 영상을 보면 울음을 그치는 장면을 심심찮게 봅니다. 부모에겐 아이의 울음과 옹알거림이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리지요.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울면 어떻게 가라앉히고 밥을 안 먹으면 어떻게 먹이고 떼쓰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시중에 나도는 양육 비법은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듯한데 실상은 남의 얘기 같습니다. 울고 싶은 건 부모도 마찬가지인 거지요. 이때 부모와 아이 모두 달래는 존재가 뽀로로인 겁니다. 여기에 ‘아기상어’나 꼬마버스 ‘타요’까지 출동하면 한마디로 끝내주지요. 

 

 

출처 : EBS

 

 

우리는 보통 부모 쪽 양육 스트레스를 말하지만 아이도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아무리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고 해도 괜찮은 게 아닙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그만큼 스트레스에 취약하지요. 부모의 손길을 통한 관계와 연결이 그 누구보다 절실한 게 영유아인 겁니다. 혹여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라도 된다면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겠지요.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기고 면역력까지 떨어져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선 살고 봐야 하니 아이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살기 위해 부모에게 절대적 보살핌을 청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유아기는 인간으로 발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초를 다지는 시기입니다. 세상을 알아서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는 때인 거지요. 그런데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지능이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아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부모이고 가장 편한 곳은 집입니다. 어쩌면 가정은 아이의 생존과 발달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모를 정도입니다. 아이가 스트레스가 넘치면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그만큼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중요하지요.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특히 요람에서부터 제공하는 인지 문화와 교육의 차이가 서로 다른 인식의 창을 갖게 만든다고 합니다. 결국 환경이 인생 전반을 좌우하는 결정력을 갖는다는 거지요. 영유아기에 긍정적 자극을 경험하며 성장한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세상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반면 과도한 통제와 보호로 인해 경험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영유아기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풍성하게 일어나는가에 따라 뇌의 발달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생애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습관, 성격, 역량 등도 다르게 만들어지고요. 

 

 

 

 

신경과학 전문가 대부분은 영유아기부터 사춘기까지를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라고 말합니다. 이 시기에 뇌의 질적 수준이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뇌의 신경 세포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유아기에는 이런 신경 연결이 가장 빠르고 풍성하게 증가하고요. 그러면서 학령 이후 서서히 불필요한 연결을 제거하는 이른바 ‘가지치기(synaptic pruning)’가 활발해집니다. 또 남은 연결을 보다 정교하게 해주는 ‘수초화(myelination)’도 진행되고요. 수초화가 바로 뇌의 질적 성능을 상당 부분 결정합니다. 축색돌기 표면을 수초라는 지방질 세포로 감싸면 전선에 피복을 입힌 것처럼 신호전달의 정확도와 효율이 높아지거든요. 

 

말이 좀 어렵지요. 어쨌든 자주 사용하는 연결은 남고 사용하지 않는 연결은 제거되는 겁니다. 이처럼 신경 연결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지지요. 이렇게 신경 연결을 선택하고 강화하는 과정에서 특정 패턴이 지속되면 일종의 ‘신경경향성’으로 발전하고요. 신경경향성은 특정 자극에 대한 특정 반응의 양태로 앞으로 인생을 좌우할 습관, 성격, 역량 등을 만드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육아에서 애정과 공감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의 신호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지요. 사랑받고 존중받는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부모의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과 촉감, 체취, 온화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유대감 말입니다. 최고의 긍정적 보상인 칭찬과 격려가 담긴 상호작용은 더할 나위 없고요. 이렇게 성장한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은 이처럼 긍정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영유아기에 이루어진 상호작용의 효과는 평생에 걸쳐 지속되고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닙니다. 양육은 아이와 부모 간 협력의 상호작용입니다. 아이와의 모든 순간이 교육이 아닐 수 없지요, 상호작용이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부모의 성장도 이루어집니다. 

 

 

 

 

내친김에 뽀로로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뽀로로는 ‘펭귄’입니다. 펭귄은 새로, 날지 못하는 새이지요. 뽀로로의 상징인 구식 조종사 헬멧과 고글은 그래서 날고 싶은 펭귄의 마음 아닐까 합니다. 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언젠가 날았었다는 ‘기억’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무의식에서 나온 ‘장착’이랄까요. 그런 면에서 초기 ‘하늘을 날고 싶어요’ 에피소드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어느 날 뽀로로는 새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는 자기처럼 부리와 양 날개, 두 다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새처럼 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당찬 자기 예언 속에 뽀로로는 친구들 앞에서 어떻게든 날아오르려 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아기 공룡 크롱의 눈빛은 불안하기만 하고요. 아니나 다를까, 뽀로로는 눈밭에 처박히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듬직한 백곰 포비의 말을 듣고 뽀로로는 바다로 갑니다. 결국 뽀로로가 바닷속을 하늘처럼 훨훨 날며 이야기는 끝나지요. 비록 하늘을 날진 못했지만 뽀로로와 그 친구들에겐 바다도 하늘입니다. 바다는 하늘을 비추는 거울과 같으니 바다는 하늘과 다름없는 거지요. 뽀로로가 펭귄의 ‘결’과 펭귄으로서 살아갈 ‘길’을 찾은 셈입니다. 덤으로 우리 뇌의 무한한 적응력과 탄력성을 일깨웠고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기만 해서 참 좋겠다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영유아 시절의 놀이는 단순한 놀이 그 이상입니다. 놀이로 경험하고 배우며 신체와 인지, 언어, 정서 측면에서 중요한 발달을 이루니까요. 뽀로로가 ‘노는 게 제일 좋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놀고 있다고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지요. 인생이란 결국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 남는 겁니다. 상호작용의 흔적인 ‘기억’이 남는 거지요. 부모들은 기억합니다, 뽀로로를 보며 방긋 웃던 우리 아이를. 청년들도 기억합니다, 뽀통령을 숭배했던 그 시절을. 설령 기억이 희미해졌다 해도 그걸 또렷하게 기억하는 다른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떼창은 결국 ‘나는 뽀로로’라는 큰 외침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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