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중2의 방문 | 중2병의 진실은 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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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의 방문 | 중2병의 진실은 뇌에 있다
이제 식목일이 지났으니 웬만한 패딩은 옷장 깊숙이 들었겠지요. 패딩은 대표적인 ‘등골브레이커’입니다. 한동안 ‘롱패딩’이 그 자리를 차지하더니 지난겨울에는 ‘숏패딩’이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중고교생 사이에서 숏패딩은 제2의 교복으로 불릴 정도였지요. 그만큼 부모의 등골은 휠 수밖에 없었고요.
아이들이 패딩에 목매는 건 그저 ‘청소년’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의 ‘뇌’를 가졌기 때문이지요. 한창 또래의 외모나 행동을 무작정 따라 할 때입니다. 자기들끼리만 쓰는 말에 집착하고요. 소위 ‘카멜레온 효과’가 극에 달한 시기인 거지요. 가장 가깝게 있는 것과 닮아가며 유행에 민감해지는 겁니다. 또래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요. 안 그러면 그 무리에서 따돌려지니까요, 낙인 찍히니까요. 이 시기에 나를 향한 부정적 평가는 가히 치명적입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혈기가 왕성합니다. 방황과 갈등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요. 사사건건 시비입니다. 매 순간 살얼음판 위를 걷지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별난 존재가 ‘중2’입니다. 중2는 불확정적으로 존재합니다. 중2 아이의 방문은 늘 닫혀 있습니다. 방 안에 있는지 없는지 부모도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거실에 아무도 없을 때만 방문이 열리곤 하니까요. 집 안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냅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이 안으로 닫혀 있지요. 방화문도 아닌 것이 늘 닫혀 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해는 대개 시험 없이 보냅니다. 그러니까 중2 중간고사가 사실상 중학교 첫 시험인 셈입니다. 성적이 나오면 아이도 부모도 놀랍니다. 부랴부랴 학원으로 달려가기 바쁘지요. 학원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카드 긁기 바쁘고요. 이게 다 ‘음운변동’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음운변동은 중2 국어 시간에 처음 배웁니다. 비로소 국어에 문법이 있고 그것도 무척 어렵다는 걸 깨닫지요. 아이들은 그동안 잘만 통하던 말소리가 문법적으로 틀렸다는 데 놀랍니다. 게다가 수학도 영어도 어려워집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서술형 수학을 배우지요. 영어 지문도 두서너 배로 길어지고요. 일찌감치 학업에 등 돌리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말수도 부쩍 줄고 사소한 자극에 곧잘 흥분하기 시작하고요. 예전 같지 않지요. 아이들이 변하는 게 물론 음운변동 때문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음운도 놓인 환경에 따라 바뀌는데, 아이들이라고 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어떤 존재에서 절대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을 보통 그것의 ‘속성’이라 합니다. 존재는 속성 없이 온전할 수 없지요. 또 존재가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역할과 작용을 하는 걸 ‘기능’이라 합니다. 이런 속성과 기능이 어우러져 존재의 특성과 방향성을 결정하고요. 청소년도 그 시절에 맞는 속성이 있고, 집안에서 사회에서 청소년으로 기능합니다. 이게 다 우리 ‘뇌’ 때문이지요. 청소년기의 성장 역시 뇌의 발달 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뇌는 ‘상호성’과 ‘가소성’이라는 속성으로 기능합니다. 상호성은 무수히 많은 뉴런이 시냅스로 연결되는 걸 말하지요. 가소성은 그 연결 방식이 계속 바뀐다는 의미이고요. 즉 우리 뇌는 연결되며 변화하는 겁니다.
마침 어느 수학 일타강사의 교재 이름이 ‘뉴런’입니다. 뇌 과학을 접목시킨 수학 강습일까요, 어쨌든 유명합니다. ‘neuron’, ‘new learn’, ‘new run’ 뭐 이렇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음운이 같거나 비슷한 점을 활용한 작명인 거지요. 중2는 음운 때문에 헤매고 누군가는 음운을 마음껏 활용하네요. 뉴런은 신경계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뉴런 연결이 폭발적으로 늘지요. 또 이미 존재하는 연결이 제거되며 줄기도 합니다. 마치 식물이 한창 성장하며 풍성하게 웃자란 곁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뉴런 연결의 선별과 보존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뇌의 각 영역은 출생 이후 20~25세 무렵까지 발달합니다. 그중 ‘전전두피질’이 가장 늦게 완성되지요. 전전두피질은 인간의 고차원적 인지 과정을 진두지휘합니다. 감정과 충동의 조절과 전략적 사고도 맡고요. 청소년기의 전전두피질은 성인기에 비해 덜 발달되어 있습니다. 전전두피질의 발달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스트레스’이고요. 아무래도 청소년에겐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크겠지요. 심하면 우울증까지 옵니다. 음운변동 따위가 충분히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최고로 발달합니다. 판단력과 예측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소위 ‘중2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입니다. 전전두피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보상과 쾌감의 감정은 오히려 과할 때이니까요. 불안, 분노, 걱정 같은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도 왕성하게 분비되고요.
꾹 닫힌 중2의 방문을 열어보면 무척 어지러울 겁니다. 아이들 방은 그 머릿속과 닮기 마련이니까요. 허세와 짜증과 외로움이 뒤죽박죽인 상태일 수밖에 없지요. 짐승처럼 날뛰며 반항한 흔적만 남습니다. 이런 마음 아무도 몰라주니 아이들은 점점 ‘말줄임표’에 가까워집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신호만 남겨 부모와 교사는 애가 탈 뿐이고요.
아무래도 청소년은 성인보다 부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또 위험을 수반하는 행동을 보이는 경향성이 더 높습니다. 한마디로 우울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산만하고 무모하지요. 자기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스트레스 반응 체계는 유전과 경험에 의해 세밀하게 조절됩니다. 의사들은 부정적 경험이 많을수록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스트레스 요인에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창 위태로운 청소년기에 긍정적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요.
사실 ‘중2병’에 특효약은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병이 아니니까요. 어찌 보면 이런 표현은 구분 짓기와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단면인지 모릅니다. 중2의 마음이 어른들에 의해 왜곡된 거지요. 차라리 ‘중2부모병’으로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아이들은 그 마음을 몰라줘 얼마나 서운하고 야속할까요!
중2의 마음, 아니 그들의 뇌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 시기에 맞게 ‘말랑말랑’한 것일 뿐입니다. 교육이 아이들 스스로 처한 현실을 깨닫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주시할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일탈 역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상 과정에 가깝습니다.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지요. 부모도 교사도 자신의 청소년기를 떠올려봐야 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열네 살』이라는 일본 만화책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마흔여덟 살 평범한 남자입니다. 어느 날 열네 살 중학생의 몸으로 변하지요. 의식은 중년 그대로이고요. 과거가 눈앞에 다시 펼쳐지며 옛 가족들을 만납니다. 그러면서 그때는 몰랐던 인생의 비밀을 깨닫지요. 당시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 모르게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걸 겪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으니 아버지가 떠나는 날 아버지를 잡으면 됩니다. 실제 그는 아버지를 말리려고 기차역으로 가지만, 결국 아버지를 그대로 떠나보냅니다. 중년이 된 그가 중년의 아버지를 이해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연결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마침 우리 뇌는 ‘연결성’을 훨씬 더 강화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지난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는 얘깁니다. 중2의 닫힌 방문에 노크하고 연결을 시도해보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엄마이고 아빠인 게 아닙니다. 그냥 교사인 것도 아니고요. 내가 엄마요 아빠요 교사인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누구의 엄마요 아빠요 교사인 겁니다.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존재인 거지요. 관계에서 비롯된 이름과 책임인 겁니다. 뇌를 이해하면 교육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자라면 뇌의 속성과 기능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요. 중2의 방문을 어떻게 열지, 우리 뇌에서 힌트를 얻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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