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칼럼

행복 | 미로 같은 쇼핑몰을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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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미로 같은 쇼핑몰을 벗어나려면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들끓는 별천지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휩쓸리다가 그랬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 쇼핑몰 기획자는 미소 짓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길을 잃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그루엔 효과(gruen effect)’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쇼핑몰을 처음 만든 건축가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라지요. 고객 편의를 위해 항상 동선을 짧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고객의 감각에 과부하가 오고 혼란스러울 때 오히려 구매가 늘어난다고 하니까요. 천리안과 축지법 같은 도술을 가진 홍길동도 이곳에서는 울고 말 것입니다. 아니면 충동구매를 하거나. 기상천외한 잔꾀가 무척 얄밉기 짝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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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길 안내판 앞에 섰습니다.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더군요. 두 눈에 불을 켜고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꼭 사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요. 탈출을 위해서도 그랬겠지요. 출구를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안내판을 보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려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내 위치’였습니다. 안내판에서 ‘현재 내 위치’는 가장 크게 그것도 붉게 강조되어 있었고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방황의 끝은 결국 ‘현재 내 위치’를 아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내 위치를 기억의 좌표(座標)로 삼아 서서히 옳은 길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곤 합니다. 한 낱 쇼핑몰보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훨씬 더 복잡다기하니 오죽할까요? 이 세계의 기획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알량한 길 안내판조차 하나 세우지 않았으니 얼마나 야속합니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행복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라 해도 태어난 김에 기왕이면 행복해야지요. 행복을 지향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선 쇼핑몰에서처럼 먼저 ‘현재 내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물론 인생에는 안내판이 없어 쉽지 않지요. 그 안내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여기선 ‘긍정’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 내 위치’를 안다는 것이 긍정만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속절없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내몰기도 하지요.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두려운 일이지요.

 

 


 

 

사전을 뒤져 ‘긍정(肯定)’이라는 단어를 찾아봤습니다. 잘 안다고 여겨 그 뜻을 찾아보지 않는 말 중 하나이지요. 사전에서는 친절히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더군요. ‘옳다’는 말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니 ‘그러하다’와 ‘인정’에 방점을 찍어봅니다. ‘있는 그대로’ 일이나 형편을 받아들이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긍정은 인생을 막연히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는 ‘낙관(樂觀)’과는 다른 듯합니다. 또 인생이 흐르는 대로 무작정 적응하여 익숙해지는 ‘순응(順應)’과도 구별됩니다. 곰곰 생각해봅시다. ‘긍정’이라는 말에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담담한 ‘의지’의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나요? 부질없이 뒤만 돌아보거나 성급하게 앞서가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나의 ‘좌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 자체를 ‘긍정’이라고 보자는 것입니다. 마침 기이하게도 ‘좌표’는 영어로 ‘coordinate’입니다.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외국말이 이런 뜻을 갖고 있을 줄은 또 몰랐지요. 이런 면에서 긍정은 서로의 위치를 알아 이 세계를 조화롭게 조정해나가는 일을 의미하게 됩니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어 최선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 말입니다.

 

 

 

 

흔히 긍정과 부정의 프레임을 설명할 때 드는 예가 컵에 담긴 ‘반 잔’의 물입니다. ‘반이나 남았네’와 ‘반밖에 남지 않았네’로 분별하지요. 말이 생각의 주인이라는 입장에서는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또 우리 뇌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사건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해왔습니다. 우리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던 조상들의 후손인 셈이지요. 긍정에도 부정에도 너무 큰 강박감을 갖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그런 말이나 생각 모두 없애는 것이 좋은 시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반이 남았다’와 같이 있는 그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이리저리 헤맬 필요가 없는 가장 확실한 인식 아닐까요? 쇼핑몰에서 ‘현재 내 위치’가 실상 그대로의 갈피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섣불리 가치가 개입된 말이나 생각은 쉽게 흔들리고 부서지며 굳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인간을 흔들고요.

 

 

스스로의 좌표를 찾는 것 자체가 긍정이 하는 일입니다. 지향점이 있을 때 우리는 찾게 됩니다. 그저 방황하고 배회할 거면 안내판이나 지도 따위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 달리 가야 할 곳, 바라는 곳이 있다면 먼저 내 좌표를 알려고 하고 또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담담하게 묻는 것이지요. 더 이상 변화하지 않거나 변화할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좌표가 필요 없습니다. 방황과 배회가 목적이라면 좌표는 오히려 방해물일 뿐이지요. 

 

 

나무를 떠올려볼까요, 특히 도심 한복판 가로수를 말입니다. 나무는 좌표를 잃지 않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녹음을 선사합니다. 이런 모습이 묵묵함과 꾸준함과 듬직함이라는 ‘의지’의 표상 아닐까요? ‘현재 내 위치’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의지’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욕구와 욕망이 추동하는 것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불행이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행복이라는 지향점을 가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긍정적 신호보다는 부정적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문에 긍정은 더욱 ‘의지’에 가까운 것이 되지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긍정’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을 향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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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다람쥐는 바쁘게 움직이며 도토리 같은 먹이를 찾아다닙니다. 줍는 족족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지도 않습니다. 그 앙증맞은 볼주머니에 넣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땅을 파서 저장합니다. 끼니가 걱정될 때 찾아와 먹으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기억력이 나빠 그 소중한 도토리를 까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며 숲속 세계도 무상(無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다람쥐는 우리들 인간처럼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견하며 도토리를 묻습니다. ‘현재 내 위치’를 알고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요. 낙관도 순응도 아닌, 그저 긍정의 자세인 것입니다. 아주 기특하지요. 또 다람쥐의 미래를 위해 숲속 나무나 바위가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내 위치’는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역시 서로를 비추는 존재로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누구나 쉽게 들어가지만 아무나 쉽게 못 나오는 쇼핑몰에서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 안도감 덕분인지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미로와 난장판 같던 그곳에서 ‘긍정’이야말로 훌륭한 출구 전략이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출구를 찾아 움직이려고 했던 내가 ‘현재 내 위치’를 알아낸 결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있어야 할 곳에 잠시 있을 뿐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으십시오. 그 자체로 긍정은 시작됩니다. 가고자 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언제든 행복의 지름길로 통할 수 있습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긍정의 여지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원래 행복은 있지도 없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적 농담이 아닙니다. 행복은 관점과 인식에 따라 실제 모습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만든 절망에 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희망과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긍정을 기억의 좌표로 삼아 지금처럼 앞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구는 그만큼 둥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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